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바람을 타고 오는

▲ 매년 3-5월 경 한국을 뒤덮는 황사 ⓒ연합뉴스

바람은 계절을 알려준다. 겨울이 끝날 즈음 불어오는 봄바람은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녹이고 초록 생명들을 살아나게 한다. 따뜻한 햇볕도 바람을 타고 우리 살갗에 와 닿는다. 더러는 바람이 싣고 오는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계절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아침산책이 주는 소중함 중 가장 큰 것은 단연 아침 공기가 주는 산뜻함과 생동감일 것이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기나긴 시간 동안 인류에게 신비로 여겨졌으며, 바람은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원천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바람이 언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는 바람에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람에 실려 오는 유해물질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특히나 겨울과 봄에는 계절풍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아진다. 바람이 오염물질을 싣고 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대기가 정체되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날도 있고, 바람이 오염물질을 날려버리는 날도 있다. 이렇게 바람은 우리사회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해지자 미세먼지가 호흡기 뿐 아니라 피부를 통해 인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신체는 개인을 외부 환경과 구분해주는 뚜렷한 경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코로나19 종식의 기대감은 ‘마스크를 벗는 날’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물류 및 사람들의 이동과 화석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게 되면 미세먼지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될 것이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폐기물 문제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골프장으로 가보자.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골프장은 물을 매우 많이 소비하고, 여기에 살포되는 농약 사용량도 매우 높다. 이로 인해 지역 물 부족 문제와 지하수 오염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특히 살포되는 농약으로 인한 문제는 꽤 심각하다. 살포되는 제초제와 살충제 성분이 바람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바람확산에 따른 농약피해영향평가 등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허용 ‘기준치’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고려할 때 친환경적 골프장 관리 기술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다. 바람에 날아오는 농약의 영향을 받는 골프장 인근 주민들과 생물들은 ‘기준치’ 이하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전쟁터로 가보자. 미군은 걸프전에서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을 무기화하여 사용하였다. 열화우라늄탄은 밀도가 높아 더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었고, 이라크의 전차를 녹일 정도의 엄청난 고열을 발생시켰다. 즉각적인 피해는 이라크군이 입었지만 장기적인 피해는 미군과 이라크군 모두와 전쟁 지역의 민간인들에게도 발생했다. 열화우라늄에 노출된 미군들은 전쟁 후에 후유증으로 인한 개인적인 전쟁을 겪어야 했고, 전쟁지역에 남겨진 방사성 물질들은 그 지역의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고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몸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서서히 죽여가기 시작했다.

열화우라늄의 공격에는 적군과 아군의 구분이 없었다. 무차별적인 공격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 중에 매설된 지뢰가 전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듯이 전쟁 중에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의 잔재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스스로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열화우라늄(U-238)의 반감기는 45억년이다!

전쟁 중에 남겨진 불발탄과 지뢰로 인해 전후 세대가 고통을 받는다. 피해자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과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 세대가 대기와 토양과 바다에 남겨 놓는 위험으로 인해 미래 세대가 고통을 받게 된다. 그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이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취약할 것임은 분명하다. 미세먼지, 골프장, 열화우라늄탄은 우리의 일상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그 거리는 꽤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과 거리감은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이나 위험사회에 대한 인식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면 미래 세대는 바람에 실려 오는 죽음에 공포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생태적 감수성, 생태 문해력, 생태 영성,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생태위기의 절박함을 희미하게 만드는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인 시도들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김신영 부소장(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연구소) ecomiho@hanmail.net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