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무엇을 더 보여주어야 하느냐“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이사야 46:1-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7.19 00:14
▲ Benjamin West, 「Joshua passing the River Jordan with the Ark of the Covenant」 (1800) ⓒGoogle Art Project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바깥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언제나 내면에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평안을 언제나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동지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쳐들어온 습격자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주셨소.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오.”라고 한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목숨을 걸고 적들을 추격하고, 싸웠지만 다윗은 승리의 이유가 하나님께 있다고 단호하게 고백하며 전리품을 싸우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에 승리와 전리품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태도와 고백이 우리의 삶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주간 이런 고백을 해보셨나요? 작은 것에도 나의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해보셨기를 바래봅니다.

나의 삶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음을 고백하는 성도만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율법을 실천하며 실천의 과정 가운데 주시는 충만하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어떤 믿음의 태도로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야 할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삶의 어려움 가운데 놓인 성도님이 계시면, 오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함으로, 위로받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의 제목은 “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입니다. 위로받게 되시기를 소망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제목은 조금 위로와 멀어 보이기는 합니다. “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 여기서 죄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 성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벨 신이 고꾸라졌고, 느보 신이 넘어졌다. 짐승과 가축이 그 우상들을 싣고 간다. 힘겹게 떠메고 다니던 것들이, 피곤한 짐승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2 우상들은 한꺼번에 넘어지고 고꾸라졌다. 우상들은 자기들을 싣고 가는 자들에게서 도망쳐 나오지도 못한다. 오히려 우상들은 포로가 되어 잡혀 간다.”

벨 신, 느보 신 이 두 신이 아니더라도 너희들이 신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가? 당신들이 하나님을 떠나 섬겼던 신들, 우상들을 보라! 우상들의 최후가 어떠한가?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 돌덩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고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찔림이 되는 선포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함에도 성도인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의지했는지 어떤 소리에 귀 기울였는지 묻고 있습니다.

“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 성도임에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다른 무언가를 의지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3 야곱의 집안아, 이스라엘 집안의 모든 남은 자들아,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너희를 안고 다녔고, 너희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내가 너희를 품고 다녔다. 4 너희가 늙을 때까지 내가 너희를 안고 다니고, 너희가 백발이 될 때까지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다. 내가 너희를 지었으니,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고, 안고 다니겠고, 또 구원하여 주겠다.”

‘내가 너희를 지었으니, 내가 너희를 품고 다니겠다. 구원하여 주겠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여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렇게 자신을 설명하는 신은 없었습니다. 신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이런 정체성을 가진 신은 하나님이 유일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신명기 4:34-35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의 억압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애쓰신, 그러한 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신이 어디에 있냐고, 이런 신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믿는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지었다. 내가 너희를 지었기에 품고 다니겠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주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지독하게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돌덩이에 불과한 아무런 힘도 없는 우상에게 절을 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에 관해 다시 언급합니다. “5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내며, 은을 저울에 달고, 도금장이들을 사서 신상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한다. 7 사람들이 우상을 어깨에 메고, 우상을 둘 자리에 내려놓으면, 우상은 내려놓은 그 곳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것에게 부르짖어도 전혀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 당하는 사람을 구원하지도 못한다.”

얼마나 우스운 광경입니까?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은 우리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 즉 죄의 길로 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자신을 내버려 두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 돌덩이에 불과하고 아무런 힘도 없고, 변화도 일으킬 수 없는 우상에 우리도 얼마든지 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 “8 너희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여라. 그리고 확고하게 서라. 너희 반역한 죄인들아, 이 일을 가슴 깊이 간직하여라. 9 너희는 태초부터 이루어진 일들을 기억하여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와 같은 이는 없다.”

기억하고, 확고하게 서라! 히브리서 저자는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12:11-13 “11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워 똑바로 걸으십시오! 기억하고 다시 확고하게 서십시오!

‘너희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진 일들을 기억하라!’,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나와 같은 이는 없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 되심을 고백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좀 더 하나님을 신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뢰가 0 아니면 100 아닌가? 좀 더 하나님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무엇일까? 종종 하나님께 나의 삶을 던지는 연습을 하자는 표현입니다.

이사야는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기억하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두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요 며칠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또 괴로운가?” ‘아, 힘들어. 아, 괴로워.’라고 입으로 내뱉었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저 자신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상황이 이러니 ‘괴롭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주일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또 괴로운가?”를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베푸신 은혜들이 떠올랐습니다.

교회에 화재 난 직후 복구를 위한 돈이 부족해서 걱정하고 괴로웠습니다. 지금은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떻게 리모델링을 해야 하나 걱정하고 괴로워했는데,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옆 사람을 통해 알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리모델링을 감독할 자신이 없었는데, 신뢰할 수 있는 분을 마침 만나게 하셔서 일이 진행되도록 하셨습니다.

돌아보니 다 하나님이 해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제 걱정과 근심에 하나님이 응답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돌보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여전히 힘들고 괴로워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기드온을 보낸다고 하시자 기드온은 하나님께 세 번의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 번의 요구에 모두 응답하셨습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정말로 주님이시라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내가 예물을 꺼내와서 가져다 놓겠으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마십시오.”

“19 기드온은 즉시 가서, 염소 새끼 한 마리로 요리를 만들고, 밀가루 한 에바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도 만들고, 고기는 바구니에 담고, 국물은 그릇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로 가지고 가서 천사에게 주었다. 20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였더니, 21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에 댔다. 그러자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살라 버렸다. 그런 다음에 주님의 천사는 그 앞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나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하십니까? 37 그러시다면,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놓아두겠습니다. 이슬이 이 양털뭉치에만 내리고 다른 땅은 모두 말라 있으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38 그러자 정말 그렇게 되었다. 기드온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털뭉치를 쥐어짜 보니 양털뭉치에 내린 이슬이 쏟아져 그릇에 물이 가득 찼다.”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님, 저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번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양털뭉치로 한 번만 더 시험하여 보게 하여 주십시오. 이번에는 양털은 마르고, 사방의 모든 땅에는 이슬이 내리게 하여 주십시오.’ 40 그 날 밤에 하나님은 그대로 하여 주셨다. 양털은 말라 있었고, 사방의 모든 땅만 이슬로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 세 번의 증거를 본 기드온은 이후 전쟁을 치루기 위해 필요한 군사를 남기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요구에 아무 말 없이 순종합니다. 군사를 삼만 이천 명에서 삼백 명만 남겼음에도 성경 어디에도 기드온이 두려움에 떨었다거나, 하나님의 요구를 거부했다거나, 전쟁에 나가기를 꺼려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기드온이 아무말 없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증거, 그 증거를 기억하고, 기억함으로 바로 서고, 마음 깊이 간직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 은혜를 기억함으로 다시 무너진 믿음의 무릎을 똑바로 세우십시오. 이전에도 응답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성도님들을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