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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는 사회와 공동체란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2.31 22:40
▲ 공평과 정의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살림을 위한 것이다. ⓒGetty Image
다윗이 말합니다. 나의 형제들아 야훼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으니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렇게 할 수 없다. 이 일에서 누가 너희 말을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몫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몫이 같다. 모두 동일하게 나누어야 한다.(사무엘상 30,23-24)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기다리며 이 말씀을 만나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시글랏 지역을 침공한 아말렉 사람들을 추적하여 그들을 섬멸하고 가축들을 비롯해 그들이 약탈해갔던 것들을 모두 되찾아 왔을 때입니다. 추적 당시 다윗의 군대는 600명 가운데 지쳐 함께 갈 수 없어 뒤에 남아 있던 200명을 제외한 400명입니다.

되찾은 것을 나눌 때 추적했던 일부 사람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을 본문은 못되고 껄렁껄렁하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들이 그때 했던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나눠주지 말고 가족들만 데리고 떠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논공행상은 어디서든 공정하고 공평해야 하지만, 불만불평이 자주 따릅니다. 그런데 공정과 공평은 분배를 위한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있어야 공정과 공평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위 본문에서 다윗이 말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다윗은 남아 있던 사람들의 역할을 찾아냅니다. 지쳐서 전장에 나서지 못했다고 그들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아서 물건들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고 그들을 인정하고 양자의 전쟁 기여는 동일하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을 공정하지 않고 공평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눈에는 그들도 똑같이 살 권리가 있고, 역할의 차이 때문에 그 권리가 훼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후방에 있어서 뒤를 걱정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역할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의 부하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공평과 공정은 삶과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살리는 것을 배제하면 공평과 공정은 형식적인 것으로 오히려 죽임을 결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살림의 관점에서 공정과 공평은 정의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관점은 만나 사건(출 16장)과 예수의 품꾼 비유(마 20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살림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덕목이어서 그 아들을 이 낮은 땅에 보내셨습니다.

살림을 잊은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의 이 조치를 전례로 삼은 것처럼, 살림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와 우리의 새해이기를 빕니다.

살림의 관점에서 우리의 사고체계를 재구성하는 새해가 되기를. 공정하고 공평한 분배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정신이 풍요로와지는 계묘년이 되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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