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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기: 나를 넘어서는 성서 읽기퀴어성서주석을 이야기 하다 ⑹
변영권 목사(예사랑감리교회) | 승인 2021.10.04 21:54
▲ Rembrandt, 「Ahasuerus and Haman at the Feast of Esther」 ⓒPushkin Museum/Wikimedia
지난 4월 무지개신학연구소가 『퀴어성서주석: I. 히브리성서』 (퀴어성서주석 번역위원회 옮김)를 출간했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낳았고 출간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속된 말로 위험한 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에큐메니안은 『퀴어성서주석』를 각 책별로 간단하게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차원이다. - 편집자 주

오래전, 에스더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여성이 자기는 에스더보다 와스디에게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의 손님들에게 자기 부인의 미모를 자랑하려고 와스디를 불렀을 때, 그 명령을 거부한 것이 마치 더 이상 남편의 장식품으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스더기를 여러 번 읽었지만 와스디는 그저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위한 하나의 문학적인 장치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그 여성의 이야기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관점을 열어주었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 성서를 읽는 저 자신이 전통적인 성서 해석, 그리고 남성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틀을 읽고 성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그 틀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성서가 갖고 있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너무나 쉽고 단순한 답을 내놓게 되고, 결국 그것은 성서를 통해 펼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제한하게 만듭니다. 물론 전통적이고 익숙한 해석들을 모두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서 본문은 고정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의 본문을 마주할 때마다 새롭고 살아있는 하느님의 음성을 새롭게 듣게 되곤 합니다. 그런 신선한 충격들이 한껏 교만해진 저를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겸손해지도록 인도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받아보게 된 <퀴어성서주석>은 매너리즘에 빠진 저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미 내용을 익숙하게 알고 있고, 설교자로서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과 지혜들을 충분히 찾아보고 설교해왔다고 생각했던 에스더기에 관한 모나 웨스트(Mona West)의 주석은, 비록 분량도 많지 않고, 단어와 문법부터 분석하면서 시작하는 정밀한 주석은 아니지만, 에스더기를 새롭게 읽기 위한 중요한 지점들을 제시합니다.

에스더기는 논란이 많은 책입니다. 모나 웨스트는 “에스더기에는 언약, 율법, 음식 규정, 또는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과 같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주제가 언급되지 않는다.”(미주 1)고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설에 의하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에스더기를 신앙과 관계없는 유대인들의 설화라며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요람 하조니는 “랍비들이 영원한 성서의 교훈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성서의 두 부분은 절대로 폐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모세오경이고 나머지 하나가 에스더서다.”라고 말합니다.(미주 2) 아마 이것은 에스더기의 장르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른 문제 같습니다.

흔히 에스더기를 역사적인 문서로 보기도 하지만 모나 웨스트는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 속에서 에스더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 출신 왕비의 이름이 발견된 적은 없으며, 따라서 에스더기는 허구 또는 역사 소설이라고 단언합니다. 구약 성서에서 에스더기의 위치가 역사서와 성문서 사이에 있다는 점은 이런 고민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아무튼, 에스더기를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문학작품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이 이야기가 가진 독특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기의 1차 목적은 유대인의 축제인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모나 웨스트는 “캠프적 읽기”(a camp reading, 우스꽝스럽게 읽기)를 통해 에스더기를 “희극”으로 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희극의 특징을 “과장”, “크로스드레싱”, “환관”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에스더기의 중요 등장인물인 아하수에로 왕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제국 전체 남성들의 권위가 와스디 한 명의 불복종 때문에 침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와스디의 불복종 소식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온 제국에 그 소식을 알리게 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에스더기에는 이런 과장되고 역설적인 묘사를 통한 정치권력에 대한 풍자가 은근하게 깔려 있습니다. 

에스더는 유대인이지만 다른 유대인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할 때, 페르시아 왕비의 옷을 입고 금식합니다.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의 위기를 앞두고 굵은 베옷과 재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에 도장을 찍은 페르시아 왕의 옷을 입고 높임을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는 반대되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에스더기의 특징, 즉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경건, 정결법, 종교의식, 억압적인 제국에 대한 심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에스더기는 이런 크로스드레싱을 통해 유대인과 페르시아인이라는 이분법에 도전하며,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이분법들을 극복하는 길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에스더기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들은 환관들입니다. 에스더기의 중요한 사건마다 환관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왕궁과 왕국 밖, 남자와 여자 사이를 오가며 중요한 사건들을 주인공들에게 전달하고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헤개는 에스더가 왕의 눈에 띄게 만듭니다. 환관들은 유대 백성에게 닥친 위기를 알려주고, 모르드게와 에스더 사이를 오가며 소식을 전합니다. 하르보나는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한 장대에 하만을 매달자고 제안합니다. 성별 이분법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환관들이 다른 이들이 넘을 수 없는 경계선들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모습을 그리는 에스더기의 이야기는 오직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준 외에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보수 개신교의 편협성과 대조됩니다.

모나 웨스트의 제안에 따라 에스더기를 다시 읽으면 익숙한 성서 읽기를 넘어서, 유대인이면서 페르시아인인 주인공들과,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조연들이 어떻게 억압적인 제국의 권력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체제 안에서 체제를 전복하는지 새로운 관점에서 읽게 됩니다. 그것은 에스더기를 넘어서 성서 전체와 우리의 삶 전부를 바라보는 관점, 성소수자와 다양한 이웃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새롭게 해 줄 것입니다.

미주

(미주 1) 『퀴어성서주석』 (무지개신학연구소, 2021), 441.
(미주 2) 요람 하조니,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홍성사, 2017), 24.

변영권 목사(예사랑감리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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