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히브리 성서의 구분법과 구약성서와의 차이유대 성서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성서 이야기 (2)
이정훈 | 승인 2022.10.20 23:29
▲ 구약성서는 오래 세월 구전으로 이어져 오다 포로기 동안 여러 가지 재료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Getty Image

성서는 어떻게 체계적으로 모아지고 배열되었을까

“TANAKH”(“Torah[토라/법], Nevi’im[느비임/예언자들], Kethuvim[케투빔/글들]”을 줄여 두음문자로 표기한 것)라는 명칭은 성서의 세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경우, 이 용어는 성서에 대한 표준적인 구분 방식이다. 하지만 각각의 부분에 대한 이름은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첫 번째 부분의 이름은 “Torah(토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이 용어를 “Law(법)”로 번역해 왔지만, 이러한 번역은 너무 제한적이고, 또한 설화(narrative)와 시와 같은 비법률적 요소들을 특징으로 하는 이 첫 번째 부분의 책들을 잘못 표현한 것이다. 이 번역은 또한 “법의 종교” 이상인 많은 유대교를 잘못 표현했다.

오히려, “Torah(토라)”는 “Teaching(가르침)” 혹은 “Instruction(교훈)”을 의미하는 더 광범위한 용어이다. 이 첫 번째 부분인 토라는 때때로 “다섯 부분들”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Pentateuch로 표현된다. 히브리어에서 “다섯”을 의미하는 humash 혹은 모세의 다섯 권의 책들이라고 일컬어진다.

두 번째 부분, 즉 “Nevi’im(느비임)”이라는 이름은 “Prophets(예언자들)”를 뜻한다. 이 부분의 책들은 많은 부분이 실제로 예언자적 작품들이다. 종종 “Former Prophets(전기 예언자들)”이라 불리는, 느비임의 첫 부분은 설화 본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설화 본문들은 토라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을 이어가고 있다.

설화로 구성된 이 책들에서 여호수아, 사무엘, 이사야, 에스겔, 애가, 하박국, 스가랴를 비롯 예언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책들은 예언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성서의 마지막 부분인 “Kethuvim(케투빔)”이라는 명칭은 “Writings(글들)”을 뜻한다. 물론, 성서의 나머지 부분 또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마지막 책 부분에 그러한 일반적인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역사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케투빔”이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시편(기도들), 역대기(역사), 다니엘(예언) 그리고 아가(관능적인 시) 등과 같은 다양한 작품을 담고 있는 혼합적인 모음집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약성서

원시 그리스도교 구성원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Septuagint(칠십인역,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첫 번째 유대 번역본)의 순서를 채택했다. 첫 번째, 그들은 오히려 히브리어 보다는 그리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번역본에 의존하고 그리스 번역본의 순서를 채택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두 번째, 그리스도인이 채택한 칠십인역의 순서-몇몇 다른 번역본들과는 달리-는 예언적인 책들로 끝난다. 그리스도교의 정경(구약 + 신약)에서, 이러한 배열은 예언자들(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메시아로서 예수의 오심을 예언한)과 복음서들(예언을 성취하는 예수의 오심을 묘사한)을 나란히 위치시킨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성서는 그리스도교의 출현하기 이전의 구약성서 책의 순서를 사용했지만, 그 순서는 그리스도교의 목적에 잘 부합했다.

외경(The Apocypha)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약성서 범위는 유대인들의 성서 범위보다 크다. 전자는 위에 열거된 책들 뿐만 아니라 외경(“숨겨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도 포함한다. 이 외경들은 가톨릭, 정교회, 콥트 교회 그리고 기타 그리스도교 교회가 권위 있고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성서의 다른 책들보다 지위가 낮은 제2 성전 시대의 다양한 저작물이다. 이러한 책들에는 마카베오 1서와 2서(역사 텍스트)과 벤 시라(그리스어로 Ecclesiasticus[집회서]라고 불리는 잠언과 유사한 지혜 텍스트)와 같은 책을 포함하고 있다. 개신교는 후에 정경의 일부로 외경을 거부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정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