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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 헤른후트 별 제작소에서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10)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8.18 22:54
▲ 별 제작소에서 일하는 모습 ⓒ홍명희

한국은 홍수로, 유럽은 가뭄과 산불로 올 여름 내내 기상의 이변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더위의  한 가운데에서, 방문하신 분들에게 별을 보여 드리겠다며, 별 제작소에 들어갔다. 가을부터 성탄절까지 성수기인 이곳이, 여름인 대낮에는 거의 손님이 없는 형편이라 조용하게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모시고 간 분들은 한국의 여성들이셨는데, 별이 아름답다면서 어쩔 줄 모르며 좋아하셨다. 어떤 색깔을 고를까… 마치 소녀가 된 기분으로 들 떠 하셨다. 가장 아름답다고 한 별은 은색의 별이었다. 이 은색의 별은 300주년에 새로 개발된 은색의 반짝거리는 별이었다. 역시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색이 아름다운 색 같다.

한쪽의 예쁜 집 안에서는 별을 직접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 공작실도 있었다. 그 곳에서 두 분은 좋아라 별을 만들겠다고 하고, 한 켠에 예쁜 카페에서 나와 다른 한 분은 별보다 더 예쁜 색깔의 귤 케이크를 생크림과 함께 먹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맞춤형 행복을 누렸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시간이었다.

이 와중에도 별을 손으로 직접 제작하시는 분들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고, 올 겨울에 나갈 수많은 별들을 다 제작하는 준비를 하고 계신다. 겨울의 헤른후트는 별로 폭 둘러 쌓이는 꿈의 마을이 된다. 마을 입구 큰 나무에는 별들이 걸리고, 각 집집마다, 상점마다 별이 창가에 반짝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마을에서 처음 성탄절을 맞이할 때였다. 항상 친절하신 큐흘러 할아버지 목사님은 우리 유리창에 별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별을 가져 오셨다. 너무 감사해서 달았는데, 성탄절이 끝나고 1월 초 주현절이 지나자 다시 별상자를 가지러 오신 데에 사뭇 놀랐다. 잘 두었다가 내년에 또 빌려 주시겠단다. 이렇게 해서 몇 해 내가 별을 마련할 때까지 꾸준히 별상자는 그분 집과 우리 집 현관을 오고 가야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별을 이렇게 저렇게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에 온갖 정성을 다한다는 것도 알았다.

헤른후트 별의 역사는 1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별은 한 도형시간에 학생들의 손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는 헤른후트의 선교의 열정에 따라 부모님을 따라갈 수 없는 수많은 선교사 가정 아이들이 다니던 기숙사 학교였다. 아이들은 성탄절에도 부모님을 보지 못하는 그리움 속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별을 만들어 선물했고, 한 집 한집 성탄절이 되면 이 별을 창가에 걸게 되면서 알려지다가, 본격적으로는 1897년에 드디어 한 사업가였던 헨드릭 페어백이라는 분이 더 견고한 별을 만들어 팔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8개의 삼각뿔에서, 17개의 사각 뿔이었던 별이 이제는 25개의 꼭지점을 360도에 똑같이 갖은 별이 완성되었다. 이 성탄절별은 유럽의 어디서나 성탄 장식용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 100개의 뿔로 이루어진 교회의 성탄절별 만드는 모습 ⓒ홍명희

헤른후트의 겨울밤은 더욱이 길다. 6시에 상점이 닫히면, 그야말로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그 캄캄한 긴 겨울밤을 환하게 밝히는 헤른후트 별로 인해, 겨울에 산보하는 일은 참으로 낭만적인 일이된다.  빛나는 헤른후트 별 위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참 별이 또한 너무 너무 많이 보인다. 한마디로 겨울이 되면 헤른후트는 별들의 잔치가 된다.

여름의 한 가운데에 별 제작소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내가 헤른후트에 살며 행복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곳에 와서 별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허허 벌판 캄캄한 밤중에 별을 따라가서 아기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이야기도 있고, 탈북자들 중 한 소녀가 했던 말 중에, 별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어두운 곳에서 절망하고 말았을 것이었다는… 그래서 그 별이 나를 살렸다는 그 고마움만큼의 깊은 감동도 있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별에 관한 진한 감사가 하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였다. 우리는 캠프파이어가 끝나고 목사님이 한 사람 한사람 축복기도를 해 주시는 줄을 서고 있었다. 그 줄은 너무 길었지만, 모기에 뜯겨 가면서도 남들이 다 받는 축복 기도를 꼭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기다림에 점점 졸립고 지쳐 갔다. 그 때 보았던 여름밤의 별들과 풀벌레 소리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기도를 받을 때, 별들은 증인으로 둘러 비추고 있는 듯 했다. 목사님은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면서 길게 서 있는 줄을 생각해서 짧게 기도를 마무리 하셔도 되겠건만, 내 이름을 부르고는 세계를 들먹이셨고(!), 축복의 긴 기도를 해 주셨다. 무릎을 꿇은 내 위로는 목사님이 힘주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계셨고, 그 카랑 카랑한 기도 소리는 헤아릴 수 없는 시골 밤하늘의 별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그날의  그림 같은 장면을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저장해 놓고 있다.

그리고는 한 20년도 훨씬 지나서 목사님을 뵙게 되어, 그 말씀을 드리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그 밤이 그리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목사님은 그날 밤을 지나 새벽별이 뜰 때까지 온 힘을 다해 기도 해 주셨는데…

나 같으면, 오래 기억하며 주님 앞에 생색을 낼 만 하였지만,  그리고 그 조무래기 아이들을 축복하는 일이 뭐 그리 중요했단 말인가! 지금은 또 20여년이 지나 갔지만, 그 분은 별처럼 언제나 내 가슴에 빛나는 분이 되었다. 남을 축복하는 사람은 별과 같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다니엘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별이야기이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난다고 하였다. 우리의 인생이 빛나려면 남을 섬겨야한다는 깊은 가르침이다.

올해는 우리 집 창문마다 별을 다 달지는 못해도, 헤른 후트 사람, 누구 보다 일찌감치 별을 달아서, 새벽 별 되신 주님을 맞이하는 대강절이 되게끔 부지런을 떨어야 하겠다. 그리고 별을 노래한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도 가늠해 보고 싶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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