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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저울질화해의 제단(사무엘하 24:24-2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2.27 12:10
▲ Lambert Jacobsz, 「David and Araunah making offerings at the altar」 (17세기 경) ⓒWikipedia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이번 주일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현절 마지막에 저희에게 주어진 본문은 사무엘하 24장 18-25절, 시편 50편 1-6절, 누가복음 14장 25-35절, 사도행전 4장 32절-5장 11절입니다.

솔직히 이 네 가지 본문이 어떻게 하나로 엮여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약성경의 본문만 보자면, 자신의 소유를 내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자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지만, 구약성경의 본문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약간 억지스럽게라도 본문들의 말씀을 엮어보자면,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그리스도를 쫓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의 본문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번 주일에는 구약성경의 본문인 사무엘하 24장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무엘서의 마지막 장이기도 하면서 다윗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장이기도 합니다.

사무엘하 24장은 다윗의 인구조사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4장에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행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이야기, 예언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전달되는 이야기,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본래 한 편의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인구조사와 심판 선언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여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재앙의 시작과 끝에 관한 언급에서 나타납니다.

24장 1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진노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진노의 이유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인구조사를 시행하도록 하십니다.

다윗의 인구조사가 왜 악한 행동인지도 본문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3절을 보면 군사령관 요압이 다윗을 향해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또 10절에서는 다윗이 갑작스럽게 마음이 변하여 자신이 죄를 범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조사가 왜 잘못된 행동인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11-17절에는 예언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잘못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아야 하며, 세 가지 심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7년간의 기근이고 둘째는 왕이 3개월간 쫓겨 다니는 것이고, 셋째는 3일 동안 전염병으로 인해 고생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중에서 전염병을 선택하는데, 그의 선택에 관해서 잘했다 잘못했다를 판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첫 번째 재앙인 기근은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사무엘하 21장에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재앙인 왕이 쫓겨 다니는 일도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이미 실현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무엘서는 다윗이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재앙을 겪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왜 선택했는가의 문제는 본문에서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선택에 따라 이스라엘에는 전염병이 돌게 됩니다. 이때 죽은 백성은 7만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16장을 보면,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해 손을 들어 멸하려 했다는 말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전염병에 의한 재앙과 약간 달라 보이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중단시키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위를 후회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재앙을 내리는 행동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약간의 충돌이 생깁니다. 15절에서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전염병에 의한 재앙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반면, 16절은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이를 중지시키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장면이 또 바뀌어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제사를 드리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다윗이 제사를 드린 데에는 예언자 갓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제사에 필요한 물품 대금을 치르고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 25절은 다윗의 제사로 인해 재앙이 그쳤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24장의 본문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몇 가지 이야기가 섞여 있으며, 이야기들 속에서도 몇 가지 수정 편집 과정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무엘하 24장을 단순하게 읽으면 다윗이 교만해져서 범죄하였고, 그로 인해 심판을 받았지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서 용서받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24장 본문은 그렇게만 읽기에는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다윗의 인구조사를 다윗의 죄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1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인구조사는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한 덫에 불과합니다. 역대기는 이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켰다고 수정해놓았습니다.

또 모호한 점은 이 본문이 신앙적으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 그들을 심판하셨으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재앙을 멈추셨다면, 그것은 은혜로운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다윗의 회개가 재앙을 멈추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면 그것은 회개를 강조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부분인 제사를 통해 재앙이 멈췄다면 이는 제의를 강조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24장 본문에는 이 내용이 다 뒤섞여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만약 회개-제사-은혜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나마 이해가 쉽지만, 딱히 그런 순서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약간은 내용이 뒤엉킨 느낌까지도 듭니다.

분명 24장 본문은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다윗에 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적고 있는 1-10절의 이야기는 왕실을 견제하는 이들의 사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부분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해진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이때의 예언자는 왕의 옆에서 활동하던 예언자가 아니라 왕실 밖에서 왕권을 견제하던 예언자를 말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던 천사를 마주했던 그 장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의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제의 장소의 정당성에 대한 전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가장 초기의 이야기는 다윗과 상관없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의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어떤 재앙이 그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 다윗의 왕권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아라우나는 자신의 재산을 다윗 왕에게 모두 헌납하였으나, 다윗은 제대로 값을 치루고 그것을 사들입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막벨라 굴을 샀을 때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그 제의 장소는 이제 다윗의 손에 놓이게 됩니다.

24장 본문의 전반부는 왕실을 견제하는 이야기가 나타나 있고, 후반부에는 왕실이 더욱 견고해지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24장 본문이 애매하게 읽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무엘하 24장의 본문이 어떤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역사가가 그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조합하고 자신의 사상을 포함시켜 놓았는지를 찾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묶여진 이야기 속에서 어떤 신앙적인 메시지를 찾는 일은 어려워 보입니다.

저는 24장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신앙적 메시지는 마지막 절인 25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점에서 오늘 본문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번제는 죄를 회개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로 히브리어 올라(עלה)를 씁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사람들 간에 화해와 친교를 위한 제사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쉘렘(שׁלם)을 씁니다.

구약성경에서 번제와 화목제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함께 붙어 있는 경우는 여섯 번 나타납니다. 그 중 두 번은 역대상에 나타나는데,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역대상 21장과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왔을 때의 이야기를 담은 역대상 16장에 나타납니다. 역대상의 경우 사무엘의 본문을 알고 있으며 이를 차용했을 수 있기 때문에 예외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번은 사사기와 열왕기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9절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 본문의 제의 정통성을 예루살렘 성전이 이어받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무엘하 24장의 의미를 적절히 보여주는 본문은 사사기 20장과 21장의 상황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스라엘 11지파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11지파 연합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전쟁을 통해 베냐민 지파를 몰살한 후에 이들은 후회하며 다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이들이 번제를 드린 이유는 자신들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화목제를 드린 이유는 자신들의 행동이 서로 간에 갈등을 만들어내었고 분쟁하였으며 다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 사이에 화해를 위해 지내는 화목제를 지냅니다.

다윗이 사사기 20장과 21장에 나타나는 제사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은 그가 단지 하나님 앞에서만 범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의 인구조사는 분명 전쟁을 위한 징집 대상을 선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9절에는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나타납니다.

다윗이 범한 잘못은 분쟁과 다툼을 조장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잘못은 이미 이스라엘 내부에 팽배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셨을지 모릅니다. 서로 반목하며 분쟁하던 이스라엘 백성, 이러한 분쟁을 화해로 이끌기보다는 더 큰 분쟁을 만들려 인구조사를 했던 다윗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었습니다.

전염병이라는 재앙은 실제 전염병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을 전염병으로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전쟁과도 같은 분쟁 속에서 만들어진 질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리셨다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입니다. 자신들의 악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앙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회개와 화해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은 멈추셨지만, 사람들 사이에 여전히 다툼과 분쟁이 있다면 이 재앙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사기의 다음 책인 사무엘의 마지막도 사사기와 똑같은 이야기로 끝납니다. 분쟁을 그치고 화해의 길로 들어서자는 이야기로 마무리 짓습니다. 서로 간의 분쟁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통령 후보들 역시도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해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분열하고 다투는 일이 옳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서로 다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에 자신의 이익에 따라 남을 배척하기도 합니다. 남과 일부러 다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더 내세울수록, 남의 이야기를 적게 들을수록 다툼은 점점 심해지고 분열을 더욱 커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화해를 이루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먼저 화해하며, 다툼보다는 사랑을 나누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화목제입니다. 주현절 마지막 주일, 화목케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사랑으로 우리 안에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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