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천막 아래서 만난 삶들112차 노숙인 케밥 나눔과 이야기 마당
김상기 목사(YD케밥하우스) | 승인 2022.08.22 01:50
▲ 김광옥 샘과 양진아 샘께서 벌써 오셔서 케밥에 넣을 야채를 썰고 계신다. 케밥 120개를 부지런히 만들어 역광장으로 가보았다.

한주 한주가 지나며 노숙인 나눔은 늘 새로워진다. 이야기 마당을 열면서다. 1~1.5시간 동안 잠시 펴는 천막이지만 그것은 무형의 힘을 발휘한다. 천막이 있어서 천막 밖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 옆에 앉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눌 수 있다. 천막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법한 일이다. 천막 아래서는 두 개의 탁자 주위에 각각 4개와 6개의 의자가 있지만 모자란다. 처음에는 크게 보였던 천막이 벌써 작아 보인다.

양샘과 김광옥샘이 한쪽에 있고 다른 쪽에 홍목사님이 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좋은갑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묵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외로움이 덜어지고 즐거움이 더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는 삶의 평범성이 다시 그분들의 것이 되기를 빈다.

천막 밖 할머니 한 분은 안양에서 오신다. 안양에서 오셨지요 했더니 그걸 기억해줘 고맙다고 하신다. 케밥을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두부와 대파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면 맛있다고 하신다. 할머님들은 케밥 드시는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 개발해내신다. 우리 할머님들의 응용력이 놀랍고 고맙다. 모쪼록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빈다.

젊은 사람들은 연세가 높으신 저분들과 다르다. 자기를 왕락이라 부르는 젊은이가 천막 저편에 있다. 낮은 목소리가 자꾸 옆으로 다가가게 하고 귀를 내밀게 한다. 전철 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삼켜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한다. 듣는 것을 멈추고 전철이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꽤나 길다.

그는 호주에 가서 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호주에 갈 길은 없다.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분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그에게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호주에 가서 일할 뜻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일할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해보지만, 그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내가 어떤 편견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가 곧 반성하게 된다. 거기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뚜렷한 것은 없다. 하지만 피해야 할 일은 있다고 한다. 나무심기가 거기 해당된다. 아마도 호주에 대해 여러 경로로 들은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 그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의 차이와 충돌을 넘어서서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세계관을 갖고 싶어하기도 한다. 어떤 사건들이 있어서 그리 생각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러다 보니 천막을 걷을 시간이 되었다. 천막 거두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니? 하고 물었더니 내 때가 아니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 하는 사이에 그는 줄 서 있는 사람들 속으로 갔다. 케밥을 나누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이야기했던 사이인가 물을 정도로 표정이 없다. 케밥을 나눠주고 담주에도 계속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혼자 기대해본다.

▲ 이야기 마당 천막과 탁자 그리고 의자를 설치하고 이야기 마당을 펼쳤다. 5시부터 약 한 시간 반 동안 문턱 없는 이야기 마당의 풍경은 하늘나라 잔치와도 같아 보였다. ⓒ한국디아코니아 제공

역 지하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났는데 못 뵌지 몇 주나 된 분이 계신다. 한 바퀴 다돌고 역 대합실을 나오는데 문밖에서 그를 만났다. 반가웠다. 인사를 하고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여기저기 계신다 하신다. 한곳에 오래 계셔서 지루해지신 것 같다. 어디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케밥을 나누는 자리에 오셨으면 좋겠다.

케밥 나눔과 천막 이야기 마당이 노인들에게는 쉼을 제공하고 젊은이들에게는 자활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종합적인 센터기능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그들이 디아코니아 실천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존감을 갖게 될 것을 기대한다.

김상기 목사(YD케밥하우스)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