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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야 할 자리“누구의 죄 때문입니까?”(요한복음 9:1-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2.21 22:38
▲ El Greco, 「Healing of the Man Born Blind」 (1567)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어떠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은 바깥의 상황 여부에 따라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기에 평안을 성령님께 요청하면, 평안을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나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0살 된 제 친구의 자녀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 사춘기가 따로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아빠는 “어? 왜?”라고 질문했고 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도 늘 화가 나 있으니까.” 아빠와 10살 된 아이의 귀여운 대화이지만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늘 화가 나 있고,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누군가를 비난하고 판단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온화한 방식으로, 세련된 방식으로, 예의를 갖춘 방식으로 때로는 전투적이고 무례한 방식으로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그렇지 않은 척하려 하지만 말의 핵심에는 ‘비난과 판단’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미 온 지역에 소문이 났기 때문에 말씀드리지만, 얼마 전 대진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선생님들, 아이들 그리고 관련된 부모와 조부모와 이웃들까지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대진어린이집과 전혀 관련 없이 확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난할 대상을 찾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피해자가 되기 위해 대상을 찾았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마치 자신들이 죄인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시고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난하기와 피해자가 되려는 못 된 습성을 그쳐야 합니다.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럼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마음과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답을 얻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1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의 눈에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다만 이들이 궁금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그리고 나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상대방을 죄인으로 볼 것이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것이냐. 스스로를 하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볼 것이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예수님이 하신 일 보다 더 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볼 것이냐.

상대방과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삶의 태도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에게도, 부모에게도 죄가 없다. 그는 죄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씀하십니다.

날 때부터 눈먼 사람 이야기의 결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9:35-39 “35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그가 대답하였다.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38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였다. 39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의 치유 과정을 통해 정말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예수님은 한결같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또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한 여성을 붙들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은 이 여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요한복음 8:11) 그리고 바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복음 8:12)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악과 분노’로부터 피해 ‘의와 사랑’의 자리로 옮겨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난과 판단의 자리를 피해서 사랑과 이해의 자리로 옮겨야 합니다. 어두움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의 자리에 속하고자 하는 습성, 비난할 대상을 찾고자 하는 습성이 자신에게 보인다면 여전히 어두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사랑의 자리로 가져가려 한다면 그 사람은 빛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죄하고 이웃을 죄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빛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두움에 속하고자 합니다. 성도님들은 어디에 속해 계십니까?

누가 죄인이냐,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습니다. 어두움에 속할 때 어떤 깨달음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희 네 식구가 일주일 자가 격리를 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딸기 한 상자 건네주기 위해 만나지도 못하지만 찾아와 준 사람이 있었고, 치킨, 초콜렛, 아이스크림, 물품 등등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언제라도 연락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마치 제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눈이 먼 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저희 가정을 보며 ‘누가 죄인이냐? 누구의 죄 때문이냐?’라고 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저희 가정을 통해 사랑의 자리로 빛의 자리로 섰습니다.

이런 분들의 사랑을 통해 저도, 제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작은 어두움을 몰아낼 수 있었고, 빛을 사랑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제 눈이 뜨여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다지도 우리는 이렇게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구나.’라고 말입니다.

비난할 대상을 찾고 계십니까? 피해자가 되고자 가해자를 찾고 계십니까? 어두움에서 나와 빛을 향해 서시기를 소망합니다. 피해자의 자리에서 나와 창조자의 자리에 서십시오. 정죄나 판단이 아닌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때 성도님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나 때문에 주변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경험하시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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