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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된 관계사랑의 계약(출애굽기 19,1-6; 요한복음 15,1-8)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8.11 23:49
▲ Jean-Leon Gerome, 「After the Exodus, God appeared before the Israelites on the summit of Mount Sinai」 (19세기경) ⓒGetty Image

교회는 질문을 받으며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 교회인가? 교회는 세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교회는 왜 교회인가? 등 교회에 대한 물음이 교회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들 때문에 제기되는 이 질문들에 답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물음들을 염두에 두고 이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두 본문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3개월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산 앞에 이르러 거기에 머물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산으로 불러올리십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갈대바다를 건너며 이집트 군대가 바다에 삼켜지는 것을 보았고, 쓴 물이 단 물로 고쳐져 그 물을 마실 수 있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마실 물이 없어 하나님께 원망했을 때 바위에서 솟구치는 물로 해갈할 수 있었으며,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들 속에서 출애굽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하는데 꼭 필요했을 것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은 공허한 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산 앞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그를 보낸 증거는 출애굽 이스라엘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으니(출 3.12), 모세도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었을 때부터 그들을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결과였습니다(출 2,24-25 참조). 그러면 이러한 확인과 실현의 결과 하나님과 모세 및 이스라엘의 관계는 완성된 것일까요?

하나님은 산 위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나와의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세계가 다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약속에 따라 구원행동을 하셨지만, 그것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더 이상 그 약속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미래를 보증해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제안에 담긴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아직 시작됐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 관계를 시작하고 세계를 향한 계획을 실현시키시려고 하십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셨을 때 세계 모든 민족들이 너와 네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 12,3; 26,4; 28,14). 그 뜻을 이제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통해 펼치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들 자신의 결정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세계를 위한 사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온 세상을 복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와의 계약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의 말씀을 담은 계약이 바로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법을 지키고 사제 나라가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 계약에 응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여기서 중단되고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계획은 취소까지는 아니어도 지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활동으로서의 출애굽은 이 계약을 위한 하나님의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응답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셨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활동과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을 확인한 그들은 망설임 없이 하나님의 요구에 ‘예, 그리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그에 바탕한 책임적 관계에 들어갑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그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예레미야는 마침내 이스라엘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었다고 선언하는데 이릅니다(렘 31,31-34; 또한 3,16도 참조).

요한복음의 나무와 가지 비유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그리스도인에게로 확대한 비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로, 예수는 참 포도나무로, 우리는 가지로 비유됩니다. 가지는 나무 때문에 생겨나고 나무에게서 자원을 공급받습니다. 가지는 그렇기 때문에 잎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가지의 그와 같은 활동이 그 나무의 성장과 번식에 기여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내세워 내가 없으면 나무도 별거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무는 다른 가지를 낼 수 있고, 접붙여진 다른 가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만하면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나무나 가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농부와 나무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선택되었다는 자부심만 갖고 있었으며, 하나님과 세계 앞에서 겸손할 수 없었기에 그의 말씀을 지지키 않았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복이 되어야 하는 책임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나무와 가지는 공속관계에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 안에, 가지는 나무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 관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안에,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가 우리 안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요? 또 그러한 상태가 계속 될 수 있는지요?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시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단언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의 계명을 지키면 그의 사랑 안에 머물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우리가 그의 사랑 안에 머물 길이 없습니다. 그 때에만 우리는 열매 맺는 가지가 되어 계속 그 나무의 가지일 수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나무에서 제거하실 것입니다.

두 본문에서 모두 그의 말씀 곧 계명/법을 이야기 합니다. 그 말씀 그 계명은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어 이스라엘은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고 사랑이 없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사랑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자들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사제 나라가 되는 길이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길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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