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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 그리고 배려한다는 것“봄이 왐수다”(요한일서 3:11-18)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4.05 01:04
▲ 장애인들이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의 절박성을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3년간 주일마다 말씀드렸음에도 여전히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실지도 모르지만, 평안은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입니다.

평안을 누리겠다고 선택만 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외부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평안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주어진 몫을 마땅히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봄이 왐수다.”입니다. ‘왐수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성도님이 계신가요? ‘왐수다’는 제주도의 방언입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제주와 제주를 기억하는 곳곳에서 제주 4.3 항쟁을 추모하는 여러 행사와 전시가 열리는데, 이 행사와 전시의 제목으로 ‘봄이 왐수다.’가 근래에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봄이 왐수다.’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왐수다’는 완료형 표현이 아니라 오고 있다는 미래형 표현입니다. 그래서 봄이 오고는 있지만,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4월에 왜 이런 표현을 쓸까요? 시간적으로 봤을 때는 이미 완연한 봄인데, 봄이 ‘오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관광객들은 이미 온 봄을 만끽하기 위해 제주도로 몰려들었는데, 제주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고 표현합니다. 왜일까요? 70여 년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항쟁으로 인한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제주도민은 새로운 나라 건립을 향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물러난 일제의 자리를 미군정, 친일파, 육지에서 내려온 극우반공집단인 깡패들이 대신하게 되면서 제주도민과의 대립이 일어나게 되었고 1947년을 시작으로 이후 수년간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습니다. 이 학살로 인한 트라우마, 상처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물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주는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4월에도 여전히 ‘봄이 왐수다.’로 표현합니다.

4.3항쟁뿐만 아니라 여전히 삶에 봄이 오지 않은 이들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은 ‘봄이 왐수다.’에서 ‘내 삶에 봄이 왔습니다.’로 다시 고백할 수 있도록 트라우마와 상처에 연대하고,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임은 오로지 ‘사랑으로 행할 때’ 다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삶이 여전히 겨울이어서 그 삶에 봄이 올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섬겨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사랑으로 행해야 할지 깨닫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왜 우리는 현재 고난 받는 이들, 고난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연대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행동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8-9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첫 구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역할입니다. 믿으십니까?

사도 요한은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을 동시에 말했습니다. 바로 가인과 같은 사람, 악에 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되지 말아야 하고, 악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일까요?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질투하며, 의로운 사람을 탄압하고 죽이는 사람(12절).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 사도 요한은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것과 살해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고 있습니다(15절). 세상 제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 외면하는 사람(17절). 마지막으로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함과 진실함이 없는 사람입니다(18절).’

근래 서울에서 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진행했었습니다. 이 시위에 대해 한 당의 젊은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백만 서울시민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 말은 미(未)장애인들은 서울시민이고 장애인들은 서울시민이 아니라는 차별과 혐오의 발언입니다. 서울시민을 두 집단으로 나눠 적대적인 세력으로 구분하는 발언입니다.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그렇기에 한 당의 대표인 정치인을 통해 이런 말이 공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또 우려스럽습니다. 공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혐오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이런 발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조장하기 때문이고 또한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 발언은 상식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같은 당의 장애인을 자녀로 둔 국회의원은 ‘이동권은 장애인들에게 생존의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장애인과 교통약자 이동권은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권리이고 또 생존권입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한 투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무려 21년째 진행되고 있는 운동입니다. 조금씩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을 돕는 활동지원사는 이번 한 당의 대표의 장애인 혐오 발언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들의 과격보다 오랜 기간 거절당한 삶이 가진 울분과 독기가 먼저 보인다. 누구든 자존감, 자기 존재의 가치를 고민하지만 나는 장애인들만큼 자기가 존재해도 될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정말 필사적으로.

무엇보다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 그래서 ‘불법’이라는 결론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나의 기본권을 위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대부분의 경우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살아보니 세상에는 항상 예외라는 것이 있더라.”(오마이뉴스)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거절당해 왔습니다.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늘 묻혀왔습니다. 혐오 발언을 한 정치인과 같은 당에 있는 국회의원은 “장애인 문제가 어떤 분이 사망하거나 불편을 끼칠때만 이슈화되는 것에도 사과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한겨레) 우리 사회가 아직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도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관심을 두지 않고, 외면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선교적 방향도 더 고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주에 봄이 아직 오지 않은 것처럼 장애인들에게도 아직 봄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동권이 해결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이동권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목소리 내준다면 그래서 이동권이 보장된다면 장애인들에게도 봄은 오지 않겠습니까? 이런 행동이 바로 악에 속하지 않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스스로 계속해서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혐오하거나 차별하게 되는 발언과 행동을 쉽게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이런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오늘 본문에서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14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4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타인을 위해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미워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면서 어떻게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말과 혀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말입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매 주일이 아니라 매일 들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에는 혐오와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성경의 말씀에 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설교 도입부에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삶이 여전히 겨울이어서 그 삶에 봄이 올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섬겨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사랑으로 행해야 할지 깨닫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군가가 떠오르시나요?

우리 교회는 2년 전부터 절기헌금을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부활절 헌금은 장애인을 돕는 곳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점을 아시고 기도하는 가운데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윤여정 배우 아시나요? 윤여정 배우가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주었던 장애인을 대했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윤여정 배우는 두 번째로 아카데미 영화제에 초대받았습니다. 지난번엔 수상자로 이번엔 시상자로 초대받았습니다. 윤여정 배우가 맡은 부분은 남우조연상 후보 발표와 시상이었습니다.

이날 남우조연상 수상자는 영화 「코다」의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였습니다. 시상식 장면을 잘 살펴보면 윤여정 배우는 미리 영어 수어를 준비해서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 전했습니다. 코처도 이에 대해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된 장면은 이 이후에 등장합니다. 코처가 상을 받고 인삿말을 하기 전에 윤여정 배우가 상을 뺐다 싶이 하고서는 상을 들고 코다의 옆에 가만히 서서 같이 기뻐하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윤여정 배우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상을 전해줬으면 빨리 내려가야지 왜 상을 다시 뺐고 그 옆에 서 있어야 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던 이 행동을 시청자들과 참석자들은 짧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다가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두 손을 다 사용해서 수어로 해야 했기 때문에 윤여정 배우는 이것을 미리 알고 상을 뺏어 들고 옆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이고, 배려 깊고, 사랑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는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는 온전히 저와 성도님들의 몫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이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악에 서서 죽음에 머물지 마시고, 영원한 생명과 사랑 안에 머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우리의 행함과 진실함이 제주43항쟁으로 인해 봄을 온전히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들과 이동권을 위해 투쟁중인 장애인들 그리고 우리 주변의 고난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 봄을 가져다주리라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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