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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해방열사, 그들이 부활해 있다면『유언을 만난 세계』(정창조 외 지음, 오월의 봄, 2021) 서평
황용연 대표(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 승인 2022.04.22 15:39

1.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묻기를, 어떤 여자가 첫째와 결혼했는데 첫째가 죽어서 그 당시의 관습에 따라 둘째, 셋째, 넷째 … 일곱째까지 줄줄이 결혼했는데 다 아들 없이 죽었고 세월이 흘러 그 여자도 죽었다면, 부활이란 게 있다면 그 부활을 했을 때 그 여자는 누구 아내가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답은 이랬습니다. 너희들은 부활을 한 세상에서도 결혼이란 걸 한다고 믿고 있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 보니 너희들은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말씀도 모르는 채로 떠들었던 것이냐고.

그러고 거기에 한 말씀 덧붙이시죠.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신 게 무슨 뜻이겠냐고요. 그 말은,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느님에게는 다 살아있는 사람이다라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2.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유언을 만난 세계』(정창조 외 지음, 오월의 봄, 2021)의 부제입니다.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이 8명의 이야기는 이 땅에서의 장애인들의 삶과 죽음의 축약입니다. 횡단보도도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건널 수 없었던 1984년에서 그래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올라갔다는 2022년까지. 노점상을 통해 장애인 자립의 희망을 모색하려 했던 1990년대에서 그 자립의 희망을 평등하게 인정받는 장애인 노동권으로 풀어나가려 하는 2020년대까지. 우리가 살 땅은 어디냐는 김순석의 절규와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며 복수해 달라는 최정환의 원성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려면 기초생계급여는 포기하라는 기초생활보장법에 항의하여 택한 최옥란의 자결까지. 1995년의 일인데 2022년에도 의문사로 남아있는 이덕인의 죽음에서 인권을 위해 ‘인권’위에서 농성하다 바로 그 ‘인권’위의 가혹한 행동으로 인해 빚어진 2011년 우동민의 뜻하지 않은 죽음까지.

그렇기 때문에 장애해방열사는 죽어서도 여기 머물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은 지금 여기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장애인들의 삶과 죽음을 축약하고 있는 이 책에는 그 삶과 죽음의 한 양태로서의 장애인 사회운동도 등장합니다.

장애인 사회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던 1984년의 김순석을 시작으로, 노점상을 통해 자립의 희망을 모색하려 했던 최정환, 이덕인, 노점상 운동과 연계하면서도 장애인 운동을 더욱 확장된 대중운동으로 만들려 노력한 박흥수, 정태수, 이 두 운동 모두에 자신의 발자욱을 남기면서도 여성 장애인으로서도 기초생활수급자로서도 같이 싸웠던 최옥란, 그리고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자립생활의 권리 등으로 장애인 운동의 지평이 발전하고 중증장애인 활동가도 더 확장되는 가운데 활동가의 삶을 감당해 갔던 박기연, 우동민까지. 장애인 사회운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가 8명의 이야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장애인 사회운동 속에서 이 사람들이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입니다.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보여 주었지만 어떻게 살지 말아야 하는가도 보여 주었다는 박흥수의 이야기와, 왜 죽음을 택했는지에 대한 나올 수 없는 대답 대신 그가 살아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실마리가 되는 박기연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열사’라고 이름 붙였으면 ‘영웅’이어야 할 것 같은데 ‘영웅’이 아닌 이대로 ‘열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해야겠죠.

4.

서두에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 보통 저 말씀은 이 세상에서는 결혼의 질서, 특히 저 시대처럼 남편이 죽으면 동생과 결혼한다는 그런 결혼의 질서가 유효하지만, 부활한 이후의 세상에서는 그런 질서가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로 많이 해석됩니다.

그런데 저는 언제부터인지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느님에게는 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사실은 이 세상에서도 부활한 이후의 세상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결혼의 질서가 유효하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상태를, 사건을 전제한다면 이 세상의 질서라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 여자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따위를 따지게 되는 식의 넌센스가 되어 버리는 거 아니냐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언을 만난 세계]라는 책 제목은 서두에 인용한 부활이라는 상태/사건과 참 잘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유언’을 만남으로써 ‘세계’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제목일 터이니 말입니다. 여당 대표라는 인간(?)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언더도그마 운운하며 비방하는 세계가, 장애해방열사들의 유언을 만남으로써 바뀌지 않을 수 없다는 제목일 터이니 말입니다.

황용연 대표(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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