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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듯이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신명기 26,16-19; 데살로니가전서 5,14-24)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7.28 00:48
▲ Depiction of Jehu King of Israel giving tribute to the Mesopotamian King Shalmaneser III of Assyria, on the Black Obelisk of Shalmaneser III from Nimrud (c. 841-840 BCE)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여러 층으로 회고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 곧 법을 주시고 이를 지키는 것이 그 길임을 밝히십니다. 이런 점에서 신명기는 시내산 사건의 서막인 출애굽기 19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우여곡절 끝에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내 말을 새겨 듣고 나와의 계약을 지키면 내 보물이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십니다. 신명기는 전체가 이 관점에서 지어진 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명기 법전을 마무리 짓는 오늘의 본문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면 먼저 야훼가 그의 하나님이 되심을 인정하고 선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이전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동적으로 승계되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세대마다 새로이 고백되고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를 계약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계약갱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신명기 법전을 앞에 두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그때그때마다 선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 순간의 말이나 의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을 다해 일생동안 실천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서가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습니까? 충성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의무로 강요된 충성이 아니라면 충성은 그 마음과 뜻이 표현된 형태입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라는 말은 한 마음 한 뜻으로라는 말입니다. 두 마음 두 뜻이라는 말과 비교하면 곧 그 말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누군가가 딴 마음 딴 뜻을 품고 우리를 대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신과 의심이 떠나지 않고 늘 경계하게 되고 따라서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한 마음 한 뜻이 가능한 경우는 오직 한가지뿐입니다. 계약에 대한 의무감으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를 사랑할 때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한 마음이 되고 한 뜻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나를 사랑해서 내 계명을 지키는 자”를 말합니다(신 5,10; 출 20,6). 사랑할 때 상대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 기자는 그의 말씀을 기뻐해서 그의 말씀을 밤낮으로 읊조리는 사람을 말합니다(2절). 사랑과 그에서 비롯되는 기쁨이 한 마음 한 뜻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사랑과 그 기쁨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될 것을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사람이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그 사랑과 그 기쁨 때문에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실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사람에게 거부당하고 죽임을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람을 향해 품으신 뜻이 있습니다. 18절 하반절입니다. 그런데 ‘이것’이란 말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불분명하게 보일 수 있지만 14-18절 상반절까지의 명령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도 명령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 명령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14-15절의 명령들은 타자와 관련되고, 16-18절 상반절과 19-22절의 명령들은 자신과 관련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 곧 나태한 사람, 마음 약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요? 일깨우고 격려하고 붙들어주고 오래 참는 것은 그 일들이 지속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그것들은 23절 하반절의 말로 하면 ‘흠 없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지켜지는 길’의 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예들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과도 연관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을 행한다는 말에 유의하면,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잠언의 말을 인용하여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 원수니까 당해 봐라 하는 좁은 마음이 아니라 원수일지라도 그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잘 살펴서 좋은 것은 행하고 악한 일은 버리라고 일반화하는 21-22절과 연관됩니다.

악을 거부하는 그 넉넉한 마음의 태도는 성령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거스를 때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악을 경고하는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그리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쁨일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감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쁨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척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역시 강요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에 공명하는 사랑이 우리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억제하지 맙시다. 그 사랑을 일으킨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하고 거룩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우리의 힘을 다 가져갈 때에도 그 사랑이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새 힘을 일으키고 우리 마음과 몸에 생기를 줄 것입니다.

사랑이 기쁨을 낳고 선을 행하게 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게 합니다. 사랑으로 아픔과 괴로움을 이기고 새 힘으로 활력 넘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빕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품으신 뜻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향한 우리의 뜻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 뜻이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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