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는 예수 ⓒGetty Image

성서는 크게 법과 예언으로 대표됩니다. 이것은 성서 각 책의 형식이 아니라 전체의 의미를 따른 구분입니다. 법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룬다면, 예언은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법이 말하는 삶은 사랑에 기반한 정의를 목표로 삼고, 예언은 그 목표의 실현으로서의 조화와 평화를 바라봅니다. 그러한 법과 예언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양자는 분리되거나 대립되지 않고 서로 공속관계에 있습니다. 법은 예언의 발판이고, 예언은 법을 겨냥합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성서에서 다른 것들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도 지혜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현실이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죄, 악, 불의, 고통, 혐오, 심판 등과 같은 말들이 현실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성서는 그 가운데서 실현되어야 할 현재를 보여주고 기다려야 할 미래를 희망하게 합니다. 우리의 현재가 법에 따라 구성되고 우리의 미래가 예언대로 다가오기를 빕니다.

오늘의 본문을 우리에게 남긴 예언자 하박국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의 활동은 법이 무너진 상황을 전제합니다. 법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던 때부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를 부르지 않던 곳에서도 이미 일하고 계셨고 또 거기에 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법을 성서를 통해 접하고 성서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그 법이 무너진 상황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우리의 지난 역사 속에서 경험했고 현재도 늘 그렇게 될 위기를 안고 살아갑니다.

하바국은 ‘법이 멈추고 정의가 영영 사라졌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고 있어서 정의가 왜곡되어 나타납니다’라고 탄식하며(1,4), 그의 눈앞에서 겁탈과 폭력, 다툼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하박국의 이러한 시대인식은 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그러한 시대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그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답변을 끌어내고자 합니다.

전선에서 소식을 갖고 달려오는 전령을 기다리는 성벽 위의 보초병처럼 그는 긴장하고 하나님이 침묵을 깨뜨리시는 그 순간만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정지된 법을 다시 작동시키고 무너진 정의를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무엇을 계획하실지 그는 알고자 했습니다. 겁탈과 폭력, 다툼과 분쟁 대신 평화와 공감과 이해가 들어서기를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묵시를 보여주시고 입을 여셨습니다. ‘네가 본 것을 기록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달려갈 수 있게 해라.’ 여느 예언자들에게 하신 말씀과는 많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달려갈 수 있게 하라니요? 어디로 달려가라는 것일까요? 그 묵시를 읽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마음에 두고 있는 곳으로 달려갈까요?

하나님은 그 묵시가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말에서 달려갈 곳이 드러납니다. 그 묵시를 읽은 사람들은 공간 속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을 달릴 것입니다.

시간 속을 달리는 것, 정해진 그 시간을 기다리며 사는 것, 이것이 어떤 것일지 조금이나마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여러 차례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우리는 정해진 그 시간까지 거기에 필요한 것을 힘껏 준비하며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간 속을 달리는 것은 정해진 시간이 요구하는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를 들면 신랑을 기다리는 비유 속 열 처녀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마 25,1-13). 비유에서는 신랑이 더디 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그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이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언제라고 알려진 때가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넉넉히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여인들은 신랑이 오는 때에 그를 맞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좀 더 세분되어 나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묵시를 읽고도 아예 달려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묵시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알겠는가? 하나님이 그리 하시겠는가? 등을 말하며 묵시에 맞춰 삶의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달려가기 시작하지만 도중에 술과 같은 즐거움 때문에 그것에 탐닉하고 끝까지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가자고 하거나 너무 멀다고 생각해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정해진 시간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요? 하박국에 따르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만 그 목표 시간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 묵시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나님이 거듭 다짐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만 그 시간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시간 속을 달리는 그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빕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산에서 예배하게 될 미래를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는 증거로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그 산에 이를 때까지 모세는 시간 속을 달려야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 시간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 희망은 우리의 삶을 그에 맞춰 형성해갈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희망의 삶이 사랑의 삶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삶의 한 단면을 우리는 가버나움의 한 백부장에게서 봅니다. 로마군 장교인 그가 그의 종을 위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는 대단히 파격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그들의 관계를 추측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를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중풍병에 걸린 종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종의 괴로움을 함께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에게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마치 사마리아 사람 같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신분이나 인종의 차이 또는 피아를 따지지 않고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사마리아 사람 비유가 말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보신 예수는 그에게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는 자신이 예수께서 그렇게까지 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며 명령을 하시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답합니다. 예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입니다. 그는 명령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을 군생활을 통해 무수히 경험했고, 그 경험에 바탕해 예수의 말씀이 곧 현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그의 사랑은 믿음의 행동을 낳았고 예수께서는 그 믿음으로 그 믿음에 부합하는 현실을 만들어냈습니디.

그러한 사랑과 그러한 믿음이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이기를 빕니다. 불확실하고 어둠 짙은 현실 속에 우리의 믿음과 사랑으로 정의의 새로운 현실이 싹트는 희망이 있기를 빕니다. 그 믿음으로 살 때 주께서 그 믿음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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