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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덕목과 시민의 의무: 대통령 후보 간별법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37)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2.01.03 11:08
▲ 이제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 향후 한국 사회의 지표가 될 선거로 예상된다.

새해가 밝았다. 요즈음에는 설이 지나지 않아도 간지(干支)를 붙여 새해를 서둘러 명명하곤 하는데, 올해는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이다. 아마 올 임인년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오래 기억되는 해가 될 것이다. 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가 올해 3월 9일에 있고, 대통령 선거 결과는 공화국의 명운을 가를 것이기 때문이다.

공화국 지도자와 공화국 시민

대통령은 공화국의 지도자이다. 그는 공화국의 자유와 공화국 시민의 자유를 수호할 임무가 있고,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공화국 지도자에게는 막강한 권한과 권력이 부여되어 있다. 공화국의 지도자는 그 직책에 부여된 권한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만일 공화국의 지도자가 그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거나 그에게 부여된 임무를 배반한다면, 공화국 시민은 그러한 지도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공화국 시민은 공화국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지키려는 용기와 헌신의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1) 공화국의 자유가 공화국 주권이 대내외적으로 침탈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라면, 공화국 시민의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하는 것이니, 그 자유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넓다.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자본의 노동에 대한 지배로부터의 자유, 경제적 착취와 수탈로부터의 자유, 사회적 차별과 배제로부터의 자유, 문화적 동일성 강제와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등은 타인의 자의적인 지배로 벗어나고자 하는 공화국 시민이 반드시 꼽아야 할 자유의 목록이다.(2)

공화국 시민은 두 가지 점에서 공화국의 주체이다. 그들은 공화국 시민의 자유를 최대한 실현하도록 공화국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주체인 동시에, 공화국의 자유와 공화국 시민의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공화국 지도자를 통제하는 주체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엄청난 권한과 권력을 갖는다. 그것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이중적인 지위에서 비롯되는 권한과 권력이다. 그 하나는 국가원수의 지위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부 수반의 지위이다. 사람들은 흔히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조직된 대통령제 국가이니만큼 대통령은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고 오직 국가의 집행 권력을 조직하고 행사하는 부분 권력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의 지위를 넘어서서 국가의 통일성과 항구성을 응축하는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한다.

