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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조건없이 오셔서, 아낌없이 주는구나”[인터뷰]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 말하는 교회와 한국 사회 노동 환경 (3)
정리연 | 승인 2023.01.29 05:49
▲ 힘들고 막막할 때, 필요하다는 목소리만 듣고 달려와 주신 종교인들에게 감사하다는 김혜진 위원장. 이제 청년들이 생계 걱정없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정리연

《현장의 힘》(배성민, 빨간소금, 2022)에는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이 부당 해고에 맞서 투쟁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엄마일 수도, 이모일 수도, 동생일 수도 있는 ‘그녀’들도 처음에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달라졌고 성장했다. 신라대 학생들을 자기 자식이라 생각하며 한 번이라도 더 빗질하고 걸레질했던 노동의 ‘현장’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목소리 높여서 투쟁하는 ‘현장’이 되었다. 나 혼자만의 ‘밥줄’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당한 고용 시스템과 처우에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모든 약자를 위해서였다.

노동권이나 운동, 투쟁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현장에서의 그들은 진실했고 당당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 춤이 되고 외치는 목소리가 노래가 되는 곳이 현장이 아닐까?

“‘농성 투쟁’하면 흔히 분노와 슬픔을 떠올린다. 하지만 인생에 희노애락이 있듯이 농성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우리는 직접고용이라는 결과만 목 빠지게 기다리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애썼다. 함께 자고, 밥해 먹고, 산책하고, 토론하고, 연대 투쟁에 나서고, 콧바람 쐬러 수련회를 다녔다. 복직한 지금, 조합원들은 농성할 때가 즐거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대학 본부 로비에서 114일을 버티게 한 ‘현장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책을 펴내며 중에서, <현장의 힘>)

▲ 위원장님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게 뭔가요? 역시, 현장인가요?

네. 가슴이 뛰기도 하고 때론 지치기도 하고. 하하. 그나마 다행이었던 게 제가 2021년 9월부터 안식 기간을 가졌어요. 몇 달간 안식을 가졌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굉장히 지쳤었구나, 진짜 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중대재해처벌법제정 운동본부 만들어서 활동할 때예요. 김미숙 대표님이 단식 들어간 바로 그날인데, 제가 아침에 강의가 있어서 나가다가 쓰러졌어요. 저도 되게 충격을 받았죠. 병원에 한 일주일 넘게 입원했는데도 회복이 잘 안되더라고요. 동지들은 한참 단식을 하고 있는데 저는 병원에 있으니까 막 미치겠는 거예요. 나도 거기에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막 들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병원에 누워서 줌회의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길래 그냥 쉬고, 1월 1일에 다시 복귀했어요. 완전하게 회복이 안 됐는데 제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그냥 빨리 복귀한 거죠. 그러고 다시 일이 많으니까 정신없이 다녔어요.

그런데 8월 넘어가니까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미 한번 위험 신호도 왔으니까 그냥 과감하게 쉬었어요. 진짜 잘 쉬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놀았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몸도 마음도 훨씬 안정적이 되고 많이 좋아졌어요. 다시 발랄해졌어요.

▲ 회복이 잘 되고 다시 발랄해지셔서 (웃음) 정말 다행이에요. 그때 과감하게 잘 결정하셨던 거 같아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 참 쉽지 않을 텐데, 청년들도 많이 있나요? 위원장님 같은 분들의 뒤를 이을 누군가는 있어야 하잖아요.

사실 그동안 청년들이 적응하기 되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희 조직은 뭔가 짜임새나 체계가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상황이 터지면 바로 가서 뭔가 해야 하고, 혼자 가서 해야 하는 일들이 되게 많아요. 또 상황을 바로 판단해야 하는 일도 많은데 모든 걸 충분하게 서로 상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들 바쁘니까 청년들이 저희 같은 조직은 버티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도 다른 조직과 연대하면서 청년들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될 때가 많은데 생각보다 이쪽 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사실 굉장히 불안정하고 본인이 책임지거나 판단해야 하는 무거움은 있지만 그래도 다른 데에 비해서 보람이 있다는 점에서는 청년들이 관심 있게 눈여겨보는 것 같아요. 꼭 노동운동이 아니더라도 시민사회운동 전반에서요.

▲ 그럼, 그렇게 눈여겨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청년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민사회가 그 청년들이 들어왔을 때 좀 더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데에 비하면 훨씬 관료적이지 않다는 게 좋은 점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생계가 불안정하고 혼자서 판단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많아요. 그런 걸 어떻게 서로 덜어주면서 의논하는 구조로 만들어갈지, 이런 게 숙제인 것 같아요. 워낙 인력이 없다 보니 한 사람이 일당 백해야 할 때가 많으니 뭔가 구축해가면서 가는 게 잘 안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구조를 만들어야만 청년들이 와서 일하면서 축적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이런 활동가라는 걸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흔들리는 사회를 바라보면 뿌리가 얕았던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는 김혜진 위원장의 이야기는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기만 이 사회가 무섭게 느껴진다. ⓒ정리연

▲ 얼마 전 국회 앞 농성장에서 3대 종단에서 주관한 기도회가 있었잖아요. 이런 기도회나 예배가 단지 일회성으로 끝나 버리거나 형식적일 수도 있는데, 노동자들과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들이 종교계에 진짜 원하는 연대는 어떤 건지 궁금해요.

