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야에서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진 만나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공평하게 한 오멜씩 먹을 수 있었다. ⓒGetty Image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교회는 ‘카할’ 내지 ‘에다’로서의 말씀공동체이다. 다윗왕조가 세운 예루살렘의 성전체제는 우상숭배와 노예체제의 온존으로 붕괴되고 멸망의 비운을 맞이하였다. 성전파괴와 왕국멸망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언약의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증언하는 오경을 작성하였다.

모세의 광야공동체는 언약의 공동체였다. 여기에 교회의 정체성이 정립되어 있다. 바빌로니아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신명기 사가는 말씀의 신학을 정초하였고, 역대기 사가는 말씀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신학화하였다. 성전체제를 대신하여 말씀예배의 교회론을 정립하였다. 식민지 지배를 통하여 망국을 경험하고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한 야훼의 신앙인들이 다시금 디아스포라의 공동체로 일어났다.

안식일을 정례화 하여 노예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고 말씀의 예배를 통해서 상처받은 생명을 복원하는 새로운 예배공동체는 그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게 하려는 기본소득제의 이념 위에 정립하였다. 십일조를 위시한 모든 헌물은 노예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 사상 위에 세워졌으면 모든 물질은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에게 우선으로 배분되었다. 이로써 공동체 내의 평등한 체제가 정립되고 지속될 수 있었다.

말씀예배를 가능케 한 동력은 오경에서 나왔다. 오경은 애굽 제국의 노예체제에 빗대어 자신이 살고 있는 페르시아제국의 노예체제 현실을 비판한다. 하나님은 애굽 왕국에서 노예가 되어 고난을 당하던 히브리 민중을 해방시키셨다. 히브리인들은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말씀을 받아서 언약의 공동체로 세워졌다(출 19:1-24:11).

광야에서 건축한 성막에는 언약궤(또는 증거궤)가 지성소에 안치되었으며, 그 언약궤 안에는 시내산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 창조주이시며 구원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언약궤 위에 임재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행전에 함께 하셨다. 성막의 신학은 다윗제국의 예루살렘 신전의 희생제사를 철저히 반성하면서 광야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행방공동체의 정체성을 두었다.

이로써 디아스포라는 모든 왕국들이 저마다 제시하는 신전의 예배들을 우상숭배로 각성하게 되었으며, 참된 이스라엘 공동체가 예배하는 분은 오로지 말씀예배의 공동체에서 자신을 알려주시는 야훼 한 분뿐임을 만방에 선언하였다. 야훼 하나님의 현존은 희생제사를 드리는 신전이 아니라 말씀을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의 현장에 임하신다는 믿음, 이것이 오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정체성이다.

디아스포라 말씀공동체를 세우는 두 가지 사상의 축은 야훼 하나님을 창조주로 선언한 것과 모든 피억압자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주로 고백한 것이다. 창조주 신앙으로 모든 생명의 보편적 존엄과 평등을 선포하고 모든 토지의 공공성을 선언하였다(출 19:5). 이러한 신학은 광야 공동체와 가나안 공동체를 통해 정립된 원교회가 이스라엘 왕국의 등장으로 인해 왜곡되었다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역사성찰에서 나왔다.

사울왕국, 다윗 솔로몬의 통일왕국, 북왕국 이스라엘과 유다로 분단된 분열왕국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나라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까닭은 왕과 귀족, 그리고 평민과 노예라는 불평등한 사회체제 위에서 왕국체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기본소득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근본요인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에 있으며 사람이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한 이후에 더욱 악화되어 왔다.

선악과를 먹은 죄인은 도시국가를 건설했으며(창 4:17), 도시국가의 산업을 일으켰고(창 4:20-24), 사회적 폭력으로 지배력을 장악한 영웅들은 왕국을 건설하였다(창 10:10). 왕국은 노예노동 위에 서있기에 시내산에서 맺은 야훼의 언약법이 명하는 노예해방령을 실천할 수 없었다(렘 34:16). 망국의 원인을 성찰하는 디아스포라 말씀공동체의 오경은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비전을 제시하며 초태생에게 부과하는 세금과 레위인에게 주어야할 십일조 등 공공기금을 법제화했다.

이로써 토지의 공개념과 노동의 휴식과 사회적 공공기금의 기본소득제가 제국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정립되었다. 오경 공동체는 작은 규모의 마을공동체로서 국가권력이 아니라 순전히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부단히 자신의 사적 소유를 공공화 하는 과정 속에서 기본소득제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었다.

말씀공동체의 새로운 이념들은 하스모네 왕조의 성립에서 또다시 왜곡되기 시작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 말씀공동체는 하스모네 왕국을 거쳐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성립한 헤롯체제에 의해 다시 예루살렘 신전체제로 귀속되었다. 로마왕국체제(Pax Romana) 하에서 왜곡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잡으려는 오경회복 운동이 바로 예수운동이었다.

가나안을 점령하여 왕국체제와 노예제를 무너뜨리고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12지파 부족연맹체제를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는 하나님 나라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백성들의 개인적 영성의 성장을 담보로 성립하는 것이었다. 우상숭배는 사사화(私事化)의 과정을 추동하는 악한 죄의 충동이었으며, 가나안에서 모든 왕들을 처단하고 새롭게 정립한 말씀공동체 체제는 우상숭배의 사사화 과정으로 인하여 계속 도전을 받았다. 사사기는 이처럼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역사의 과정을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으로 증언한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담지하는 기본소득제는 공동체의 성원 모두를 공공화의 영성으로 양육하는 중요한 교육과정이었던 것이다.

고(故) 이영재 목사(원주영강교회, 구약학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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