국가원수의 권한은 얼마나 막강한가? 국가원수가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행사하는 권한은 외국의 인정으로부터 시작하여 강화권과 선전포고권에 이르기까지 막중하다. 국가원수가 최고의 통치권자로서 대내적으로 행사하는 권한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최근 박근혜의 사면과 복권으로 인해 논란의 초점이 된 사면권은 국가원수의 권한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사법부의 고유한 업무와 재판에 관여하지 못하지만, 국가원수로서는 사면권을 행사하여 사법적 판결의 효력을 중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면권은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행사하는 권한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가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비상대권이라고 할 만한 긴급재정경제 처분 및 명령권,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 위헌정당 해산 제소권 등의 권한을 행사하고, 국정 조정을 위해서는 국회 임시회 소집 요구권, 국회 출석 및 발언권, 법률안 거부권 및 공포권, 헌법 개정안 제안권, 국민투표 부의권 등의 권한을 가지며,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 소장, 감사원장, 대법관 임명권 등 헌법기관을 구성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실로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영역은 넓고, 그 효력은 막강하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갖는 권한 역시 엄청나다. 대통령은 정부를 조직하고, 정부 각 부서장을 임명하고, 행정부를 감독하는 감사원을 조직하고 통할한다. 대통령은 국무를 심의하고 의결하는 국무회의의 의장이고, 행정부의 각 부서를 통할하는 행정의 최고 지휘자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에 국군통수권자의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행정부 수반의 지위와 권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광범위한 행정입법권이다. 사회국가가 발달하면서 정부의 역할과 권한이 커짐에 따라 법률의 위임에 따라 행사하는 행정입법권은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서 행사하는 권한과 권력을 크게 강화한다. 심지어 법률시행령이나 시행세칙 등의 행정입법은 입법부의 입법 의도와 효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헌법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국가기구인 동시에, 그 국가기구에 부여된 국가원수의 권한과 행정부 수반의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person)이다. 대통령에게서 직무와 사람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결합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를 맡는 사람에게 그 직무를 수행할 만한 능력과 태도가 요구된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의 능력과 태도에 대한 도덕주의적 잣대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자질을 둘러싼 도덕주의적 비난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극성을 부린다. 누구는 어려운 성장 배경과 가족사 때문에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든지, 누구는 아예 인성이 글러 먹어서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다든지, 누구는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든지 하는 말들이 세간에 떠돈다. 그러한 도덕주의적 비난을 부추기는 극우 메이저 매체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가 ‘역대급 비호감 선거’이고 “뽑을 사람 없다”는 카피를 대문짝만하게 뽑아서 정치혐오를 부채질하기까지 한다. 도덕주의적 비난을 앞세워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정치에서 언론이 선출 권력을 비하하면서 선출되지 않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전략이었고, 그러한 비난이 유독 진보 정치인들에게 집중된 것을 보면, 극우 정치와 극우 정치인들에게 힘을 몰아주는 전략이기도 했다. 진보적인 정치인들도 도덕주의적 잣대로 보면 별 볼 일 없는 자들이니 기득권 카르텔에 속한 보수적인 정치인들의 도덕적 흠결을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퉁 치는 것이 그 전략을 펼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러한 정치적 도덕주의는 물론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낡은 유물이다. 그러나 정치가에 대한 도덕주의적 평가는 그 뿌리가 워낙 깊어서 오늘의 한국 정치를 크게 왜곡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우리의 정치문화에서 도덕주의는 유가의 도덕정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가는 민본(民本)을 정치의 요체로 삼았지만, 정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군자였다. 맹자가 말하는 군자친민(君子親民)이 바로 그것이다. 군자의 정치는 도덕정치이고, 그 강령은 『大學』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총괄되어 있다. 인민주권에 바탕을 두고 공화국이 수립된 오늘의 정치에서 군자친민의 도덕정치 강령이 소환된다는 것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에게 군자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투영되었고, 그것이 그 지도자들의 카리스마를 강화했던 측면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던 김대중 씨나 김영삼 씨는 웅대한 뜻을 품고 민중을 이끄는 지사(志士)의 대접을 받았고, 반드시 선생(先生)의 칭호로 높임을 받았다. 그들이 현실정치가로서 당권의 중심에 서 있을 때나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때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기 위해 냉혹한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많은 사람이 그들을 선생의 칭호로 부른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이었을까?

책임정치와 대통령의 덕목

공화국 정치는 도덕정치가 아니고 책임정치여야 한다. 정치적 권한과 권력을 행사한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정치가 책임정치라면, 책임정치를 수행하는 정치인의 능력과 태도는 도덕주의와는 다른 척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책임정치의 일차적인 관심은 정치적 행위 과정의 조직과 그 결과에 있는 것이지, 정치적 행위자의 도덕적 역량과 그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정치적 행위자도 도덕과 양심의 요구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정치를 수행하는 정치가의 역량은 도덕정치가 앞세우는 수신(修身) 같은 것일 수 없고, 근면, 정직, 성실, 인내 등과 같은 개인윤리의 덕목들일 수 없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세 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열정, 안목, 책임이 그것이다. 권력의 기회를 확보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열정, 자신의 정치적 기획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냉정한 예측과 계산, 자신의 정치적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태도는 정치적 행위자가 갖추어야 할 특별한 역량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의 이중적인 지위에서 행사하는 권한과 권력을 생각해 보면, 대통령은 그 권한과 권력을 책임 있게 제대로 행사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공화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일차적인 모습은 세종 같은 성군도 아니고 도덕적 역량과 품위를 갖춘 성자도 아니다. 공화국 대통령은 공화국의 주권과 자유, 공화국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열정에 사로잡혀야 하고, 공화국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냉정한 안목을 갖고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취해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공화국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대통령은 책임정치의 세 가지 덕목들 이외에도 세 가지 역량을 더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맡겨진 권한과 권력이 너무나도 막중하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헌법 규범을 체화한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한 마디로, 그는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인민주권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엄중하게 구별할 능력을 갖춘 공화국 시민이어야 한다. 둘째, 그는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덮거나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치의 수호자인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그는 국민적 관심사를 놓고 조정하고 타협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조정과 타협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중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가에게 요구한 최고의 덕목인 신중성은 말을 줄이고, 말을 맥락에 맞게 골라서 사용하고, 인내심을 갖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편의 반발을 헤아리고 이를 포용하는 능력이다.

