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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동전의 앞뒷면“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마태복음 21:33-4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3.20 01:49
▲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겸손과 순종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도무지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라는 대답은 스스로가 평안 누리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입니다.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지만, 나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 외부 상황은 언제나 우리를 평안하지 못하게 합니다. 끊임없이 또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의 안정을 통해 평안을 누리고자 한다면 평생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시선을 나의 내면으로 돌려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주어진 평안을 찾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나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관없이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께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그럼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잠시 잠깐의 기쁨을 주기는 하겠지만 결국 우리의 평안을 흔드는 허 탄 한 것들에 눈을 돌리거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도님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뽑은 2023년 말씀카드를 어떻게 간직하고 계십니까? 어떤 말씀인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전 매일 새벽, 새벽 예배드리기 전에 성경책을 펴서 송구영신예배 때 뽑은 말씀 카드를 읽습니다. 제가 받은 말씀은 잠언 22:4입니다. “4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 개역개정으로는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너무 좋은 말씀 아닙니까?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 말씀이 좋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재물과 영광과 생명’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당시에 제가 이 말씀 카드를 뽑으면서 성도님들께 “제가 2023년에는 돈 좀 만지려나 봅니다.”라는 우스개 이야기를 해드린 기억을 갖고 계신 성도님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아무래도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이게 되는 건 이런 보상, 내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언제 하나님이 나한테 이 말씀대로 해주시려나’ 또는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이 말씀처럼 응답해 주시겠지’라고 말입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성도님들께 ‘돈 좀 만질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꺼낸 그 순간 이상중 목사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매일 새벽 이 말씀카드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 말씀이 그저 좋은 게 아니라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앞에 있는 말씀인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삶,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먼저 살아야 하는데, 과연 내가 이런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겸손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모습이 무엇인지, 매일 그렇게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제가 2023년 받은 잠언 말씀과 비슷한 본문이 시편에도 있습니다. 시편 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두 번이나 거의 같은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이 구절들이 확실한 약속임을 알 수 있지만 그만큼 겸손하게 살고, 하나님의 경외하며 산다는 것이 또한 어려운 일임도 동시에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0-33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이 본문을 읽으며 주목해야 할 말씀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가 아닙니다. ‘그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걱정하지 말자,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주시는지를 보자’가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을 읽으며 주목해야 할 말씀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먼저 깨닫고, 순종하는 삶이 우선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삶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삶입니다. 나의 목적과 이익과 욕망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이 앞서 이끌어 가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주로,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이 겸손한 삶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친한 목사님이 전화 주셔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사역, 목사님 교회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것 같아요.” 좀 더 정확하게는 질질 끌려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앞에서 끌어 주시는 게 느껴지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왜냐고 여쭤봤더니, 이제 5년 만에 교회학교를 하게 된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작년에 교회 화재로 인해 1층 리모델링을 하게 된 것도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냐고 까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속으로는 ‘아 .. 그게 그렇게까지 연결이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신앙고백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번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사역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끌어 가셨구나.’라는 고백을 저 역시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성재 집사님을 통해 커피콩 빵 만드는 기계와 빵에 필요한 식재료들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이제 전도 좀 해라이?’라는, 이런 것도 하라는 말씀처럼 들리기는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주어지는 것들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거라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던가, 우리가 돋보일 만한 것을 찾아서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게으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자리가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바로 겸손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자도자들을, 아들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잠시 맡긴 나라일 뿐임에도 맡겨진 나라로 여기지 않고, 주인 행세를 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고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청지기의 역할을 하지 않고 스스로 주인 행세, 왕 행세를 하며 예언자들을 죽였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마저 죽이게 될 것이라고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33 "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보아라. 어떤 집주인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이 본문은 창세기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1:28)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셨고, 그렇기에 사람은 청지기일 뿐 주인이 될 수 없고, 그저 맡겨진 세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다! 하며 나의 욕망대로 살고자 할 때 탈이 납니다. “34 열매를 거두어들일 철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5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또 하나는 돌로 쳤다. 36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37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38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그들끼리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39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

얼마나 악한 행동입니까? 주인이 있음에도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자 하니 주인의 종들을 죽여야 했고, 주인의 아들마저 죽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의 끝은 멸망이었습니다. “40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성도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삶,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스스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교만은 패망이요, 순종은 생명임을 알아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겸손한 삶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은혜를 모두가 경험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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