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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의례에 대한 단상“우리사회 가족에 대한 판타지–정상가족” 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5월호 ⑶
이은주(미국장로교 동아시아 담당자) | 승인 2022.06.21 23:48
▲ 다양해지는 성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는 제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대이다. ⓒGetty Image

나는 성인 세 명이 있는 가정에 맏딸로 태어났다. 그 세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합이었는데 그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가족이라고 했다. 그 집합체의 구성원은 나의 엄마,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어머니였다. 나의 엄마는 내 나이 또래의 어머니들과는 다르게 고등교육을 받은 의사였다. 엄마의 시어머니는 예수를 믿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교회를 다니시게 되었고, 덕분에 한글을 깨치게 된 분인데 실제로 교회를 다니시고 나서 일 년 안에 아들을 낳으셨다고 한다. 그 분에게 아버지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이 두 여인 사이에는 고부 갈등이 존재했고, 그것이 싫은 아버지는 거의 매일 아침나절에 나가셔서 밤늦게 들어오셨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운명적으로 만난 이 세 사람이 내 가족이 된 것은 엄마와 아버지의 결혼 때문이었다. 그렇게 함께 사는 것이 힘들어도, 이 세 사람들은 헤어질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와, 결혼이란 게 참 무서운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이 이상한 조합을 이해하려고 골똘히 생각하며 헤매다가 길을 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60세가 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결혼이 무섭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인 내게 주례를 해 달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촌동생과 조카의 결혼식 주례를 한 것이 전부다.

17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 처음으로 미국 사람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처음 보는 ‘미국’결혼식이었지만 예식 순서는 내가 그동안 보아 온 교회에서 하는 서양식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례가 들어와 결혼식 시작을 알리고, 신랑이 홀로 입장을 해서 청중을 보고 서고, 신부가 아버지인 듯한 남자 어른과 함께 천천히 음악에 맞추어 들어와서 주례자를 마주 보고 선다. 주례자가 신부를 데리고 입장한 남자어른에게 묻는다. “누가 이 여인을 이 남자(신랑)에게 줍니까?” 그러자, 신부를 데리고 입장한 남자가 “내가 줍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신부를 신랑에게 양도한다. 예식 중에 오가는 이 대화를 들으며 나는 경악했다. 이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재산 양도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의식은 결혼식 때마다 반복되고 있고 우리는 아버지의 손에서 신랑의 손으로 신부가 넘겨지는 의식을 별 생각 없이 바라본다. 말없이 진행된다고 해서 이 의식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아도 좋을까? 통과의례중의 하나인 이 결혼 의례를 거치는 신부는 아버지의 손에서 신랑의 손으로 넘겨져서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의 사회정체성은 어떻게 변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대로 있는 것일까? 이러한 결혼 의례는 현 사회구조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가? 결혼 의례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는 없을까?

개신교 전통 안에서 결혼식은 성례전은 아니지만 많은 개신교 목사들은 결혼식을 주례한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태복음 19:4-6)란 말씀으로 두 남녀의 결혼이 성사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성서에 나오는 가족 형태는 이 말씀이 말하듯이 일부일처제가 아니었음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다. 가족의 형태는 문화의 산물이고 계속 변화하여 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해 온 사람들은 종교도, 사회학자도, 법원도 아니고, 그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다양성은 창조세계에 편재하는 특성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다양성은 인류 사이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성소수자들은 이러한 다양성이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라며 “coming out”을 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현실로 받아드리면 가족단위를 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구성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미국장로교회는 2014년에 열린 총회에서 결혼을 “남녀 간의 서약”이 아닌 “두 사람 사이의 서약(commitment between two people)”이라고 정의했고, 미국의 대법원은 그 다음해인 2015년에 동성 결혼을 합법화 했다. 이 변화로 인해 교회와 목사는 결혼에 관한 결정을 신앙 양심에 근거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당회는 결혼식을 교회에서 하도록 할 것인지 아닌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목사는 결혼식 주례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결혼 의례에 대해 이미 의문을 제기했다. 남녀 두 사람이 결혼을 하여 소위 ‘정상가족’을 이룬다고 해도 이 질문들은 유효하다. 결혼을 하는 두 사람이 남녀가 아닐 경우 내가 제기한 의문들의 심각성은 더욱 가중된다. 우리의 결혼의례가 이 변화를 어떻게 담아내야 할 지 나아가 변화의 주체가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생각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은주(미국장로교 동아시아 담당자)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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