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seph Noel Paton, 「Luther at Erfurt」 ⓒPublic Domain

바르트는 의인의 객관적인 내용, 곧 하나님이 그의 심판에서 행사하는 구원의 행동에 관해 언급한 뒤에, 이제 주관적인 측면, 곧 하나님의 이 구원의 행동이 인식되고, 받아들여지고, 파악되는,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편에서 “실현된” 인간의 행위에 관심한다. 이 행위는 믿음이다. 인간의 행위로서 믿음은 결코 창조적인 특징을 갖지 않고, 단지 인식적인 특징만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어느 것을 바꾸지 못하고 단순히 이미 일어난 변화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잘못 이해된 ‘오직 믿음으로만’

이것은 결코 협동이나 공적의 문제가 아니다(CDⅣ/1, 615를 참고). 의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이 교리를 인간의 행위인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 교리를 가장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보다 적절하게 이렇게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행동에서조차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없는 죄인이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는 믿음을 다른 모든 자기 의인(self-justification)들에 반대하는 의인의 수단으로써 주장하는 것을 “가장 악한 바리새주의”라고 비판한다(CDⅣ/1, 617).(2)

믿음은 이렇게 그 자체로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고, 그것에 공헌하지도 못한다. 믿음은 단지 그것만이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의인에 효과적으로 일치하고 알맞은 활동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의인과 관계할 뿐이다. 그리고 만일 믿음이 이런 것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의 내적인 가치나 혹은 특별한 효력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그런 것으로서 그것을 타당하게 하였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의로운 것으로서”, 곧 인간의 의로운 활동으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CDⅣ/1, 615).

그러므로 이 믿음의 본질은 정확히 겸손이다. 믿음 안에서 인간은 그 자신이 우월하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자신의 교만을 긍정하거나 자랑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도 역시 교만한 죄인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교만한, 자주적인 삶에 염증과 절망을 느끼게 된 자이다. 그는 겸손해진 교만한 자이다. 믿음의 겸손은 다른 모든 겸손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다. 그것은 결코 비관주의나 삶의 혐오가 아니다. 그것은 이렇게 개인적으로 선택한 겸손도(그것은 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강요된 겸손도(그것은 외적인 강제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고, 자유로운 순종 안에서 취한 자유롭고 즐거운 결정이다(CDⅣ/1, 617-20).

오직 믿음으로만이 배제하는 것들

여기서 바르트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표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오직 믿음으로만”은 행위의 배제(그의 믿음의 행위조차도)라는 부정적 의미와 단지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CDⅣ/1, 621). 이 두 가지 명제들은 서로를 제약하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해 해석된다.

믿음은 순종하는 겸손이고, 자기 자신의 포기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의인에서 그의 능동적인 모든 협력을 배제한다. 그러나 거꾸로 믿음의 이 자랑스런 고독, 곧 행위들의 배제는 믿음이 단지 순종의 겸손에 근거하기 때문에 의미를 갖고 진리일 수 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만’은 결코 인간의 행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모든 행위에서 나타나는 교만을 부정할 뿐이다(CDⅣ/1, 627).

그러므로 “행위들의 의”의 부정은 ‘정적주의’나 ‘방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의인이 있는 그 곳에 또한 성화가 있다. 바르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 그 자체가 하나님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바르트는 ‘의롭게 하는 믿음’을 그것의 부정적인 의미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는가? 바르트에 의하면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의인을 성취하고 계시하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의 ‘의’만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붙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셨다. 그는 우리의 사람이고, 우리는 그의 안에 있다. 우리의 현재는 그의 현재이고, 우리의 역사는 그의 역사이다. 여기서 바르트는 말한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행동을 인식하고, 파악하고, 깨닫는다. 그런데 정확히 그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고, 그분이 모든 사람들의 의인이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자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고전15:10)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오직 믿음으로만’은 ‘오직 그리스도만(solus Christus)’의 메아리일 뿐이다(CDⅣ/1, 632).

바르트에 의하면 그와 같이 ‘오직 믿음만’이 ‘오직 그리스도만’에 의거할 때, ‘의롭게 하는 믿음’은 긍정적인 측면을 갖는다. 믿음의 겸손한 순종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신자가 자신을 의롭게 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의 모든 탁월성, 우월성이 부정된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미래가 보장되는가?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내맡겨진 존재가 아니다. 모든 불안, 염려, 근심이 그에게서 사라진다. 믿음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낯선 의는 이제 그 자신의 의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늘’은 그 자신의 ‘오늘’이 된다. ‘죽음조차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롬 8:38-39)을 체험한 그는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그의 이웃들을 의롭게 된 자로서 고려한다. 그는 실제로 그의 미래를 향해 자유로운 자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간다(CDⅣ/1, 632-34).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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