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사랑을 남기는 족적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레위기 19,1-2; 베드로전서 1,13-23)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3.22 22:15
ⓒWikimediaCommons

사람들은 누구나 스쳐지나가는 존재로 이 세상에 머물고 있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듯 살아갑니다. 성서의 기자들은 인생을 곧 시드는 풀에 비교하며 그가 이룬 영광을 풀꽃과 같다고 읊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인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식이 사람들의 실생활에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주 짧은 인생이지만 짧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삶을 덧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사람의 삶을 덧없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짧은 삶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들로 채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후회하게 하는 것들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움이나 혐오로 인한 행동들, 욕심 때문에 해를 끼치거나 더 사랑하지 못한 것들,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들, 자신에 대한 과신 때문에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못한 것, 강요되거나 만들어진 삶을 산 것 등이 아닐까요?

물론 이것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내지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적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없다고 해서 완벽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살고 있는지요? 우리 모두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한 것 같이 거룩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거룩은 통상적으로 더러움과 깨끗함의 구별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입니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사 6장). 거룩은 더러움을 드러내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먼 거룩한 성소가 더럽혀지고 이를 깨끗케 하는 것이 제물의 피입니다. 이렇게 해서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거룩하라는 명령은 거룩이 제의적 내지 종교적 차원의 것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일상에서의 삶이 거룩을 훼손시킬 수 있다면, 거룩은 일상 속에서 드러나고 실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전체는 그 명령 이행의 구체적인 예들로서 현재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우리의 삶에서 실천되고 또 확장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크게 세개의 축을 따라 나눠볼 수 있습니다. 부모 경외와 하나님 경외가 한 축을 이루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특히 장애인과 난민/이주민을 비롯해 약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축은 사회적 삶입니다.

사람은 다양한 관계들 속에 존재하고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 관계가 구속과 억압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가 되게 하는 것이 19장 명령들의 목표입니다. 사람들의 사회적 삶이 공정과 상식에 기초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것이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18절과 34절).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은 거룩하다고 하십니다. 가장 인간적인 삶을 하나님은 자기를 닮은 삶으로 인정하십니다. 이런 인간적인 삶을 살면 사람들은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삶을 살면서 일하는 사람이기를 빕니다. 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시고 일한 것에 만족하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많은 곳에서는 공정과 상식 대신 반칙과 불공정이 지배하고 불의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선한 의지를 몰아냅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거룩한 삶이 가능할까요? 부조리한 현실의 무게 때문에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기쁨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사는 것을 방해하거나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살라는 명령을 부담으로 느낄 수도 있고, 여력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같은 현실의 압력을 이기고 거룩하게 살게 할 그 무엇이 있을까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의 노예생활과 해방 경험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겪은 동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거룩하게 살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유대 땅에 나게 하심으로써 우리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신 바로 그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죽음을 향하던 우리 삶의 방향을 생명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불의와 불법과 불공정 아래 신음하던 우리들에게 정의와 공의와 사랑의 법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있으나 하늘을 이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사건들입니다.

이 경험들에 바탕해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명령과 기대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하신 이를 따라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 삶의 표준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가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여기시는 것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본래 사람답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우리는 위에서 보았습니다. 그 평범한 삶은 상대에게서 나를 보고 나처럼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진리를 따라 맑은 영혼으로 사는 사랑의 삶입니다. 그 사랑이 깊어져가는 삶입니다. 이 거룩한 삶을 위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지금은 그 명령에 응답해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그의 아들로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새피조물이란 그의 거룩한 삶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보존하는 것, 지금은 회복시키는 존재입니다. 하니님의 해방을 거룩한 삶으로 이어가는 것이 새피조물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 땅위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정처없이 다닌다기 보다 마음에 심어진 목표를 만날 때까지 떠도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인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그네 삶을 사는 이 땅은 그저 지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열을 쏟고 사랑을 부어주신 곳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 그 삶의 족적 하나 하나가 이 땅을 사랑하는 거룩한 삶의 표현이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그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이기를 빕니다. 하나님과 세상과 사람 가운데서 나를 살게 하는 거룩한 삶이 곧 경건의 내용이요 경건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담은 형식이 곧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 속하지 않은 나그네의 삶을 살기를 빕니다. 하늘 없는 땅 위에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우리입니다.

우리 나그네 삶에 동행하고 나그네 삶을 이끌어가시는 분이 곧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과 소망으로 우리 나그네 삶이 풍성해지고 목표에 이를 때까지 함께 어깨동무하고 가기를 빕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우리의 경건이 우리 사는 곳곳에서 드러나게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