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이준석 현상?NCCK, 6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1
NCCK언론위원회 | 승인 2021.07.23 13:00
▲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SBS 뉴스 화면 갈무리

36세 청년의 당선

2021년 6월11일 36세의 야당정치인이 보수정당인 ‘국민의 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영(0)선인 그가 5선인 주호영, 조경태 의원과 4선인 나경원, 홍문표 의원을 경쟁에서 제쳤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젊은 세대인 김웅, 김은혜 초선의원마저 가볍게 이겼다. 이준석 대표는 당대표 수락연설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여러분은” 저를 당 대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와 함께 이 역사에 발을 들여놓으셨고,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어나가는 역사 속에 여러분의 지분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우리의 방식이 캠프 출신의 코드가 맞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에게만 기회가 열리는 현 집권세력의 방식보다 공정하다는 그 확신이 우리를 대선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가 보수야당 당대표로 선출된 사건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다수 일간신문은 일제히 한국의 정치지형이 바뀌게 될 것을 예견했다.

36세 당대표···보수가 쏘아올린 ‘세대교체’(경향신문)“
헌정사 첫 30대 당대표 보수, 변화를 선택하다(국민일보)
30대, 낡은 정치 뒤엎다(동아일보)
헌정사상 첫 MZ세대 당대표 정치 ‘세대교체’ 신호탄 쐈다(세계일보)
2030, 판을 뒤집다(조선일보)
정치판 변화 열망, 36세 제1야당 대표 택했다(중앙일보)
‘0선 30대의 파란’, 정치 판 흔들다(한겨레)
이준석 ‘전과 후’ 정치 새 획 긋다(한국일보)

그러나 과연 이러한 기사제목처럼 정치적 세대교체는 이루어졌을까? 정치비평가들은 이준석 대표를 지지한 사람들은 2030청년들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중도무당파 성향의 남성이 다수라고 분석했다. 이준석 당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반페미니스트도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 이익을 공익이라고 주장하는 대다수 노회한 정치인에 환멸을 느낀 청년들이라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집권 초기 공정과 정의, 평등을 외쳤던 현 정부에서 과연 공정과 정의, 평등이 실현되었는지 되묻고 있다. 한마디로 공정과 정의, 평등을 외쳤지만 길을 잃어버린 현 정부에 대한 쇄신요구이자 대안요구가 이준석이라는 상징에 몰표를 준 셈이다. 자신들이 절망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 표출이지만, 이준석 대표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그들은 지지를 철회할 수 있고 그를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2030세대가 쏘아 올린 담론은 ‘공정’에 방점이 찍혀있다.

탈출구가 없는 청년세대

경향신문의 이혜미 기자는 <지옥고 아래 쪽방>이라는 기사에서 ‘착취도시, 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빈곤계층과 축적한 자산이 없는 청년 세대의 처지를 이용해 돈을 버는 ‘빈곤 비즈니스’는 지방에서 올라와 기숙사. 하숙, 반지하원룸, LH매입임대주택, 산동네분리형원룸, LH대학생전세자금대출로 거대한 ‘강남이라는 부잣집’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문제는 탈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 당국에서 좀 더 저렴하고 깨끗한 기숙사를 신축할라치면, 그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숙과 자취방을 빌려주고 학기단위, 학년단위로 비용을 챙겨왔던 ‘빈곤비즈니스사업가’들의 반발에 부딪힌다. 지역자치단체는 어차피 떠날 임시주거자인 대학생보다는 지역주민들의 성난 민심이 지역선거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청년들에게 등을 돌린다. LH공사와 SH공사와 같은 공기업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청년임대주택보다는 내부투기를 통해서 공사도 수익을 올리고 본인(직원)들도 한몫 챙길 수 있는 대형개발에 집중한다. 청년은 밖에 보여줄 ‘이미지 세탁’ 수단으로만 작동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정규직이 아닌 인턴생활을 오랫동안 해야 하고, 인턴생활을 끝내더라도 정규직이 될 때까지 중규직(무기계약직을 비롯하여 사실상 정규직이라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인 고용형태)에  머물게 된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에 빠진 사람처럼. 불안한 현실은 영혼을 갉아먹고, 평안보다는 좌절을 배우게 만든다. 이들이 융자받은 학자금 상환과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수익의 대부분을 지출하는 동안, 월세와 전세는 계속해서 상승한다.