공화국 시민의 의무

공화국 시민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인물의 능력과 태도를 평가하고 가장 적절한 인물에게 대통령의 직책을 맡기는 주권자이다. 공화국 시민은 공화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주체에 그치지 않고, 공화국의 주권과 자유를 지키지 못하고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를 대통령의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주체이기도 하다. 공화국 시민의 참여와 통제 없이는 대통령 중심의 권력체제를 갖춘 공화국은 인민주권의 공화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될 수 없다. 따라서 공화국 시민은 호민(虎民), 곧 호랑이 같은 인민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국 시민은 대통령 후보들이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갖추었는가를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대통령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은 그들의 역량과 태도를 평가할 때 반드시 참고할 자료들이다. 말은 바로 그 사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규범의 중심이 되는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마치 재산과 교양을 갖추고 있는 자에게만 허용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발언하는 자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가 인정하거나 부여하는 특권이 아니라,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누구나 갖는 권리이고, 국가는 단지 그것을 확인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사실(Faktum)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공화국 대통령의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가?

공직 경험을 가졌던 대통령 후보들은 공직에 따르는 권한과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고 그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제대로 졌는가를 놓고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직권남용에 따른 징계를 받았거나 공권력을 사유화하여 공(公)을 사(私)로 뒤집고, 사를 공으로 우기는 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통령이 갖는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말을 가려 하지 못하고, 제 때에 꼭 필요한 말을 맥락에 맞게 정확하게 말할 능력이 없는 자는 최고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신중성의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 자는 대통령 후보의 자격조차 없다고 말해야 한다. 말을 골라서 정중하게 하고 말로써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은 복잡한 사태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판단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말을 함부로 하는 자가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국민적 관심사를 놓고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여야 할 대통령의 직책을 넘본다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대통령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에 관한 판단은 그것대로 매우 중요하다. 공화국 시민은 인수봉같이 균질성 있는 바윗덩이가 아니라, 계급, 계층, 젠더, 연령, 지역 배경 등에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들로 나뉜 사회세력들의 총화이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에 따라 지지세력들이 특정한 후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결집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약의 현실성과 타당성을 제대로 따져서 노동자, 농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최대한 실현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 직책과 거기서 나오는 권한과 권력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를 가리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는 열정, 안목, 책임, 민주적 가치관, 준법 능력, 신중성 등 여섯 가지 덕목을 갖춘 민주 시민이어야 한다.

공화국 시민의 의무는 공화국 선거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공화국 시민의 참여와 통제는 선거를 통해 공화국 지도자를 제대로 뽑는 데서 시작한다. 검은 호랑이의 해에 시행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국 시민은 호랑이 같은 인민으로 나서야 한다.

미주

(미주 1) J. G. A. 포칵,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2: 피렌체 정치사상과 대서양의 공화주의 전통』(서울 : 나남, 2011), 93ff., 346ff.
(미주 2) 이에 대해서는 필립 페팃, 『신공화주의: 비지배 자유와 공화주의 정부』, 곽준혁 역(서울 : 나남, 2012), 151ff.를 보라.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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