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은 사람이기에 존중받야 한다. ⓒGetty Image

1년 3개월, 짧은 기간 동안 벧엘의집 울안공동체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다가 누나 곁으로 가겠다며 그만둔 황◯◯이 인사를 하겠다고 내 방을 찾아왔다. 그때 공교롭게도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경황이 없을 때여서 작별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헤어져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컴퓨터 고장은 핑계고 내심 완전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있었으면 좋으련만 성급하게 그만둔다는 말에 서운함이 배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 있는 것이 힘들고, 나름 향후 계획도 세웠다고 하니, 벧엘을 떠나겠다고 하는 그를 잡는 것이 욕심인 것 같아 누나 곁에서 잘 살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황◯◯은 당사자 출신의 일꾼이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다 실패와 좌절을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사람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고, 늘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에다 벧엘에 오기 전 이미 부산에 있는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을 해 본 경험도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주눅 들어 있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인의 배신, 사업실패, 실직 등 그의 인생은 한 번도 제대로 풀려보지 못하고 배배꼬이기만 했으니 언제 가슴 한 번 쫙 펼 수 있었을까?

그에 말에 의하면 20대 때, 괌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것도 로타라는 섬에서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홀로 텐트를 치고 홀로 지냈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풀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비록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천성이 착하고, 근면 성실하고, 나름 책임감도 있다. 그러니 실패와 좌절, 배신, 실직 등 삶의 충격들이 그를 더욱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주위 눈치를 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벧엘에서 생활인이 아닌 조리원으로 일하기로 마음먹고 나름 새로운 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지원동기를 “그동안 살면서 시행착오와 좌절도 겪었지만 제2의 인생을 위한 도약의 기회를 주신다면 같은 처지에 있는 벧엘의집 식구들을 위해서 균형 잡힌 식사를 만드는데 함께 함으로 자활과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며 또한 보람을 느끼고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비로 짧은 기간이지만 그의 바램대로 인생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떠난 것이길 기도한다.

벧엘의집에는 당사자가 사역자로 일하는 자리가 몇 자리 있다. 조리원도 그중의 하나이다. 벧엘이 당사자를 사역자로 참여시킨 것은 나름 내가 미국 LA에 있는 홈리스센터인 미션센터를 방문하고 나서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그곳은 사역자 대부분이 홈리스 출신으로 미션센터에서 재활에 성공한 후, 과거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잘 안다는 속담처럼 누구보다 자신이 경험했던 좌절과 아픔을 잘 알기에 홈리스들의 사회복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기회가 되면 식구들 중에 벧엘의 꿈을 이루어가는 사역자로 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홈리스센터의 상황과 한국의 노숙인 시설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다보니 미국처럼 일꾼 대부분을 당사자로 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된다. 그러나 그 사회나 우리 사회나 노숙인이 되는 것은 빈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노숙인이 모자란 사람, 범죄자, 알코올중독자, 게으른 사람, 무책임한 사람,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려나 당연히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망망대해의 외로운 섬처럼 도심 한복판에 홀로 내던져진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가능한 부분 미션센터가 자랑하는 당사자를 사역자로 세워내는 일을 적용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당사자들을 일꾼으로 세워보았지만 매번 실패의 연속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아직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기에 꿈은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황◯◯이 떠난 자리에 다시 벧엘 식구 중에서 채웠다.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모습을 본 ◯◯◯은 자기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할 테니 벧엘에 취업시켜 달란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벧엘이 매주 외치는 벧엘이 만들어 가는 사람다운 세상의 주역으로 설 날을 꿈꿔본다.

원용철 목사(대전 벧엘의집)  bethelhouse5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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