지금 2030세대가 지적하는 현안은 진입장벽으로 작동하는 각종 규제와 기득권 유지만을 위한 불평등한 기회제공, 결과적으로 차별이 일상화되는 현실이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정규교육을 끝마친 청년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지,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는 부모세대가 물려주지 않는 한 서울은 물론 웬만한 지역에서도 자가소유는 불가능하다. 설령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다 치더라도, 은행에서 주택자금을 빌리더라도 각종 대출규제에 묶여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오기는 어렵다. 정부와 은행은 다세대 보유자들에겐 임대소득자로 세제 혜택을 주고, 가진 자에게는 더 낮은 금리도 대출을 해 줄지언정, 이제 갓 지붕 하나 마련한 세대에게는 야멸찰 정도로 가혹한 조건을 제시하고, 제도에 순응하길 요구한다.

결국, 대다수 청년들은 불안한 고용계약에 묶여 있고, 주거환경도 불안한 나머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는 일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다. 불안한 청년 세대는 우리 사회를 생물학적 세대단절로 내몰고 있다. 탈출구는 부모세대로부터 유산을 받거나 불공정한 편법에 기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마저도 누군가 후원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청년 스스로 선택할 방법은 ‘투기’를 통한 ‘계급건너뛰기’이다. 그들이 비트코인을 사들이거나 ‘영끌’이라고 부르는 무모한 투자를 하는 이유이다. <경향신문>이 2021년 신년 설문조사에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공정(40.7%)을 꼽은 시민이 가장 많았다는 결과를 보도했듯, 우리 사회에서 평등(14.0%)이나 자유(13.3%), 협력(13.1%), 성장(10.9%), 평화(8.0%)는 공정보다 훨씬 낮은 가치로 선택받았다. 특히 2030청년세대는 ‘탈출구가 없는 현실’에서 최소한의 공정을 요구하고 있다.

2030세대가 현 정부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탈출구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번 규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들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정인가? 2030세대는 공정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무엇이 공정인가?

2030세대를 흔히 MZ세대라고 부른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하나로 묶어서 통칭한다. MZ세대처럼 10대부터 이제는 40대가 된 연령대를 하나의 세대로 명명하기에는 동질성이나 공유한 가치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탈출구가 없는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탈출구를 공정에서 찾는다.

그러나 2030청년세대가 생각하는 공정은 이전 세대가 생각한 공정과는 크게 다르다. 그들은 과정과 결과에서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고, 절차적 설득을 요구한다. 투명성은 객관적 수치로 보여야 하고, 절차적 설득은 정보공개를 통해서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마치 2016겨울에서 2017봄으로 이어진 촛불주권혁명이 부도덕하고 무능한 박근혜 정권을 법정에 세웠던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듯, 이제 모든 결정은 광장에서 이루어지듯 투명하고 절차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구이다.

이들은 36세의 이준석 야당대표는 남성이기에 정당하고 25세의 박성민 대통령 청년비서관은 여성이기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들은 이준석 대표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특목고를 다녔고 부모덕에 미국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던 배경과 ‘사다리’에 대해서도 특별히 문제 삼지 않는다. 출신성분과 성별, 가정형편을 떠나서 객관적인 과정을 통해서 그 지위를 얻었는지 묻는 것이다. 영(0)선인 이준석과 박성민은 비록 동등하게 영(0)선인 청년이지만, 이준석 대표는 선출과정을 통해서 대표가 되었고, 비록 계속해서 낙선했지만, 선거를 통해서 검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박성민 청년비서관은 과정도 없이 단지 야당대표에 맞설 청년정치인으로 불공정하게 고위직에 올랐다는 주장이다.

