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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사랑합니다. 사랑합시다.(시편 13:1-6; 고린도전서 13:1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1.02 15:28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Getty Image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시편 13:1-6)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보통 하나의 본문으로만 말씀을 전하는 편입니다만, 이번 주일 말씀은 저희 교회 2022년 표어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본문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수들이 선정한 2021년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입니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과 도둑이 한패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한 사자성어는 ‘인곤마핍(人困馬乏)’으로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힘든 상황을 뜻합니다. 2년간 지속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 국민과 국가 자체도 피곤한 한 해였다는 점에서 많은 표를 받은 듯합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매년 교수들이 선정하는 사자성어는 사회 문화의 전반적인 상황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에 관한 사자성어보다 정치 상황을 묘사한 ‘묘서동처’가 1위로 뽑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한 해 동안 정치 관련 뉴스를 보며, 경찰이나 검찰에 대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조금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집단이나 잘못을 범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악을 처단해야 하는 사람들이 악한 세력과 결탁하고, 법을 집행해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법의 맹점을 파고들어 악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들은 전체 집단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일부의 비리나 문제가 전체 집단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우리나라 드라마 중에 ‘지옥’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우리의 인지를 벗어난 어떤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새진리회’라는 신흥종교 단체가 생겨났고, 전세계 절반이 이 종교를 따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의 전체적인 내용은 ‘새진리회’의 발흥과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드라마에는 국가 공권력과 기존 종교들의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점을 들어서 이 드라마에 허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지옥’에 대한 글을 하나 읽었는데, 이 글에서는 이런 부재가 허점이 아니라 드라마의 노림수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공권력의 부재, 기존 종교의 부재가 ‘지옥’이 말하고자 했던 점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의 부재는 지금 시대 사람들이 국가 공권력과 기존 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지금 우리나라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불신’입니다. 지금 시대는 완전한 불신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국가는 세금을 내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잃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죽음 이후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제기한 국가와 종교의 문제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불신이 쌓여갑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7-80년대 고도성장 시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성공과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는 어딘가에서 실패했다면, 성공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한 경쟁 속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실 잘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단편적인 예로 대기업 입사 경쟁률만 봐도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반 MBC 뉴스에서 최악의 입사 경쟁률이라는 제목으로 경쟁률이 3:1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이 지나가면서 평균 10:1까지 올라갑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경쟁률 98:1까지 올라가고 2010년이 넘어가면서 대기업 입사 경쟁률은 백자리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대에 중소기업 이하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기업이나 공기업 입사 경쟁률 100:1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합니다. 어쩌면 누군가 내 이익을 빼앗아가지는 않을까 상대를 견제하며 불신합니다. 2030세대에서 나타나는 남녀 갈등 문제는 성차별적 인식에서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은 군가산점 문제, 여성 의무할당제 문제 등이었습니다. 결국 채용의 문제에서부터 성별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지금 사회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사회를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거리를 두고, 벽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거리를 두면서 이런 거리감은 더 커졌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최근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의 관계가 크게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통계청 조사까지 살펴보면, 여기에서의 가족이 큰 의미에서 친인척을 포함한 가족이 아니라 한집에 사는 가족에 한정된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맞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내 가족을 제외하면 서로 거리를 두고, 불신하며, 그 불신으로 인해 불만과 분노를 얻게 되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특히 교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대에 우리는 결국 가장 원론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언제나 이야기해왔던 원론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자는 것이 교회에서 전파되는 이야기들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 말하자고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일 것입니다. 흔히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보면서 사랑 이야기는 이해가 되는데, 13절에 ‘믿음’과 ‘소망’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해답은 갈라디아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5-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사도 바울의 편지 곳곳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만, 갈라디아서 말씀에 따라 간단히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활동 초반에는 종말에 대한 소망 컸겠지만,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됩니다.

우리가 품은 소망은 로마서 5장 3-4절에 나타나듯이 ‘환난’과 ‘인내’와 ‘연단’ 속에서 꽃 피우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어려움 앞에서 때로 좌절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본 이들은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은 끊임없이 선순환하게 됩니다.

오늘 살펴본 시편 13편 본문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 믿음으로 인해 싹튼 소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원수들로 인해 넘어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이 죽임을 당하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앞에 계시지 않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환난 속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실 도움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사랑으로 보답하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대해 구약성경의 말씀을 살펴보자면 어쩌면 신명기에 나타난 말씀들이 더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찬미하는 시편을 살펴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시편 13편을 살펴본 이유는, 우리가 평소 품고 있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품은 소망, 그리고 하나님께 바라는 사랑의 형태가 시편 13편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적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말씀 속에도 이런 신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어려울 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전체가 하나님과의 사랑을 이야기하기보다 성도들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사람, 특히나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표출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들은 서로를 믿고, 서로 안에서 소망을 품고,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서로에게 그대로 표현하고 나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사랑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그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을 받는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교회에서 이 사랑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하며, 교회 안에서 성도님들 간에 이런 사랑을 나눠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불신과 불만, 분노로 가득 찬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이들의 마음에도 평안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지금의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전해나가야만 합니다.

2022년 더 좋은 일들이 여러분 앞에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얻는 복도 중요하겠지만, 2022년은 사랑으로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받고 사랑하기에 늘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전달되고, 그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조금 더 사랑으로 넘쳐나는 공간으로 변해갈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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