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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일상의 기쁨으로 다가오다찾아낸 천국 비유(마태복음 13:44-48절)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6.25 23:41
▲ 「The Hidden Treasure」 (From Art in the Christian Tradition, a project of the Vanderbilt Divinity Library, Nashville, Tenn.)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이번 주일에는 공관복음서 중 마태복음 13장에만 나타나는 세 가지 천국 비유를 함께 살펴보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계속 전해드리려고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성서일과에 따라 정해진 본문에 비유가 연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관한 해석을 찾아서 읽다 보면, 학자들마다 비유의 제목을 다르게 붙여놓고 있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관점과 해석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예수님의 비유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비유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7가지 천국 비유라는 큰 범주에서 해석하는 방식과 각각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7가지 천국 비유 중 다섯, 여섯, 일곱 번째 비유라고 말한다면, 마태복음 13장 전체에 나타난 천국 비유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보면서 해석한다는 의미입니다. 비유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하나의 공통된 흐름을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이 해석은 마태복음 공동체가 가진 신앙을 설명하는 해석일 것입니다.

각각의 비유를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이 비유들이 마태복음 안에 하나로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선포되었음을 전제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공동체의 신앙보다는 예수님께서 실제 전하셨을 선포 내용에 집중합니다.

지난번에 이 7가지 천국 비유 중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살펴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주일에 저희는 ‘세 가지 천국 비유’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두 가지 해석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의 신앙

마태복음이 전하는 천국에 대해 생각하려면, 천국에 관한 비유 7가지를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이를 모두 살펴보려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집중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만 마태복음이 전하고 있는 천국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는 전해드릴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천국은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개념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나타난 49-50절 말씀에서 이런 점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세상 끝날에 천사들이 와서 의인과 악인을 갈라내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또 24-30절, 36-43절에 나타난 ‘가라지 비유’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해석을 직접 하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마태복음 공동체는 세상이 끝나는 날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완전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인생의 끝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와도 비슷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공동체가 가진 종말론적 사상은 사도 바울이 초기에 가지고 있던 임박한 종말론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복음과 초기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차이는 의인과 악인이 교회에 공존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의 문제에서 갈라집니다.

사도 바울의 초기 서신 중 하나인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악을 행한 성도를 왜 교회에서 내쫓지 않았냐며 고린도 교회를 질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순간에 악인들이 교회에 함께 있다면, 의인들도 그들의 악에 물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질책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라지 비유’에서나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본문 속에서 의인과 악인은 심판 때까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 또는 천사가 행할 것이며, 이들을 축출하는 일이 오히려 실수로 의인까지 축출하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함부로 교인을 내쫓으면 안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급박함이 없어졌기에 이런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복음서가 종이에 기록된 주요한 이유 중하나가 초대 교회가 생각했던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종말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당장 일어날 종말을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또 일반적인 죽음도 종말과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가진 죽음과 심판에 대한 이미지와 비슷합니다. 사후에 염라대왕이 죄를 심판하는 이미지입니다.

또 마태복음은 그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의 비유를 묶어놓지 않았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후에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그 해석을 달아놓은 이유는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지침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라는 표현은 천국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신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구제를 위해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는 신앙을 견지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구제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천국의 값어치는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온전히 자신을 헌신하라는 지침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땅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와 같고, 값진 진주와 같습니다. 또 그물에 가득하게 잡힌 물고기와 같습니다. 이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또 마지막 심판 때에 의인에 속할 수 있도록 말씀을 온전히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물에 잡힌 고기 중에서 좋은 것과 못된 것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비늘이 없고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부들은 자신들이 그물로 낚은 물고기 중에서 부정한 물고기를 골라냈습니다.

정함과 부정함의 구분은 이제 의인과 악인의 구분으로 이어집니다. 즉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따르는 이들은 정한 의인이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부정한 악인입니다. 이를 더욱 확고하게 전하는 부분이 52절에서 제자들을 향해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현실적 의미에서의 비유

마태복음이 어떤 신앙을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이런저런 장소에서 당시의 가난한 유대인들을 앉혀놓고 전하셨을 이야기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기적을 바라고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당시의 평범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 부유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본다면, 말씀을 듣는 청중 대부분도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밭이 아닌 남의 밭을 일구고 있는 농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 어부 세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많은 사람은 이 부류에 속해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44-46절의 두 비유와 47절 이하의 비유를 별개로 다룹니다. 44-46절에 나타난 보화와 진주의 비유는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한 번에 선포되었거나 같은 의미를 가진 비유로 봅니다. 47절 이하에 나타난 그물의 비유는 좋은 것과 못된 것을 구분하는 점부터 앞의 두 비유와는 구분됩니다.

하지만 49-50절을 떼어놓고 본다면, 세 가지 비유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청중들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찾게 됩니다.

농부는 밭을 일구고, 상인은 귀한 물건을 찾아 헤매고, 어부는 그물을 던지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상 가운데 이들은 평소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농부는 밭에 감춰져 있던 보화를 발견합니다. 상인은 자신이 찾던 귀한 진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부는 그물 가득히 물고기를 낚게 됩니다.

때로 상인이 자신의 취미를 위해 진주를 찾아다녔다는 해석을 보게 되기도 하는데, 상인이 취미 때문에 진주를 찾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귀한 진주를 구해오라는 의뢰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당시 고가품이었던 진주로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더 좋은 진주를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평소의 일상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감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쁨입니다. 농부가 보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상인이 찾아 헤매던 진주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만선을 이룬 어부의 기쁨입니다.

저는 이 비유들이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던 청중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통치 가운데 소유가 넉넉하지 않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이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입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값진 것을 얻는다는 비유의 말씀이 1억 넣고 2억 뺄 수 있다면 당장 들어가야 한다는 투자 조언은 아닐 것입니다. 또 1억이 2억이 되는 순간이 천국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천국에 있는 기분을 느끼기야 하겠지만, 그것이 천국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또 그 기쁨의 순간, 천국은 우리가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 때 발견되고 찾아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유에 나타난 이들은 그 천국을 찾아낸 이들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의 가사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와 같이 주님과 동행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기쁨을 누리게 되리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또 그 기쁨의 순간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이 전하는 천국 신앙은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 목표는 종말이라는 순간, 우리의 삶이 끝나는 순간에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이 바라봐야 할 궁극적인 목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천국을 향해 나아간다는 신앙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현실의 삶을 외면한 채, 죽음 이후에 가게 될 천국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삶 속에서도 천국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기쁨의 순간들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시기에 세상 끝날 의인의 무리에 속하게 되시는, 천국에 이르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시는 가운데, 삶에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시며 천국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천국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특별한 기쁨을 순간을 여러분께 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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