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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사랑“주의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사도행전 19:17-2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8.03 11:15
▲ 사도 바울의 선교로 인해 마술책들이 불태워지고 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사랑으로 본때를 보여주는 삶을 살다가 이 자리에 나오셨나요? 평안은 우리 안에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가 이런저런 좋지 않은 감정들에 끌려 다니기를, 영향 받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평안을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어제 저녁, 치킨을 주문하기 위해 전화했더니 배달이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셨습니다. 가지러 가면 어떻게 되느냐 물으니 20분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치킨을 주문하고서 가지러 가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는데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아, 지금 난리 났구나.’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매장 안에 있는 동안 치킨을 주문하는 전화벨이 계속해서 울렸고, 일하시는 세 분은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사장님이 손님과 전화통화를 하시면서 다급하고 약간은 짜증스럽게, ‘아, 손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세요. 1층에서 방황하고 있었어요. 서비스로 뭐 더 넣었어요.’라고 하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주문이 밀려, 배달이 늦어진 상황이어서 손님에게 줄 서비스를 더 챙겨서 갔는데, 치킨을 주문한 손님은 연락도 되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해야 할 배달이 많이 밀려있었기 때문에 여사장님은 손님에게 죄송하기는 하지만, 짜증이 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울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원망하기를 선택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이 사람 제정신인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렇게 바쁜 성수기에 주문을 했으면 시간 맞춰서 나와 있어야 하는 건 기본 아닌가? 우리가 늦기는 했지만 너무 한 거 아니야?’ 하면서 분노 게이지를 올릴 수 있습니다.

또는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 손님 때문에 배달이 되었어야 할, 치킨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 자신들을 원망하고 욕하고 있을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겠다고 선택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요! 이 시간에는 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몇 시에요 도대체! 환불하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요? 벌어지지 않은 부정적인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나 일이 꼬여버리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원망, 불평, 부정적인 상상의 회로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선택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올라오는 부정적인 상상들과 감정들을 하나님께 토스하고 평안의 마음을 선택하고 누리는 거죠.

나를 괴롭히는 건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손님이나, 앞으로 배달하기 위해 방문해야 할 손님들이 아닙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바로 ‘나’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안에 평안이 이미 주어졌음을 기억해 내셔서, 스스로를 상황의 피해자로 만들지 말고,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실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 설교를 응용해 본다면,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연락되지 않는 손님을 축복하고, 지금의 상황을 축복하고, 앞으로 만나야 할 손님들을 축복하며 감사함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과 상황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더 긍정적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경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선택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삶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삶의 예배 입니다.

주중에 읽던 책에서 성경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빠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으냐? 저 들에 피는 꽃을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하였다.”

성도님들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익숙한 말씀이지만, 다시금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 구절을 읽고, 또 읽고 감탄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게 하시니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말씀대로 살기위해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려면 이런 말씀들을 굳게 믿고, 신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성도님들께 어제 교회 단체 카톡방에 Way Maker ‘길을 만드시는 주’라는 찬양 유투브 동영상을 링크로 보내드렸습니다. 작년 우리 해당화 찬양대가 이 찬양을 노래해서 감동과 은혜를 받았던 곡이기도 합니다. 가사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주 여기 운행하시네, 주 예배해. 주 예배해. 주 여기 역사하시네, 주 예배해. 주 예배해. 주 우리 마음 만지네, 주 예배해. 주 예배해. 주 우리 치유하시네, 주 예배해. 주 예배해. 주 우리 새롭게 하네, 주 예배해. 주 예배해. 주 우리 회복시키네, 주 예배해. 주 예배해. 주님은 길을 만드 시는 분, 주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 주님은 어둠속을 밝히시는 분, 나의 주, 그는 하나님! 주의 일하심 볼 수 없어도, 주의 일하심 알 수 없어도, 주는 결코 멈추지 않네, 주는 결코 멈추지 않네. 나의 하나님 그는 하나님!’

주님이 나와 우리의 삶에 역사 하십니다! 주님이 마음을 만져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주님의 일하심 볼 수 없고, 다 알 수 없지만 주님은 결코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삶은 주님께 맡기고 나는 주님을 예배하겠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주님을 예배한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내 삶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행하겠습니다.’라는 실천적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게 하십니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내 힘으로 억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아무도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게 한국 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말씀의 능력에 힘입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일터를 변화시키고, 지역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그리스도인들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와 문화와 물질에 사로잡혀 복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거꾸로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 성공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이런 가치들이 일으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말씀을 이용하려 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라는 도시에서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행하였고 이 일이 유대 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사도 바울의 사역을 듣고 본 이들이 모두 두려워하게 되었고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8-19절 말씀에 “그리고 신도가 된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 또 마술을 부리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책을 모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책값을 계산하여 보니, 은돈 오만 닢에 맞먹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오늘 본문은 마지막 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0절입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주님을 찬양하게 되고, 자신들의 부끄러운 일들을 자백하게 되고, 마술과 헛된 지식이 쓰여진 책들을 불사르는 등의 은혜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19장 11-12절에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어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는 앞치마를 그에게서 가져다가, 앓는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병이 물러가고, 악한 귀신이 쫓겨 나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치유가 필요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다만 바울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과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앓은 사람 위에 얹기만 했는데도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손수건과 앞치마로만 기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김회권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도행전>이라는 책에서 주석하기를, “하나님의 권능이 노동으로 단련된 바울의 손을 타고 흘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선교사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낮 시간의 노동으로 자신을 소진시킨 바울의 겸손과 성실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권능은 땀과 눈물에 젖은 손수건과 앞치마를 타고 흘렀다.”고 했습니다.

그냥 손수건과 앞치마가 아니라 무려 2년간 성실하게 일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하면서 밴 땀과 눈물의 손수건과 앞치마이기 때문에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은혜가 흘러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은혜는 사도 바울을 넘어 개인 개인을 넘어 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우상과 마술과 물질주의에 젖어 있던 에베소라는 도시를 말씀이 변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지배받지 않고,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과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에 갇혀 살지 않고, 예수님처럼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만 봐도 예수님의 은혜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지를 보여줍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시고 배고픈 사람은 배 불리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으로 돌려보내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임신을 한 마리아는, 당시의 풍습대로라면 파혼과 죽음까지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민족과 세상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게 하십니다.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왜요? 말씀의 능력이 저와 성도님을 통해 세상으로 드러나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더욱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사랑을 발휘해야 할 그 순간에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고, 사랑이 흘러가지 못하게 됩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말씀이 나를 통해 살아 움직이고, 말씀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는 이들과 지역과 세상에 흘러갈 수 있게 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랑으로 나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십시오.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이 변화되고,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변화되고, 상황이 변화되고, 지역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은혜의 체험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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