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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에 가까우려고 노력하는가“교만과 겸손의 사이에서”(잠언 16:18-2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6.22 00:09
▲ 내 안에 숨겨진 교만은 없는가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님들도 그럴 때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마음에 불안감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생각이 부풀려져서 염려가 커질 때가 있습니다.

‘좀 전에 내가 한 말, 행동을 그 사람이 오해하지는 않았을까? 날 바라보는 표정이 약간 좋지 않은 것 같던데?’ 또는 ‘아까 그 사람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했지? 왜 그런 행동을 했지? 나를 무시하나?’,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일이 이렇게 저렇게 되어서 잘 못 되는 건 아니겠지?’ 등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의 드라마를 계속해서 작동시켜 불안과 염려를 키웁니다.

예수님은 염려를 내려놓으라시며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고도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불안이라는 감정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먹이를 주고 키웁니다. 이럴 때 저는 가만히 침묵하며 말씀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지난 주 하나님은 진실하신 사랑으로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이 선하신 뜻을 찾는 수고는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지건 상관없이,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고, 이 모든 일들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한다면 우리에게 펼쳐지는 삶 자체를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할 때 나를 괴롭혔던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마음에 평안이 자리를 잡습니다. 스스로를 고통 속에 밀어 넣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아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중에 다석 류영모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감명을 받았습니다. 성도님들에게 이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목적이 삶에 있다면 그 참 삶은 하느님(하느님 나라)에게 있지 결코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참뜻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허공인 하느님에게 있지 여기 이 환상계에 있지 않다. 

땅은 물질로 된 상대세계를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세상의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가는 일을 잘 해야지 세상의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기어코 헛일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먼저 해야 할 것을 땅에 먼저 한다. 사는 목적을 하느님에게 두지 않고 이 세상에 둔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가질 참 목적이 없다. 이 땅에서 참이라고 한 것은 상대적 참이지 온전한 참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머리를 하늘에 두고 몸뚱이를 곧게 하여 하늘에 가까우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에겐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될 일이 여간 많지 않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해야 할 일이란 머리를 하늘에 두고 다니는 일이다. 이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사모하여 우리의 생각(사상)을 높이자는 것이다.(1957)”
- 『다석 류영모 어록』

다석 류명모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사는 목적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세상에 둔다고 말합니다. 이런 어리석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란 하나님을 사모하여, 머리를 하늘에 두고 생각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을 보시면, “18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만과 거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람을 무시하고 기분 상하게 하는 태도로서의 교만과 거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 나온 ‘교만과 거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과 내 욕망, 목적을 먼저 앞세우는 것, 사는 목적을 이 세상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런 삶이 교만과 거만입니다.

우리 지역에도 소위 ‘여름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화진포를 산책하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여름은 중요합니다. 돈을 벌 수 있는 한 철이기 때문입니다. 이 돈을 벌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고장 나거나 오래 된 물건들을 교체하거나 수리하고, 손님들이 올 수 있도록 민박이나 팬션의 안과 밖을 리모델링하기도 합니다.

돈을 버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돈만 생각하며 이 일들에 너무 치우치다보면 본래 목적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이 돈으로 보인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 두 사람 지나간다가 아니라 3만원, 6만원 지나간다 이런 식으로요.

우리에게는 뜻하지 않은 일들이 참 많이도 벌어집니다. 배우자의 문제, 자녀의 문제, 나 자신의 문제, 이웃과의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재정의 문제 등등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합니다. 이런 내 삶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내 문제에 갇혀버려서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예수님의 기도에서 배운 것이 단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모습을 보면, 예수님도 원하는 것이 있으셨습니다.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이라는 잔을 자신에게서 치워달라는 간구였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이런 간구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이유는 결국 이 간구를 내려놓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하나님 이렇게, 저렇게 이루어지기 원하는 저의 뜻을 내려놓습니다.”라는 고백으로 변해야 합니다.

원하는 바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결국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교만과 거만을 넘어 창조된 목적대로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자기 비움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5:3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비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19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거만한 사람과 어울리면 전리품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가치를 따르면 당연히 전리품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이런 전리품에 있지 않고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자기를 계속해서 비워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용서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20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 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살기에 일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일이란 이 땅에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목적을 두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목적을 두고 진행하는 모든 일들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행하는 일들은 잘 되기만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루려는 목적을 두고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 했기에 잘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이루려는 목적을 두고 기도하면서 이 기도의 제목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오늘 말씀이 말하는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의 끝에 결국 자기의 기도제목을 내려놓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침묵하게 되어 있습니다. 100일을 기도하고, 1년을 기도하고, 10년을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있지 못하다면, 무엇을 이루려고만 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 바로,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성도님들의 원함을 두고 기도하는 이유는 먼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결국에는 믿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되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삽니다. 허탄한 곳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와 성공으로 나누는 일들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비운 겸손한 사람은 오로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는 삶’만을 쫓게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교만입니까 아니면 겸손입니까. 무엇을 얻고자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행하고자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머리를 하늘에 두고 몸뚱이를 곧게 하여 하늘에 가까우려고 애를 쓰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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