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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출 20:8-11; 신 5:12-15; 마 12:1-8; 막 2:23-28; 눅 6:1-5)십계명 다시 읽기 ⑸
홍인식 목사 | 승인 2021.09.13 15:32
▲ 창조세계의 조화로운 쉼 ⓒGetty Image

오래 전 유행했던 말 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는 광고 문구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고 한국사회에서 주 5일 근무의 정당성을 한창 논의하던 시절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유행되는 말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너무 일에만 치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가입국가 중 멕시코와 한국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고 합니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하여 한국 노동자들이 가장 빨리 사망한다고 합니다. 보릿고개를 넘어서는 것이 민족적 과제였던 우리! 보릿고개를 넘기 위하여 온갖 희생 하며, 쉬지 않고 살아왔던 한국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릿고개를 넘어서고 나름대로 허리를 펴고 살만해졌지만, 일에만 매달리는 문화가 형성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일 중독증에 걸릴 만큼 우리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 존재의 목적인 양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안이 많은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일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지 않고 가만히 집에 앉아 있거나 혹은 그냥 쉬고 있으면 불안해합니다. 남들에 비해서 뒤떨어져서 결국 생존경쟁에서 낙오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경쟁이 심한 선진국으로 가면 갈수록 이 같은 삶의 모습은 더욱 처절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한 후에 쉬기 위하여 사는 것입니까?

한국 사람들의 일 중독증은 종교 생활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많은 한국교인들의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지 않고서는 불안해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쉰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쉬어가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모임을 갖습니다. 세계에는 한국교회만큼 모임이 많은 교회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마 쉴 날이 없는 교인들이 한국교인일 것입니다. 웬일이 그렇게 많은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교인들이 한국교인들입니다. 종교 생활에 있어서 일 중독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인들은 대체로 피곤해합니다. 일만 하고 쉼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 짜증만 나는지 싸움이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교회가 다른 나라 교회에 비해서 싸움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 원인이 바로 너무 일만 많이 해서 피곤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만일 한국  교회의 일을 지금 하는 것에서 반 정도 줄여 보면 싸움도 반 정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믿음 생활도 이렇게 쉬는 것 없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믿음 생활을 하는 목적이 이렇게 일하는 것일까요? 혹시 오늘 우리 교인들에게 ‘열심히 믿은 당신, 떠나라’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4번째 계명은 ‘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간단하게 한마디로 요약하면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쉬어라’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쉼’이라는 것은 믿음 생활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10계명 대부분이 ‘~ 하지 말라’라는 부정적인 명령어로 되어 있는데 두 계명만이 ‘~ 하라’라는 긍정적인 명령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4 계명과 제5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와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이 두 가지 긍정적인 명령은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정신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긍정적인 명령은 다양한 십계명의 정신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오늘은 쉼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지향하는 바입니다. 바로 창조세계는 이 ‘쉼’이라는 주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폰 라트(Von Rad)라는 구약학자는 ‘쉼’(shalom)을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의 모습을 ‘혼돈, caos’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혼돈의 세계에서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마지막에 ‘안식’을 제정함으로서 세계의 창조를 완성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혼돈에서 안식을 향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caos’에서 시작하여 ‘shalom’을 향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이처럼 쉼을 향하고 있습니다. 쉼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쉼이 없는 일만 하는 세상은 악의 세계입니다. 계시록은 이러한 두 가지 세계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과 유황의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영원히 올라올 것이며, 그 짐승과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과, 또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계 14:11)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그들 뒤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계 4:13)

이제 모든 사실이 자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결국 하나님 안에서 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믿음 생활도 경쟁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에게 쉼을 주면서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주는 경쟁의식과 일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쉰다는 사실은 그리 달갑지 않은 주제입니다. 쉰다고 하는 것은 미덥지 않은 일입니다. 믿음 생활을 쉼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향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의 경직성에서 나타납니다. 유연함을 잃어버리는 것에서 나옵니다.

마태복음 12:1-8, 마가복음 2:23-28 그리고 누가 6:1-5의 기록에는 신앙에 있어서 일과 휴식에 대하여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견해를 날카롭게 대조해 주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비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변호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 모순적인 것이 발견됩니다. 안식일에 밀을 잘라 먹는 것은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리새인들의 지적은 ‘일하지 말고 쉬어라’라는 지적이고 예수님의 변호는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라는 것으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쉼’을 옹호하고 있고 예수님은 ‘일’을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깊게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의 법칙인 ‘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달리 말하면 바리새인들에게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일’이라는 개념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날 제자들이 배고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도록 놔두고 있습니다. 배고픔이 있는데 어찌 진정한 안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줌으로써 그들에게 진정한 ‘쉼, 안식’을 허락해 주고 계십니다. 밀 이삭을 잘라 먹는 행위가 바리새인들에게는 일로 보였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쉼’이었고 진정한 안식일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조차도 주인이다.(마 2:27-28)

이제 우리에게 안식일의 개념이 분명해집니다. 진정한 휴식이라는 것은 인간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억매이게 만들고 멍에가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서 사람들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인 멍에를 풀어주고 그들로 마음 편하게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샬롬’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종류의 일로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쉼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서로를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제4 계명은 우리에게 또 다른 믿음 생활의 정신과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쉼을 통한 자유의 삶’ 입니다.

1. 인간의 모든 제도는 인간들에게 쉼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 쉼을 위하여 떠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그리고 쉴 새 없이 교인들을 조이고 강요하는 목회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교우들도 목회자에게 쉴 새 없는 일을 강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쉬기 위하여 살고 쉬기 위하여 믿는 것입니다. 쉼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일하기 위해서입니까? 재물축적을 위해서 끊임없이 일만 해야 합니까? 그 재물축적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쉼을 통하여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2. 안식을 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억누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믿는 이들이라고 한다면 나의 행위를 통하여 이웃들에게 편안함을 주어야 합니다. ‘쉼을 통한 자유의 삶’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들을 향한 것도 되어야 합니다. 나만 편하게 쉬면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쉼이 결국 모든 이웃의 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서 진정한 쉼을 갖는 사람들에게서는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이 저절로 풍겨 나옵니다. 그들 옆에 가면 나도 모르게 편안해 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쉼이 없이 믿음을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 옆에서면 저절로 긴장되고 불편해집니다. 바리새인 옆에 서면 불안해 지지만 예수님 곁에 있으면 편안해지지 않습니까. 이웃에게 휴식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입니다.

3. 안식을 향하는 삶을 향한 사람들은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진정한 휴식을 취할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휴식을 통하여 recreation(재창조)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휴식이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휴식은 휴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휴식을 마치 일인 것처럼 합니다. 휴식을 위하여  하는 sports가 또 다른 일이 되게 합니다. 휴식을 위하여 갖는 취미 생활이 또 다른 일이 되어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오늘 우리는 쉼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이 없는 세계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믿음의 결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제 ‘열심히 믿은 당신, 떠나라’ 휴식의 세계, 샬롬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향하여 떠나십시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여러분에게 진정한 쉼의 세계가 임하기를 기원드립니다.

홍인식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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