2030청년세대가 생각하는 공정담론은 ‘절차적 투명성’이자, ‘객관적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과정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구세대가 보여준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불의”하다고 본다. 2020년 국가고시를 거부하고 투쟁과정에서 의대생들과 최대집 회장이 이끌었던 대한의협은 서로 다른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한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가 의사 수 증원으로 더 많은 경쟁자가 시장에 유입되는 것에 반발했다면, 의대생들은 ‘공공의대’라는 성적을 검증받지 않는 의대생의 탄생에 반대했다.

구세대가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다면, 신세대는 절차적 투명성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공채시험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공채시험을 치르지 않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반발했다. 해당 직군이 보안직무이거나 청소용역, 활주로 정비와 같은 업무더라도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채용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에 갇혀서, 사회적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시험 성적만으로 직무능력이나 전문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최근 서울대학교 대학당국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외국어시험성적을 요구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처럼, 직무능력과 업무처리 능숙도와 관련 없는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공정은 오히려 과학의 타당성과 객관성을 위반하는 부차적인 잣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 밑바탕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면, 능력에 따라서 보상받는 것을 ‘정의’로 주장해온 능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현 정부가 출범부터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못했다. 관료에 포획되고, 캠프에 포획된 채.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주장하듯,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얻는다면 승리는 온전히 승자의 것이 된다. 이것이 능력주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원칙 자체에도 결함이 있다. 성공하도록 도와준 운의 영향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승자를 교만의 길로 인도하고 패자에겐 굴욕을 안긴다는 점에서 공익을 해친다”. 성적이 곧 공정이라는 생각은 한국이 개개인의 공동체가 아닌 모래알이 각자도생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MZ세대는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사회에 진출하여 불이익을 경험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은 더 강화된다. 이러한 인식을 잘못이라고 탓할 수 없다, 사회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과정을 공정하게 설계하지 못한 정치의 잘못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단계적 통일을 주장했던 사민당(SPD)은 1990년 실시된 총선에서 참패한다. 통일 당시 단계적 통일을 주장했던 40대 초반의 사민당 지도부는 그 후로도 30여 년간 독일정치를 좌우했다. 누군가를 연방총리가 되었고, 누군가는 당대표와 연방장관, 주지사,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음 총선에서 사민당은 한때 정치적 생존을 두려워했던 녹색당에게도 밀려나 제3당이나 제4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후속세대를 키우지 못했고, 갈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정당인 기민련(CDU)의 노쇠한 집권세력은 과감하게 다음 세대를 정치 일선에 앞세웠다. 통일 후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한 헬무트 콜(Helmuth Kohl) 총리는 동독출신인 두 명의 여성장관을 발탁한다. 1991년에는 36세의 안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1994년에는 그의 후임으로 대학을 졸업한지 4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클라우디아 놀테(Claudia Nolte)를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임명했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상 최장수 연방총리가 되었고, 놀테는 독일의 국제협력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메르켈도 놀테도 ‘절차적 투명성’과는 거리가 먼 발탁이었지만, 동서독 통일 이후 전환기 독일 사회를 이끄는 주요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후견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고 미래의 가치에 투자한 것이다. 은퇴를 준비하는 메르켈과 놀테는 또 다른 후속세대를 정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과정을 만들어 주고, 사다리를 놓아준다.

이준석 대표가 독일의 보수정당이 선택했듯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일지, 아니면 ‘부끄러운 현실을 감추기 위한 화장술’일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 결과는 과정을 통해서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여당에서도 기득권을 염두에 두지 말고 제2, 제3의 박성민 청년비서관이 나올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더 나아가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한 2030청년세대에 속한 모두에게 ‘지금, 여기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4년간 현 정부는 썩은 동아줄은 열심히 제거하려 했지만, 새로운 사다리를 놓지는 못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영혼을 갉아먹고, 현실을 피폐 시킨다. 그곳에 분노와 갈등만 커질 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NCCK언론위원회  kncc@kncc.or.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NCCK언론위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1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