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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 사람으로어떤 상황일지라도(창세기 30:40-4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10.31 17:03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오늘은 창세기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던 이야기들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에 관한 몇 가지 사건들을 살펴보고, 이 사건을 통해 창세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와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에서 주연급 인물들의 재산이 늘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복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재산과 자손을 늘려갑니다. 이를 잘 드러내는 본문이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라반의 집에 이르러 전했던 말이 나타난 창세기 24장 35-3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재산의 증가는 하나님의 복이라는 기본 개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늘렸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부 본문 중에는 이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였고, 그 결과 재산이 늘어나게 되었다고 언급하는 본문이 있습니다. 이런 본문들을 몇 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아브라함 이야기 중에 아내 사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이유로 인해 지역을 옮기게 되었을 때,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애굽 왕 바로를 속였고, 20장에서는 그랄 왕 아비멜렉을 속입니다.

바로의 경우는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인지 모르고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면서 아브라함에게 사례금을 줍니다. 바로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이후에 아브라함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아브라함에게 돌려줍니다. 아비멜렉의 경우에는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되돌린 이후에 사라에게 수치를 주었다는 대가로 은 천개를 줍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에 관한 이야기는 26장에서 이삭의 이야기로 바뀌어서 반복됩니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야기가 구전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 이야기와 이삭 이야기 두 가지 형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재산과 관련해서 보았을 때, 이삭 이야기는 아브라함 이야기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받은 수치의 대가로 은을 받았지만, 이삭은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100배의 결실을 얻었다고 말합니다(창26:12).

또 하나의 이야기는 라반과 야곱의 이야기로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에서가 받을 축복을 빼앗은 뒤에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갑니다. 라반의 집에 거하는 동안 야곱은 라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본래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간 일했지만,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언니 레아를 아내로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7년을 더 일해서 라헬과 결혼하게 됩니다.

창세기 29장 30절에는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더 일했다고 말하는데, 이때 나타난 세 번의 7년이 정확한 햇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야곱은 상당히 오랜 기간 라반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라반과 품삯 계약을 맺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의 재산을 늘려주셨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반을 떠나기로 결심한 내용이 담긴 다음 장의 내용을 보면, 31장 7절에서 야곱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라반이 자신을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했다고 합니다. 요즘식으로 보자면, 라반은 야곱에게 갑질, 갑의 횡포를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라반의 횡포 속에서 야곱은 지혜롭게 자신의 재산을 늘립니다. 야곱이 한 일이 정확히 어떤 원리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튼튼한 양은 자신에게로 돌렸고, 약한 양은 라반에게로 돌렸습니다.

지금 저희가 살펴본 이야기들에는 차이도 있지만, 공통된 부분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유랑민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네게브 땅을 떠나 그랄 땅으로 이주합니다. 이삭의 경우도 땅에 흉년이 들어 그랄 땅으로 이주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유랑민이었던 반면에 그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인물들은 그 땅에 정착해 있던 토착민들입니다. 토착민인 이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비교했을 때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력 관계에 있어서 우위에 있던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애굽 왕이나 그랄 왕은 왕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브라함이나 이삭보다 큰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반은 그 지역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단지 외삼촌이라는 사실을 떠나서도 야곱보다 우위에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권력적으로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던 이들과의 갈등 속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재산을 빼앗기기보다 오히려 재산을 늘립니다. 유랑민과 토착민의 갈등이라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재물을 빼앗기기보다 늘릴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민담이었다고 본다면, 이 민담을 전했던 이들은 유랑민이었거나, 특정 지역에 정착했으나 그 기간이 짧았던 집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지역, 또는 잠시 머문 지역에서 토착민들과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의 경험은 오늘 저희가 살펴본 본문들의 형태로 만들어져서 구전되었을 것입니다.

ⓒGetty Image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들은 약자가 강자의 권세를 뒤엎고 오히려 재산을 늘릴 수 있었다는 희망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조선 시대 소설 홍길동전에 나온 홍길동과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차이가 있다면 홍길동은 악한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지만, 이들은 토착 세력의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돌립니다.

야곱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심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토착 세력인 라반에게는 힘없고 약한 양들만이 돌아가게 했고, 튼튼한 양은 모두 자신이 취했기 때문입니다. 토착 세력과 유랑 세력의 판도가 뒤집힌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 민담들의 본래 형태는 이 정도의 이야기였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창세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유랑민이 토착민 세력을 이겨냈다는 내용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배경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

유랑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그 지역에 갈 때 두려움을 안고 갑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 아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꼈고, 야곱이 가졌던 두려움은 28장에 나타난 벧엘 이야기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며 두려웠기에 하나님을 붙잡고 언약을 맺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하던 이들의 뒤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며 섭리하셨다고 창세기는 이야기합니다. 이 믿음과 완전히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본문이 여호수아 1장 9절이라고 생각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며, 또 그것을 바라며 희망을 품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자신들을 도우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위협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는 믿음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신앙적 의미, 이야기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는 나쁘지 않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창세기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늘렸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복으로 재산이 늘었다고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저희가 나눈 본문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이 이야기가 올바른 이야기,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해도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창세기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유랑민과 토착민의 상황이 역전되는 희망을 그리기 위해 과장하고 있는 부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아마도 가끔 이런 말씀을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의 지혜를 사용했고 그것이 갈등을 만들어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이들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혜를 사용했기에 갈등이 일었다는 것은 창세기에는 나오지 않는 우리의 해석입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행동, 아내를 누이로 속여서 왕의 첩실에 들였던 행동이나 야곱이 라반에게 약한 양만 돌아가게 만들고 자신이 튼튼한 양을 모두 차지한 행동도 정당한 행동처럼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런 행동이 우리에게 통쾌함을 줄 수는 있습니다. 홍길동이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았을 때 우리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시대에 대기업 회장들의 집을 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세상 속에서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입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대상이 권력을 가진 존재이고, 부유한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또 이를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복이라고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나의 이득은 누군가의 손해로 이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이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이고, 초대 교회가 추구했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 아브라함과 애굽 왕 바로의 이야기를 제외하고,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이야기, 이삭과 아비멜렉 이야기, 야곱과 라반 이야기는 모두 화해의 언약을 맺으면서 끝납니다. 유랑민이 토착민을 이기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화해로 이야기를 맺습니다. 이는 착취적인 재산 획득과 지속적인 갈등 상황이 창세기의 의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늘 창세기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던지 지키고 오히려 부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 자체는 지금 시대에 우리가 따라 해도 되는 행동은 아닙니다. 그런 마음가짐도 옳지 않습니다. 창세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만 잘 살아가길 바라지 않고 함께 잘 살아가길 바라며 세상을 살아갈 때, 나의 부유함을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해하며 함께 선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어디에 있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도우실 줄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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