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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일어서야만 하는가?전통이라는 틀에 매여사는 건 아닌지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2.12.14 14:52
▲ 1750년 영국 파운들링 병원 자선 연주회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공연하는 모습 ⓒWikipedia

찬양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믿음의 노래이다. 찬양은 우리의 삶과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하나의 예배 행위이다. 믿음의 찬양에 감동하고 약해졌던 믿음이 강해짐을 느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헨델의 메시야 중 ‘할렐루야’는 많은 믿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곡이다.

통계에 의하면 헨델의 메시야 중 ‘할렐루야’는 1742년 4월 13일 아일렌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이후에 지금까지 수천만 번 정도가 연주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이 되면 크다고 하는 교회치고 메시아를 연주하지 않는 성가대는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도 감동을 주었던 곡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메시아’ 중에서 유독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 모든 청중이 자리에서 다 일어난다는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전설같은 이야기지만) 이 곡이 연주될 때 어느 왕이 곡을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감동  받아’라는 말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하도 미화되는 것이 많기에)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고귀하고 높은 왕, 우리와는 신분조차 다른 왕이 일어났기에 황송하여 그 곡을 앉아서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왕도 일어났는데 내가 뭐라고 앉아서 듣나?) 그런데 꼭 일어나야만 하는가? 나에게는 할렐루야보다는 다른 찬양곡이 더 감동을 주어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주는데 오직 왕이 일어나서 들은 곡이기에 나도 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아르헨티나에서 살 때의 일이다. 담임하던 교회가 개척한 현지인교회의 세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지역은 빈민촌이라 번듯한 집들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자가용을 타고 가는 것, 좋은 양복을 입고 가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럽기만 한 지역이다. 실업자들이 많이 생겨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찬양이 울려 퍼진다.

“Jehova es mi pastor. Nada me faltara!(‘헤어바 에스 미 빠스톨 나다 메 활따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나는 찬양을 함께 하다 그만 울고 말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 뿐이고 부족한 것 투성이인 사람들이 부족함이 없다고 찬양하고 있었다. 진짜 찬양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일어나고 말았다. 몰려오는 성령의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일어났다.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찬양하고 있었다.

“나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던 왕, 우리와는 전혀 다른 왕, 당시 영국국민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었는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왕, 민중의 아픔은 전혀 고려치 않고 인형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바로 그 왕이 일어났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할렐루야’만 나오면 자동으로(더우기 자신의 예의와 유식함을 자랑하듯이) 일어나는 우리를 보고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갈릴리 먼지 나는 촌구석을 샌들 하나 신으시고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 하나도 없다.’라고 외치며 평생을 가난한 자로 사셨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예수님도 ‘할렐루야’를 들으시면서 일어나실까? 나는 ‘할렐루야’를 들으면서 일어나는 것을 지금도 거부하고 있다. 남들이 뭐라 하던 거부하고 있다.(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나보고 왕이 일어났던 사실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합창, 가진 것 하나도 없는 사람들의 합창이 더욱 신선하다. 음정도 틀리고 촌티 나지만 그것은 진정한 풍요로움은 무엇인가를 나에게 가르쳐 주는 진짜 찬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의 찬양과 함께 일어난다.

그런데 정말 할렐루야가 울려 퍼질때 꼭 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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