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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하나님을 아는 지식(호세아 4:1-2)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2.13 19:32
▲ 고멜의 향한 호세아의 무제약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Getty Image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르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오늘은 왠지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 담긴 본문을 읽으며 시작하기는 합니다만, 특정한 사회 현상이라던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드리진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우리 신앙의 기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굳게 세우는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항상 성경에 대한 해석으로 출발하는 설교 말씀은 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어서 사회 현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거나 하는데 오늘은 그냥 성경책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없는 것

오늘 저희가 읽은 말씀은 호세아의 예언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해서 호세아가 외쳤던 말씀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을 세 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절을 보면,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기 때문에 어디에 집중할지는 이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진실과 인애도 짧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진실은 히브리어로 에메트(אֱמֶת)로 ‘진리’를 뜻합니다. 이 진리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드리면 조금 이해가 쉬우시리라 생각됩니다.

체코 프라하에 전해져오는 설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16세기 체코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6세기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랍비 뢰프는 유대인을 지키기 위한 골렘을 만듭니다. 골렘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계실까 해서 설명드리자면, 본래는 히브리어가 어원이며 시편 139편 16절에 한 번 나옵니다. ‘태아’라는 의미입니다. 랍비 뢰프는 ‘태아’라는 의미에서부터 흙으로 인간처럼 생긴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요즘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같은 곳에서 나무, 돌, 철로 만든 골렘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설화이다보니까 여기저기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만, 랍비 뢰프가 흙인형 골렘을 만들고 골렘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이마에 진리를 뜻하는 히브리어 ‘에메트’를 써넣습니다. 그러자 골렘이 살아나서 유대인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게, 뢰프는 안식일 전에는 골렘의 이마에서 글자를 지웠다고 합니다. 골렘은 사람이 아니니까 안식일에도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일 하지 않도록 전원을 꺼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뢰프가 안식일 전날 골렘의 이마에서 글자를 지우지 않은 채 잠들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골렘은 광폭하게 변해서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뢰프는 이 골렘을 멈추기 위해서 골렘의 이마에 있는 글자 ‘에메트’에서 첫 번째 글자인 히브리어 ‘알렙’을 지웁니다. 그러면 ‘멤’과 ‘타브’만 남게 되는데, 히브리어로 ‘마웨트’가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모음 떼어내고 고어로 ‘못’이 되는데, 가나안 신들 중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이 ‘못’입니다. ‘마웨트’건 ‘못’이건 스펠링이 ‘멤’, ‘바브’, ‘타브’이고 ‘바브’가 모음 취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멤’과 ‘타브’가 죽음을 의미하게 되고, 골렘은 죽었다는 설화입니다.

프라하에 가보면 랍비 뢰프의 동상도 있고 골렘을 파는 가게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프라하 갔을 때 이런 지식이 없어서 못봤습니다만, 아무튼 언젠가 가실 일 있으시면 한 번쯤 구경해보시기 바랍니다.

길게 말씀드렸는데, 진리를 뜻하는 ‘에메트’는 죽음을 뜻하는 ‘마웨트’의 앞에 ‘알렙’이 붙은 단어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알렙’이 엘로힘의 첫 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어원학적인 점은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에메트의 의미를 조금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랍비 뢰프가 흙인형에게 에메트를 적은 이유, 죽음에 하나님을 의미하는 ‘알렙’을 적으면 진리가 되는 이유, ‘에메트’가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 흙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뜻하는게 ‘에메트’입니다.

‘헤세드’는 인애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만, 간단하게 ‘사랑’입니다. 예전에 설교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너무 사랑해서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리는 미저리같이 느껴지는 그 사랑이 ‘헤세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진리’나 ‘사랑’은 좀 추상적이기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정확히 무엇이 없었기에 그들은 멸망하게 되었는가? 반대로 어떤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우리 번역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본래는 ‘다아트 엘로힘’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해도 됩니다. 무언가 하나님에 관련된 지식임은 분명합니다.

‘다아트’는 단순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과 지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라고 할 때는 우리가 잘 아는 ‘호크마’를 씁니다.

예언서를 쭉 읽어가다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분명 율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법도, 사람이 지켜야 할 법도를 알지 못했고 지키지 않았기에 멸망에 이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우리가 한 번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앞에서부터 쭉 읽어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이미 봤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 하나님의 법, 율법을 완벽하게, 완전하게 지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대부분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에서 어긋나 있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율법 준수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읽었던 성경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렇게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일까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

저는 모세가 믿음이 깊은 사람, 신앙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떠나서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율법도 없었으니까 지킬 법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우리 성경에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했고 ‘나는 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나는 존재하는 자이다’, ‘나는 있다’로 번역합니다.

모세가 처음 만난 하나님은 ‘있는 분’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보았고, 하나님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울부짖음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들 옆에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존재’의 확인 다음에 모세가 알게 된 점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사야의 말 ‘임마누엘’을 모세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말씀을 따라 이집트에 돌아갔습니다.

이집트에서 바로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야기를 전했으나 오히려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모세가 알게 된 사실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우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율법을 잘 지킨다라던가 하나님의 뜻에 잘 따른다는 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 그가 흔들림 없이 간직했던 지식은 하나님께서 분명 ‘존재’하시며, 그들 ‘곁에’ 계시고, ‘도우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지식이 있었고 그랬기에 목이 굳은 바로 앞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설명이 불친절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친절하게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질 듯 하여서 이정도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길어지면 지루해지니까요.

우리가 가져야 할 지식

어떻게 보면 이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표현해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일.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자면 그 믿음의 단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지식이란 그저 ‘아는 것’ 이상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아트’는 그냥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쓰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다면, 그곳에는 분명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굳건한 신앙, 뜨거운 믿음, 열정적인 복음 전파의 생활, 이런 게 없더라도 그저 이 세 가지만 알고 계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은혜를 내리십니다. 저는 이게 신앙의 기본이고 근본이며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기초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계명의 첫 계명을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로 시작한다면, 유대인들은 그 바로 앞 절인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를 십계명의 첫 계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함께하심과 도우심이 담긴 이 문장이 이들의 첫 번째 계명이고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계명입니다.

요즘 교회는 점점 인원이 줄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점점 교회에서 빠져나갑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빠져나가는데, 이상하게 극보수나 이단에는 많이 유입된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의식들을 교회에서 상당히 많이 가져와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기 어려워서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신비주의나 영성 중심의 보수 교회에서는 뭔가 있어 보이니까 이쪽으로 사람들이 옮겨간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라고 하면 솔직히 전 설명 못합니다. 분명 우리의 과학이 알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 외에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과학적 방식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각자의 체험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분명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오늘 본문 2절에서 말했습니다. 이 땅에는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 뿐이다. 왜 이런 일들을 합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기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모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모르기에, 자신의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행동들 아닙니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살기에 이런 행동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함께하시며 도우심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점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리라는 사실까지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한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분명 아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함께 하시며 도우심도 아시게 되길 바랍니다. 알고 복 받는 삶을 사시길 원합니다.

저는 열심히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께서는 오직 한 가지만 마음에 품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시고, 나와 함께하시며 도우신다.” 이 지식만 아시면 됩니다. 이 말씀만 믿으시면 됩니다. 이 지식을 품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악한 길이 아니라 오직 선한 길만 걸으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게 되시는 성도님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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