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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영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설교와 이미지 (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2.07 15:59
▲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한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설교와 이미지

설교를 케리그마, 곧 말씀의 선포로 이해한다고 해서, 이미지가 설교자에 의해서 배타적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언어도 이미지이며, 말씀의 선포자인 설교자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예배 공간은 물론 설교자의 의복, 몸짓, 언어 모두 이미지와 관계되어 있다.

설교에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새로운 일이 아니다. 성서 이야기를 그린 그림 오려 붙이기에서 환등기, 오버헤드 프로젝트, 최근에는 파워 포인트 등 매체들을 이용한 예배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예배도 있는데 이른바 ‘몸 찬양’이 그것이다. 아니 어쩌면 예배 그 자체가 이미 시각예술이고 이미지 없는 예배란 상상할 수 없다. 설교의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을 보다 생동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 설교의 예술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리경험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데서 성취된다.

문제는 이미지에 담긴 내용이다. 대부분 설교나 예배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들은 선포의 보조 기능, 혹은 교육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미지는 선포의 동반자, 아니 선포 그 자체이다. 이미지, 예술, 상징적 행동 등은 단순히 언어적이고 개념적인 사유의 번역이나 설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1)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설교나 예배에서 사용할 이미지들이 굳이 종교적인 소재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활용가능성의 기준은 작품의 수준이지 매체 그 자체가 아니다.(2) 종교적인 소재를 지니고 있는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이머 제단화’같은 성화나, ‘벤허’, ‘십계명’ 등의 종교영화만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세속적이고 상업적인 작품도 얼마든지 종교적,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 예배의 예(3)

지금까지 영화를 예배에 이용하는 것은 시간적, 기술적 문제로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홈씨어터 시스템과 비디오, DVD, 컴퓨터 등을 이용한 기술적 발전으로 영화예배는 훨씬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영화를 예배에 직접 도입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상업적인 영화, 범죄 영화, 공포영화, 공상과학영화, 에로 영화는 물론이고, 마틴 스코세이즈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등 종교적 소재를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특히 더 거부감을 가진다.

영화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영화와 그리스도교, 극장과 예배당이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극장과 예배당은 제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유사성이 있다. 세속적 시간과 구별된 시간 사이에 있는 문턱을 넘나드는 긴장이 그것이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 혹은 헌금이 필요하다. 제의에 필요한 적합한 음식이 준비된다. 휴게실에서 음료수, 아이스크림, 팝콘 등이 제공된다.

가장 결정적인 유사성은 대리체험에 있다. 모든 제의에 필수적인 일치의 경험, 그리고 그 후, 축제 후에 제의 공동체가 함께 의사소통 하는 것, 즉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 이런 영화관람의 요소들은 종교적 제의와 대단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예배보다 훨씬 견인력을 가진다는 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등 흥행에서 성공한 영화의 관객 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종로에 있는 어느 교회 오후 예배에 설교하기 위해 갔다가 주변 극장 관객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수의 교인들과 함께 예배드린 경험이 있다.

둘째, 때로는 영화가 예배보다, 설교보다 더 감동적인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인 영화 수가, 나를 감동시킨 설교 수보다 더 많은 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성서보다 가치관 형성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진실이다. ‘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친구’ 등 폭력을 미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은 폭력영화들, ‘영혼과 사랑’, ‘은행나무침대’ 등 젊은이들의 사후 세계관 형성에 끼친 영화들, ‘뱃트 맨’ 흉내낸다고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아이 사건 등은 영화가 미친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티스 군드라흐는 영화를 예배나 설교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감상회’에로 교인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예배’에 초대한다. 다른 예배와 마찬가지로 영화예배에서도 성서봉독, 찬송, 기도 등 모든 순서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예배의 목적은 ‘세속적인 영상과 이야기들도 그리스도교적, 종교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4)

군드라흐가 영화예배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목사들이 ‘일반적으로 현대의 경험차원보다 유다 지방, 로마 제국 시대의 경험과 사고의 지평을 훨씬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경험세계와 생각과 관계를 맺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현재의 상황으로 번역하는 데 영화예배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5)

미주

(1) 리차드 빌라데서, 『신학적 미학』, 손호현 역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1), 51.
(2) 티스 군드라흐, “영상-신화-영화: 영화예배를 위한 한 시도”, 「신학사상」 90호, 76.
(3) 이하에서는 티스 군드라흐의 논문, “영상-신화-영화: 영화예배를 위한 한 시도”에 크게 의존했음을 밝힌다.
(4) 티스 군드라흐, 같은 논문, 77.
(5) 티스 군드라흐, 같은 논문, 77.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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