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 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 꼭 10년이 되었다. 2010년 12월에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비폭력대화 전문가과정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와 너’ 갈등 상황을 적대적 관계로 인식하고 누군가 패배함으로써 승-패가 이루어지는 삶으로부터 모두 함께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를 찾아 존중하며 사는 공동체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만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 자신 신체장애로 인해 좀 더 빠르게 체력적으로 노화 과정에 들어섰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는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연령을 80대 중반으로 보기에 드는 나의 생각이겠다. 장애운동계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장애인으로 태어나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마지막에 장애인으로 죽는다.” 태어난 아이는 미성숙한 존재이기에 신체·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고, 20대에 들어서야 신체·정신적 성숙으로 타인과 온전한 관계 맺기를 시작하면서 한 세상 살다가 노인이 되면 다시 곳곳에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총인구 중 65세 이상이 7%가 너머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 들어섰고, 향후 50년이 지나면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절반이나 될 것이라고 인구학자들이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화 시대 노인문제의 해결 방안을 위한 『노인을 위한 회복적 정의』 (대장간 출판사, 2021)라는 책은 나에게 엄청 실질적으로 와 닿는 주제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ittle Book of Restorative Justice for Older Adults이고, 저자인 줄리 프리센Julie Friesen과 웬디 맥Wendy Meek은 캐나다 ‘공동체 정의 이니셔티브(CJI)’에 책임자와 노인중재 프로그램 총괄자이다.

‘회복적 정의’의 핵심이 ‘깨어진 관계의 회복’과 ‘공동체의 참여를 통한 회복’으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의 공간을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고령화 사회 구성원인 노인들의 문제와 이슈에 대한 논의과정에 노인 당사자를 포함한 관련자가 함께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각자 권한과 책임을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과정에 선물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캐나다의 ‘공동체정의 이니셔티브(CJI)'란 회복적 정의 철학을 실현하고자 만든 단체가 2000년대 초, 노인에 대한 학대와 유린 등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적용했는데, 이때 사회복지사이며 간호사인 알린 그로(Arlene Groh)씨가 함께 기획에 참여해 실제로 진행했던 사례들을 두 명의 회복적 정의 실천가의 도움으로 나오게 되었다.

1부에서는 ‘노인과 함께 하는 회복적 정의의 토대’로써 1) 회복적 정의 개념, 2)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연령 차별에 도전하는 큰 그림, 3) 고령화의 영향으로 노인과 일하기, 그리고 회복적 정의 실천가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는 노인을 위한 회복적 정의 사례 연구로써 1) 노인학대, 2) 노년기의 의사결정, 3) 간병인의 기력 소진, 4) 갈등이 있는 공동체 등이다.

우리 현실에서도 노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경제. 신체. 정신적으로 어려워진 노부모를 누가 모실 것인지? 모시게 되면 그곳은 재택인지, 요양원인지? 의료비용과 재정문제는? 등등. 상당히 많은 주제들이 나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노인들은 주변인들로부터 무시와 학대, 폭력까지 당하게 되지만 대부분 노인들은 그들과의 관계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법의 힘을 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그들을 사랑했었고, 그들이 곤란해지기를 원치 않고, 뜻하지 않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알린(Arlene) 씨는 노인 학대에 대응하는 회복적 절차를 만들기 위해 노인 당사자를 비롯한 관련된 공동체 구성원들 지역사회 리더, 노인 및 CJI 서비스 기관이 참여하는 협업 시스템을 조직했다. 이것이 ‘노인 유린 및 학대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 프로젝트,  Restorative Justice Approaches to Elder Abuse and Mistreatment Project" 이였고, 이것을 진행하면서 성공과 도전, 기회를 경험했다. 최종 보고서에서 노인학대 상황에 공동체의 대응 능력이 향상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평가가 된 것은 CJI의 노인중재 서비스 직원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노인 및 지원 네트워크 팀이 매일같이 노인 학대와 다양한 갈등 상황을 접하면서 함께 부단히 논의했고. 그 과정에 당사자의 참여로 가족과 공동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기 위해 다시 사람들과 연결하게 함으로써 갈등과 학대, 소외, 범죄 등의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으로 인한 갈등은 다시 사람과의 관계 회복으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책의 내용을 좀 더 소개하면, 2장에서는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신뢰서클(Circle process), 대화모임(Restorative conference),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 등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를 소개하면서 한계점도 이야기하고 있다. 3장에서는 공동체를 포함하고, 연령차별을 시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4장에서는 노인과 함께 일할 때 발생하는 관련 문제를 설명한다. 5장에서는 노인, 가족, 지역사회가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6장에서는 회복적 절차가 노인의 자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필요를 설명하고 있다.

나 자신 고령화에 들어서면서 소위 ‘장애’를 몸에 가지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노인을 위한 회복적 정의』 책은 어떤 의미에서 ‘장애인을 위한 회복적 정의’이기도 하다.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으면서, 여러 의미 있는 행사들이 소개되는 데, 이제 우리나라도 ‘인식의 전환에서 행동으로’를 30년째 외쳐왔는데,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곳곳에서 도전받기를 기대해 본다.

시편 23편 3절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Restore),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정의(Justice)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노래는 하나님의 정의가 회복적 정의임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밝히면서, 이 소중한 책을 접한 느낌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황필규 위원장(NCCK장애인소위, 회복적정의협회 이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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