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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세상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방법용서가 만드는 새 세상(창세기 4,16-24; 마태복음 18,21-35)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6.29 23:46
▲ Nelly Bube, 「The Unforgiving Servant」 ⓒGetty Image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가인에게서 형제살해라는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또 한 번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인간과 땅의 관계도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땅은 살해된 아벨과 함께 절규하며 가인의 노동을 거부하고, 즉 인간의 생명의 터전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람들은 가인의 목숨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반(反)창조라고 할 만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인간 가인의 탄원까지도 들어주시고, 비록 그 저주는 철회되지 않을지라도 가인에게 생존권을 보장해 주십니다.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을 악을 행한 가인에게 생존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는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그런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런 하나님으로 인해 인간에게서 새로운 시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삽니다. 성서는 그가 아내를 맞이했고 그의 아들의 이름을 딴 에녹이라는 도시를 세웠다고 말합니다. 도시는 당연히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고 농사지을 땅이 있거나 혹은 농촌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저주 아래 있는 가인에게 이러한 도시의 건설이란 생각하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시고 죽임이 죽임을 낳지 않게 한 것이 그 파괴된 관계들을 점차 회복되게 한 것일지요?

성서는 이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지만, 가인의 생존권 보장은 그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가인이 세운 도시 역시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의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의 후손이 계속해서 이어져 그중에서 아벨이 했던 것처럼 가축 치는 사람이 생기고, 농사와 절기, 축제 등과 관련될 수공업자들이 생기는 등 직업이 분화된 것은 그런 노력의 결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요? 그러나 가인 이후의 인간과 도시에 대한 평가는 오늘 본문 끝에 나오는 라멕의 노래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라멕의 노래 배후에는 피의 복수법이 있습니다. 죽음을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의무입니다. 가인의 생명 보존을 약속하시기 위해 하나님도 이 법의 형식을 빌어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죽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라멕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기를 해치는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복수법의 형식으로 말하지만 자기에게 오직 상처를 입힌 자에게 그가 소년이든 어른이든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게 했다며 자신의 극히 무도함을 자랑합니다.

여기서 사실상 정당한 복수와 범죄의 경계는 사라져 버립니다. 또한 가인 이야기의 맥락에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셨던 말씀을 라멕이 그 자신에게 하고 그 말씀의 내용을 훨씬 뛰어 넘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도 또다시 말살하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이용하고 그래서 자신의 악과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정반대되는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땅의 평화로운 공존 속에서 꽃피는 도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물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복수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면서 정반대로 용서를 말합니다. 이 예수의 말씀을 설명하는 비유에서 종은 만 달란트라는 오늘날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전부 탕감 받습니다. 목숨이 백 개라도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가인의 경우와 비슷할 것이며, 역시 인간을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의 행동입니다. 비유는 왕과 종, 그리고 종과 그의 동료를 동일한 표현으로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놓음으로써, 하나님의 그런 행동이 하나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인간을 통해서 동료 인간에게 그 자비가 흘러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의 말씀은 사실상 한계 없는 용서를 말하고 있지만, 그 용서는 악에 대한 관대함이나 방기가 아닌 악을 멈추고 선과 인애와 정의로 돌이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가인 이야기에서 보듯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창조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 시작되고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서 실현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갑니다.

성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에 의해, 불가능한 용서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랑과 자비에 공명하고 사랑과 자비로 이 땅의 악을 이기기를 기대하십니다. 자신이 탕감 받은 빚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빚을 진 동료에게 탕감은커녕 빚을 다 받아 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 종에 대해 왕이 그의 탕감을 취소한 것처럼, 우리에게서 용서가 용서를 낳고 자비가 자비를 낳지 않으면 하나님이 베푸신 용서와 자비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에게 일종의 의무로 주어진 것처럼 보이며, 한계 없는 용서를 말하는 예수의 말씀은 우리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가능한 용서는 의무도, 인간을 능가하는 신적 능력도 아닌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허물을 못 본 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악과 폭력과 죽음의 연쇄를 끊고 사랑으로 새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의 사랑으로 분단과 분열의 사슬을 끊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창조 질서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세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음이 굳어지지 않고 남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 주는 넉넉한 마음으로 변화와 회복의 삶을, 사람 사는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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