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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존재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해(창 1,26-31;  롬 8,18-3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1.03 00:19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존재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창조세계도 새로워질 수 없다. ⓒGetty Image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약탈적 행태가 지속됨으로써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가 사는 땅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편익을 위한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가 자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늘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구의 멸망이 바로 눈앞에 있다 해도 인간은 그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인다 해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그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상상하고 현재의 세계를 그와 부합하게 만들어갈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지금 마치 처음 창조된 인간처럼 하나님의 그 요구 앞에 서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뜻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로 하나님의 현존과 주권을 그의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나님의 형상이 하는 일입니다. 모든 생물들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돌보시고 먹이심으로 생명들을 보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형상인 사람에게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그와 같은 다스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배치되는 것일 수 없습니다.

생명의 보존이 인간에게 맡겨진 책임입니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실현되었던 때가 홍수 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따라 모든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생명의 보존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다스림은 결코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복하라는 말이 땅과 전쟁하라는 말일 수 없습니다. 다른 생명들과 싸워서 그들의 서식처를 빼앗으라는 것일 수도 없습니다. 훗날 서구인들이 이 말씀을 끌어대며 남의 땅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던 것처럼, 남의 영토를 빼앗으라는 것일 수도 없습니다.

이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채우라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구 증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의 확장을 수반합니다. 정복하라는 말이 이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그것은 사람이 살지 않던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의 땅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무한정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생명들과 공존이 가능한 한도 안에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창조세계의 미래는 조화와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모든 생명들의 먹거리를 식물에 한정시키시고 사람과 다른 생물들의 먹거리를 구분하셨습니다.

먹거리가 갈등과 다툼과 분쟁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세상의 모습은 창조이야기에는 없지만, 창조가 회복된 종말의 모습에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전쟁이 없어지고(사 2,4) 먹이 사슬이 해체됩니다(사 11.6-9).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참 좋다 하시며 스스로 감탄할 수 밖에 없으셨던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후 하나님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일차적으로 사람 때문입니다. 공존과 평화가 사람이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경계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가 인간에 의해 무너짐으로써 땅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홍수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땅에서 피조물의 탄식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가 하시는 일을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게 우리에게 숨은 감각 능력(冥感; 전 3,11)을 주셨습니다. 자연에 남겨진 하나님의 흔적을 보고 하나님이 아름답다 하신 것처럼 아름답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각 능력은 자연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도 감지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연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을 갈구하는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귀기울이고 행동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그의 명령을 어겼을 때 땅을 저주함으로써 아담을 벌하셨습니다. 땅은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가 땅을 덮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땅을 저주하셨다고 했습니다(창 8,21). 그리고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땅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호 4,1-3).

땅은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과 적대적인 사람들 때문에 저주와 고통 아래 있었기에 피조물들의 희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에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그들을 그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할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오늘의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자들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셔서 아들들이 되게 하셨고, 이 때문에 그리스도는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그 아들의 형상에 부합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지만 탐심으로 얼룩진 자들이 그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형상에 부합하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아들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이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실현된 형상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양자는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에 부합하는 모습은 그의 삶을 닮아가는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를 따라 행동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우리의 옛사람을 못박은 새피조물, 새존재입니다.

창조세계의 회복은 탄소중립과 같은 기술의 개발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그 기술은 탄소중립적이지 않은 기술들이 필요하고 탄소중립적이지 않은 부산물들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새로와지지 않고는 창조세계의 회복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배려하고 이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새존재 없이 창조세계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피조물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기를 빕니다. 자연과 더불어 생의 축제를 펼쳐가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해 일하는 새존재로 살아갑시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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