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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이야기만 가득 있지만하나님만 의지하는 일(이사야 30:15-1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3.27 15:37
▲ 「King Hezekiah, clothed in sackcloth, spreads open the letter before the Lord」 in 『The story of the Bible from Genesis to Revelation』 ⓒWikimediaCommons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번 주일은 사순절 넷째 주일이자 총회순교자기념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 성서일과에 따른 본문은 이사야 30장 8-18절, 시편 117편 1-3절, 17-22절, 마태복음 23장 13-28절, 요한계시록 3장 1-6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와 마태복음 본문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쫓기보다 자신들에게 편한 말씀, 헛된 말씀을 쫓는 모습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사야에서는 예언자의 선포를 무시한 이들을 향한 경고가 나타나고, 마태복음에서는 잘못된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경고가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의 본문은 사데 교회를 향한 경고의 말씀인데, 자신들의 행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합당한 성도가 되어 흰옷을 입으라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앞선 이사야와 마태복음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쳤거나 거절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악을 행하는 모습에 대한 경고입니다.

시편의 본문에서도 이러한 점이 나타납니다. 17절은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편은 이러한 죄악에 대한 경고보다는, 그러한 존재들까지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죄로 가득 찼던 이들이 고통 중에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자는 말씀으로 마칩니다.

사순절 넷째 주간에 우리가 생각할 점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는가?’, ‘말씀을 듣는 우리는 귀에 거슬리는 말씀조차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실천하고 있었는가?’입니다. 그리고 비록 지금 우리가 부족했을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인은 늘 말씀을 전하고, 듣고, 실천합니다. 그런데 매순간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올바르게 서 있는지, 참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쉬운 길’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래전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바르게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사야의 말씀으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시대적 상황

이사야는 일반적으로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남왕국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가 담긴 부분,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되던 때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 포로기 후기에서 포로 귀환 시기를 반영하는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시기적으로 기원전 700년대 말부터 기원전 500년 말엽까지의 상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한 사람의 선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시기의 이사야 외에 어떤 이들이 이사야의 이름으로 말씀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이사야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처음 이사야의 선포 말씀도 약간의 수정과 편집을 가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 30장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던 예언자 이사야의 글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지금 이사야가 선포하고 있는 상황은 기원전 720년경 앗수르가 북왕국을 파괴하고 남왕국을 침략하던 때를 반영합니다.

학자들은 이 본문에 후대의 이사야, 기원전 590년경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되고 또 예루살렘이 파괴되던 때를 살았던 제2 이사야의 편집이 들어갔다고 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이 720년경의 이야기인지, 590년경의 이야기인지를 판단하는 일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의미상 어느 시기가 되었건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

두 시기 모두 이스라엘은 북부의 거대 제국에게 침략당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순간에 이스라엘은 제국에 복종할지, 제국에 맞설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택의 순간에 이스라엘은 보통 제국에 맞선다는 선택지를 고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두 번째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제국에 맞서 싸울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제국의 침략 가운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제국에 맞섰다면, 신앙적으로 귀감이 되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선택은 언제나 ‘애굽에게 의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을 보면, 기원전 720년경 앗수르의 장수 랍사게가 히스기야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을 협박하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이때 랍사게는 21절에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한다’고 말합니다.

이후 19장으로 넘어가면서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충고를 듣는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남왕국 유다를 지키셨다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마치 히스기야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서 있었기 때문에 제국의 침략 가운데에도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읽게 됩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본래 애굽의 원조를 통해 앗수르를 막아내려 했습니다.

이는 바벨론에 의해 침략 당했던 기원전 600년경에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바벨론이 처음 침공했던 당시 왕이었던 여호야김은 본래 애굽의 바로 느고가 세운 왕이었기 때문에 그가 애굽을 의지하는 일은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애굽이 이스라엘에 원조를 보냈다는 이야기는 예레미야에도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37장을 보면, 바로의 군대로 인해 갈대아인이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예레미야는 바로의 군대는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합니다.

열왕기하 24장을 보면, 바벨론이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한 후에 여호야김을 죽이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웁니다. 열왕기하 24장 7절은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열왕기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훗날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궐기했던 것도 애굽과의 연결 관계 속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후에 바벨론이 세운 총독 그달리야를 암살한 왕족과 장수 집단이 애굽으로 도피한 모습을 본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16-17절에 나타난 말과 빠른 짐승은 그들이 의지하려고 했던 애굽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점엔 1-7절에 나타난 경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서 때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펼쳐졌을 때, 약소국가인 우리를 속국으로 만들려는 세력을 앞에 두고 다른 강국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강국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지의 문제입니다. 또 열왕기에는 최악의 왕으로 그려지고 있는 므낫세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므낫세는 철저하게 앗수르에 복종하는 방침을 펼쳤습니다. 그렇기에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그를 최악의 왕으로 그려냅니다. 하지만 므낫세는 남왕국 역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남왕국을 통치했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므낫세 시기는 상당한 안정을 누렸던 기간이기도 합니다.

므낫세 이후 앗수르와 애굽 모두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나라를 굳게 세우겠다고 개혁을 일으킨 요시야는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해 죽임 당하게 됩니다. 이후 남왕국은 혼란의 시기를 겪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신앙적으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우리가 현실적인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내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의 선포를 보면서 이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만 의지하는 일이 어렵다고 여길까?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사야는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던 신앙의 태도를 비판합니다.

이사야는 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존재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이들이 거짓말하며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들만을 요구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벨론의 침략은 곧 끝날 것이라는 예언들, 포로기는 2년 만에 끝나리라는 예언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만 믿는다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달콤한 이야기들, 믿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빗겨나간다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만을 쫓으며 살아왔기에 실제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려움에 맞설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그리곤 쉬운 길처럼 보이는, 강해 보이는 힘에 의존하려 합니다.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솔직히 제 마음 한 편에는 우리 가족은, 우리 성도님들은 코로나가 빗겨 가리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고, 교회 성도님들이 한 분씩 코로나에 확진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이번 주간에는 저희 가정이 코로나에 확진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목회자인 저 자신도 잘못된 신앙을 품고 있었고, 쉬운 길을 이야기하는 신앙에 빠져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말하는 오만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이 있다면, 코로나 확진이라는 상황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비록 코로나로 인해 잠시 아프고 힘들지 몰라도, 하나님 안에서 이 질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은 평소 우리의 삶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쉽고 편한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를 실천하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평소에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강한 힘에 의존했으나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보여줍니다. 반대로 약한 자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강대한 힘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약함 중에도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에, 이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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