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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82억 벌어서 참 좋겠다신앙이 있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 더 나쁘다
허호익 박사(전 대전신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23.01.02 16:13
▲ 세상의 양심을 재는 저울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Getty Image

우리 주변에는 신앙이 있다고 하는데 양심이 무딘 사람, 양심이 불량인 사람, 아예 양심이라는 게 없는, “자기 양심이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딤 4:2)”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앙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선한 양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닐까요. 양심(良心)이라는 말은 좋은 마음이라는 뜻인데, 선한 생각이나 선한 의지를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좋은 마음도 있고 나쁜 마음도 있습니다. 선한의지도 있고 악한 의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쁜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꾸밀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거짓으로 꾸미는 외식(外飾)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가장 과격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비판이 아니라 저주를 하였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저주가 마태복음 23장에 모두 7번 나옵니다. 여덟째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8복이 ‘축복의 장’이라면, 마태 23장은 ‘저주의 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축복도 하시고, 저주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축복도 8개, 저주도 8개입니다. 악한 의지로 선을 가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과 가장 먼 삶이 바로 위선이라는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로마 역사를 보면 포악한 군주들이 가장 자선 행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가장 포악했던 네로 황제는 자신이 유명한 자선가로 알려지기 위해 무수한 자선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비양심적이고 위선적인 통치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을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민을 위한 복지 예산은 수백억 삭감하고, 서민 경제를 한다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재래시장에 가서 물건 한두 개 사주는 대통령도 있습니다.

800억의 비자금이 알려져 물의를 빚자,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모 교회가 몇 년 전 소속 노회 미자립 교회 지원금 1억 8,000만 원을 출연하였습니다. 이에 노회정상화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해 “노회 파행 사태 당사자가 현금을 나누는 행위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노회원을 회유하려는 시도로 해석한다”고 비판했습니다. 800억 원과 1억 8천만 원이 참으로 대조되는 숫자라고 느껴졌습니다.

최근 어느 전직 장로 대통령은 2020년 뇌물수수와 횡령 등 혐의로 징역 17년 형에, 벌금 130억 원과 추징금 58억 원의 형을 받아 수감 중 사면되었습니다. 추징금 58억 원은 다 냈는데 벌금은 48억 원만 냈으며, 나머지 ‘벌금 82억 원을 벌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답니다. 예수를 만난 삭게오는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눅 19:8)고 하였는데, 참 대조가 되는 모습입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믿음도 있고 양심도 있는 사람,
2) 믿음은 있고 양심은 없는 사람
3) 믿음은 없으나 양심은 있는 사람
4) 믿음도 양심도 없는 사람

물론 신앙인의 입장에선 “믿음도 있고 양심도 있는 사람(1)”이 가장 좋은 사람이고, “믿음도 양심도 없는 사람(4)”이 가장 나쁜 사람이겠지요. 그렇다면 2번의 “믿음은 있고 양심은 없는 사람”과 3번의 “믿음은 없으나 양심은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하는 질문을 학생들과 교인들에게 해 보곤 했습니다. 대부분은 “믿음은 있고 양심은 없는 사람”(2)이 “믿음은 없으나 양심은 있는 사람”(3) 보다 더 나쁘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부는 그 반대로 답하였습니다. 양심은 있지만, 믿음이 없으니 신앙적으로 보면 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이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양심이라 단어는 바울 서신에만 20회나 나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이 주어져서 율법을 모르는 시대의  사람은 양심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거짓을 드러내고 진실을 증거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딤후 1:3)라고 했고, “나도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행 24:16)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 생활에 파선(破船)을 당하였습니다.”(딤전 1:19)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양심을 저버린 사람은 신앙을 저버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양심을 저버리는 자”는 “신앙은 없으나 양심적인 사람” 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이는 “주여, 주여”(마 7:21),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아 예수님의 책망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연세대 백낙준 명예 총장께서 청평 저울에 관한 예화를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청평이라는 예민한 저울에 작은 종이를 올렸다가 여기에 연필로 금을 그어 다시 올리면 연필심의 무게 때문에 저울이 기운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수십 톤의 차량의 무게를 재는 계차기라는 저울에는 덩치 큰 어른이 차에 매달려도 눈금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청평같이 예민한 신앙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한국교회에는 ‘오직 믿음’만을 공허하게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이 바른 믿음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신자들의 일상적인 삶이나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사태에 비양심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기 양심의 화인(火印)을 맞은 자들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허호익 박사(전 대전신학대학교 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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