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어둠 속의 시대를 향해 오신 분평화의 빛(이사야 9,1-7; 요한복음 12,44-5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11.11 16:42

우리는 빛과 어둠이라는 성서의 이분법적 표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중간지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분류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둠 속에 있는지요? 누구도 그러한 세상을 원하지 않지만, 세상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일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유일하게 강해지기를 원하고,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시도들은 거의 모두 불의를 수단으로 삼습니다. 종교인들을 비롯해 이를 경고해야 할 사람들이 있기는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런 자들에게 붙어 엉뚱한 소리들만 해댑니다.

그래서 세상이 온통 어둠이라고는 말 못할지 몰라도 어두운 면이 많은, 어쩌면 더 많은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한 공허한 노력들과 곡학아세 때문에 세상은 허다한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과 절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달라질까 기대도 해보지만, 기대만큼 달라지지 않는 세상이고, 달라졌나 하면 곧 이전 상태로 돌아가고 마는 세상입니다. 세상을 어둡다고 하면,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빛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소식을 복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가 활동하던 시대를 어둠으로 규정합니다. 나라가 강성했을 때에는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 때문에 백성들이 울부짖어야 했고 나라가 약해졌을 때에는 그에 덧붙여 외세의 침입과 전쟁에 의한 고통 때문에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이 비단 이사야 시대만의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세계사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된 현상입니다.

이사야는 그 시대를 향해 큰 빛을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 나라를 ‘빼어나게’ 하시고 그 나라의 기쁨을 크게 하시고 그 나라 사람들이 주 앞에서 기뻐하게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이중고에서 해방된 기쁨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해방을 ‘빛을 다시 찾다’는 뜻의 광복이라고 합니다. 역사의 어둠을 말끔히 걷어낼 그 큰 빛의 시대가 어떻게 오는지요?

여기서 우리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선포됩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다,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큰 빛이 아기와 함께 오다니,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해가 떠오르듯 시간을 두고 큰 빛이 온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아기가 누구인지 어디에 태어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오직 그 아기의 출생과 그 아기의 역할만 묘사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아기와 함께 그려질 미래가 그를 가리키는 말들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언자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왕권이 강화되기 이전 고대의 왕은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이기 보다는 백성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조언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왕의 처음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권력자로서 군림해왔던 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름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돕고 걱정을 덜어주는 자 그가 ‘왕’이었습니다. 정말 그런 자가 왕의 자리에 있다면, 백성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또 하나의 이름은 평화의 ‘왕’입니다. 그는 평화를 수립하고 그 평화가 지속되게 하는 왕일 것입니다. 밖으로는 외세와의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안으로는 착취와 수탈을 막을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한 모습 아닐까요?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그 평화는 정의와 공의의 실현을 내용으로 합니다. 억울함이 없고 평등을 이루고 위협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이 이름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기쁨으로 설레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아기가 그 일을 수행할 때까지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이 실망스러운가요? 당장 오지 않는 미래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본문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릴 수 있을까요? 희망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이사야의 선포를 듣는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한마디를 덧붙이십니다. 만군의 야훼께서 열심을 내어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근거를 둔 희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희망의 토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희망을 낳고 희망이 우리를 견디고 기다리게 할 것입니다.

이 기다림 끝에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 사건은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을 넘어 볼 수 있게 눈을 열어주는 빛이었습니다. 절망과 포기를 딛고 일어서게 하는 희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나라를 일구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평화의 ‘왕’을 보았습니다. 그에게서 세상을 결코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십자가에서 새로운 미래가 마치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처럼 시작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평화의 왕이 평화의 나라를 이룰 때까지 기다리며 평화의 빛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비록 어둠을 강요하고 어둠이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존재들입니까?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임을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굴곡을 겪는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조언자로 다가 오셔서 우리를 일깨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흔들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계속 평화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평화의 빛을 품고 삽니다. 평화를 해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며 그 빛을 비춥시다. 차별과 냉대 때문에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됩시다. 혐오와 배제 때문에 교회 문밖에서 통곡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문이 됩시다. 억압과 수탈 때문에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평화의 빛이 됩시다. 서열화와 경쟁 때문에 지친 이들에게 평등의 문이 됩시다. 평화의 빛을 따라 평화의 길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빕니다. 평화의 왕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