굉장히 감사하죠. 현장의 많은 분이 왜 종교인들이 오시면 좋아하는 걸까에 대해 저도 좀 궁금했는데,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종교인들은 아낌없이 준다는 느낌, 어떤 전제가 없어도 되는구나 하는 게 있나 봐요. 이분들은 본인이 뭘 받으면 내가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현장에 계신 분들도 연대를 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끼기도 하는데 종교인들은 그런 기대를 안 한다는 게 눈에 보이잖아요. 아무런 그런 조건 없이 오셔서 아낌없이 주는 구나 하는 편안함이 있는 거죠.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2016년도에 거제 대우조선이 어려워서 비정규직들이 막 해고되기 시작했을 때 3대 종단에서 같이 토론회를 한 적이 있어요. 지금 단식하고 있는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인 이김춘택 동지가 발언하면서 “저희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었어요.

그때 그 기댈 언덕이라는 단어가 저한테 인상적이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기댈 언덕이 된다는 게 어떤 걸까, 생각했죠. 그 후에 노조를 처음 만들 때 교회에서 물질 후원도 많이 해주시면서 힘이 되어 주었어요.

그리고 전담할 사람을 파견해서 노조 만드는 조직 사업을 지원도 해주셨고요. 그게 다 3개 종단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아무도 들여다보지도 않을 때였거든요. 조선 하청 노동자 몇 만 명이 해고된다고 신문에는 나왔지만,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운동 사회에서도 별로 관심이 있지 않았어요. 그때 교회가 먼저 나서서 토론회를 열어서 노동자들을 초청하고 사람도 조직화로 내보냈어요. 그다음에 커다란 배를 만들어서 문화제도 열어 주셨고요.

저는 그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인데, 조직도 아닌데 뜬금없이 누군가가 호소를 하니까 그 호소에 대해 그대로 화답해서 길을 열어 주시는구나. 그 일을 종교인들은 기억을 못 하실 수도 있지만 이번에 거제통영고성 대우조선 하청지회가 싸움을 하는 첫 출발이 거기였거든요.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고 힘을 보태는 것, 이게 진짜 종교가 아니면 하기가 되게 어려운 일이 겠구나 라는 생각을 그때 했죠. 저는 그동안 교회가 함께해주셨던 장면들을 굉장히 많이 기억하고 있어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 그럼 혹시 교회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참 고민인데,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좀 많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하고, 언제부터인가 자기만 잘살면 되는 게 사회의 보편적인 생각처럼 돼버렸잖아요.

근데 저희 어렸을 때는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다 같이 살아야 한다, 이런 말들을 들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언론도, 교육도, 아무 데도 없어요. 그럼 이 얘기를 도대체 누가 해주지?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해줄 수 있지? 하고 생각을 해 보면 지금은 딱 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나가 교회고 다른 하나는 노조예요.

노조도 최선을 다해서 같이 살아야 한다고 얘기를 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한 것 같거든요. 교인들이 꼭 노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니 혐오하지 않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그런 보편적 얘기라도 꾸준히 끊임없이 해줘야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게 종교가 가져야 할 기능 같아요.

▲ 마지막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지금껏 흔들리면서도 계속 걸어오셨다고 하셨는데 그 변화를 요즘에도 느끼시나요?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체감을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 갑자기 흔들리니까 뿌리가 깊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래서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또 잘 견뎌 나가야겠죠. 제가 원래 낙천적이거든요. 하하!

고통과 험한 시간을 견뎌오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좌절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자신은 낙천적이라면서, 점점 더 나아질 거라면서 밝게 웃는 김혜진 위원장. 김 위원장의 소망이 얼어붙은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12월은 성탄절이 있는 달이다. 기사가 나갈 때쯤이면 성탄절이 지난 후겠지만, 믿는 자들에게 ‘예수의 오심’은 12월 25일 하루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매서운 한파처럼 사회 곳곳에서 암울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소식들이 우리를 날카롭게 후비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권력자들은 배부르고 더 큰 욕망을 향할 때 사회 곳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고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조차 짓밟히고 있지만 이러한 때, 이러한 곳으로 예수님이 친히 찾아오심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예수님이 세상을 “짠!”하고 바꿔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주님의 방식이 아닐 것이다. 주님은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으면서 울타리를 하나씩 없애고, 그어 있는 선을 지우고, 서로 친구가 되어 평화로워지는, 그런 곳을 우리와 함께 이루어 가시기를 바라시는 게 않을까. 더디더라도 말이다.

지금 눈이 쌓여 있는 나뭇가지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다음 봄이 되면 초록 잎사귀를 돋아 낼 생명력을 품고 있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연대와 생명의 힘으로 더 살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추운 계절이 끝나기 전에,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인, 차가운 땅바닥에서 농성하는 곳곳의 노동자들, 사회에서 밀려난 자들이 따뜻한 ‘나의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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