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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첫째의 섬김(신명기 7,6-11; 누가복음 22,24-3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1.10 01:21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에게 요구하신 것은 크고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Getty Image

우리는 자주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경험하기도 쉽지 않고 받아들이기는 더욱 더 쉽지 않을 말입니다. 그것은 질서가 전복되고 원리가 바뀔 것을 요구하는 말일 것입니다.

새질서에 대한 희망이 우리 사회에 곳곳에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에서 벗어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신이 날지 생각만해도 날아갈 것 같습니다. 각자의 차이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는 결과가 작다고 실망할 이유도 없고, 크다고 자랑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각자가 최선을 다해 얻은 것이라는 점이 존중되고 인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거둔 것도 독식이나 독점이 아니라 공유와 나눔의 원천이 되고 적게 거둔 것도 모자람이 아니라 채워짐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질서의 수립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한걸음 더 가깝게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해도 그 말은 조금 다른 삶의 태도와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가 꼴찌처럼 사람들을 섬기고, 꼴찌가 첫째처럼 섬김을 받는다면, 적어도 차별과 혐오가 없는 사회에 가까와질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막 9,35). 이런 사람은 첫째가 되어도 그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크고 강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습니다. 그 조상들을 알고 계셨지만, 그들 역시 고향을 떠나야 했고 타지에서 몸붙여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후손들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을 때 그들은 종살이를 견디다 못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한 민족을 이루었다 해도 이집트라는 강대국과 비교하면 지극히 작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단 그의 명령과 법을 지킨다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지킨다면, 뭇백성들이 그 명령과 법을 보고 이 큰 나라 백성은 참 지혜롭고 참 안목이 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신 4,6). 작은 자들을 크게 하고 꼴찌를 첫째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선택된 이스라엘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실패를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꼴찌로 사는 첫째가 되지 못했고, 작은 자들을 섬기는 큰 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옛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무작정 욕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사람의 욕망과 불일치하는 질서를 사람이 수용하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사람과 새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이 일에 사람을 초청한다는 자체가 이미 꼴찌를 높이고 섬기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은 낮은 곳에 오셨고 낮은 곳 어둠 속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 곁에 있으면서도 새질서를 감지하지 못했으니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예수에게서 세상을 뒤집을 힘과 권위가 있음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누가 큰가를 놓고 논쟁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무언가 되지도 않았는데 논공행상을 따집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일입니다. 설령 공을 평가하고 상을 주는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는 이유는 예수가 권력을 잡는다면 그 아래서 한 자리 차지할까 하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로 말씀하십니다. 바로 앞에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장면이 있습니다.

아직 만찬 중이었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식탁의 모습은 우리가 보통 생각했던 것과 다릅니다. 제자들은 앉아서 예수께서 주시는 떡을 먹고 잔을 마시고, 예수께서는 이를 위해 제자들 사이를 오가셔야 했을 것입니다.

이게 예수와 제자들이 식사하는 평상시의 모습인지는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큰가를 놓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앉아서 먹는 사람들이 더 크다고 하며 제자들을 높이고 식탁 시중드는 자로 자기를 나타냄으로 자기를 낮추시지만, 예수는 그들의 주님으로 큰 자이고 그들은 예수의 제자로 작은 자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식탁에서 뒤바뀐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이 그의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기서 보여주시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에게는 그와 함께 모든 고난을 겪었으므로 주님의 나라에서 다스리는 지위를 주시고 땅에서처럼 주님의 식탁에 참여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스림은 섬기는 자로서의 다스림입니다. 식탁에서 예수의 시중을 받고, 주님의 섬김을 받은 그들은 섬김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첫째가 꼴찌처럼 섬기는 첫째입니다. 이러한 질서의 수립이 예수께서 자기의 몸과 자기의 피로 세운 새언약의 내용일 것입니다. 이런 질서가 우리 가운데 있었다면, 10.29 참사 희생자들은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새질서가 우리 시대의 질서가 되고 그들의 희생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현질서를 대체하기를 빕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어 섬기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빕니다. 섬김을 받는 자가 도리어 섬기는 자들을 섬기는 질서의 수립이 희생자들과 남은 자들에게 참된 위로가 되고 억울함과 분노를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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