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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속 그리스도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세상의 기준으로도(빌립보서 4:8-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9.26 15:14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지난 7월10일에 비대면 가정예배로 전환한 이후로 거의 세 달이 다 되어갑니다. 너무나 긴 기간을 가정예배로 드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라고 말했을 때 항상 성도와 세상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면서 살아갈 것인지,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세상에 전할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던가, 미움을 삼가야 한다던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도록 권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비대면이 요구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정부가 지정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백신 접종했으니까 이제 대면 시대로 전환해도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임 정도야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몰래 모임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추석이 지난 9월24일,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는 3,200명을 넘어섰습니다.

저와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델타 변이 발생 이후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산세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게 유지된 이유는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방역지침을 잘 지키고 살아가신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최대한 방역수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이후 가까운 가족 이외의 사람과 만날 일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안 계신 공간에서 혼자 일하다가 갈 뿐입니다. 코로나라는 환경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시대 속에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한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주변 이웃들과도 마스크를 쓴 채로 목례 밖에 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비대면 예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이 시기에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다시 재확인하며 관계를 굳건히 세우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세상의 관계까지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빌립보서의 말씀으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빌립보서가 두 개 이상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편지로 편집되고 합쳐졌다고 말합니다. 이 편지가 최소 두 개라고 말했을 때, 오늘 본문인 4장 8-9절은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이 됩니다. 두 번째 편지는 3장 1절부터 4장 1절까지와 4장 8-9절로 이루어져있고 나머지 부분은 첫 번째 편지입니다.

빌립보서가 본래 몇 개의 편지로 이루어졌는가는 지금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 8절에 나타난 덕목들이 흔히 성경에서 사용되는 용어도 아닐뿐더러 성경에서 말하는 덕목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적인 용어가 아닌 스토아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가져와서 신앙의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2020년 2월 팬데믹이 시작된 시기, 한 교회의 예배 모습 ⓒReuters

오늘 본문 8절에 나타난 덕목들, 참됨, 경건함, 옮음, 정결함, 사랑받을만 함, 칭찬받을만 함, 이 여섯 가지 덕목들이 스토아 철학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세부적으로 따져본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윤리적 덕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큰 맥락에서는 일반적인 윤리 덕목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이런 세부사항을 비교하는 일은 짧은 말씀 속에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생략하려고 합니다.

다만 사도 바울이 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성경적인 용어가 아닌 스토아 철학의 용어를 사용했는지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헬라 철학의 용어들을 종종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이 헬라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철학 용어를 사용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 역시도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토아 철학 용어를 차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이 편지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빌립보 교회는 빌립보서가 기록되기 직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이미 상당한 시간 동안 성장해온 교회입니다.

이들이 성경적인 용어를 몰랐을 리도 없고, 사도 바울이 성경에 나타난 덕목들을 나열했다고 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할 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어찌보면 세상의 용어인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덕목으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이 윤리적으로 바로 서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일부러 스토아 철학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를,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권면이기 때문으로 봅니다. 그리스도인들 내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세상 사람들의 언어 속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전히 우리 안에서 선하다고 하는 기준에만 부합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대면 예배를 진행하고 식사까지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배를 진행하면서 하는 말에 ‘몰래’, ‘그냥’, ‘신고할 사람 없으니까’ 라는 단서가 붙는다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선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행동입니까?

세상과 우리는 다르다고 말하는 ‘거룩함’은 이젠 우리의 핑계가 되어버렸을 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지만 하나님께는 칭찬받게 되는 그런 거룩함은 없습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도 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완벽한 선인이 되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 세상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선은 지키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세상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선함은 상식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지금 사회에서 선한 사람으로 불립니다.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길을 가다보면 마스크를 벗고 음료를 마시며 걸어다니시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거리를 다니시는 분들도 보입니다. 이건 지금 사회의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또 식당에서 인원수 제한 때문에 큰소리치며 화내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제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런 모습도 상식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아닙니다. 무턱대고 우겨보면 뭐라도 떨어지는 세상도 아닙니다. 이것은 지금 사회의 상식이 아닙니다. 지금 사회에서 이런 행동은 갑질하는 사람이거나, 남의 말은 듣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이 될 뿐입니다. 더 나아가서 악행에 속하는 행동이 됩니다. 우리가 완전한 선인이 되진 못하더라도, 기품이 넘치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식적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된 비대면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넘어서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기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말해왔던 덕목들 속에서만 선한 사람인지, 세상의 기준에서도 선한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기간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선하게 살아가고, 세상 속에서도 선하다 칭찬받으며 살아간다면, 오늘 본문 9절에서 사도 바울이 축복한 것처럼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또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의 인사말인 7절의 말씀과 같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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