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진행된 고 김용복 목사 1주기 추모행사 ⓒ홍인식

김용복 박사는 이 생을 떠나기 전에 생명학 책을 쓰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생명학방법론서설」을 남겼는데, 아직 인쇄된 저서는 아니다. 이 자료의 2장 “생명전기”의 앞부분에 다음과 같은 고민을 메모했다.

김용복 박사가 “민중”으로부터 “생명”으로 넘어가면서 그의 숨어 있던 새로운 모습이 보다 확실히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그의 Visionary의 모습이다. 비저너리라는 말은 이상주의자, 꿈을 꾸는 자를 말한다. 몽상가라는 의미보다는 이상주의자, 꿈꾸는 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가 몽상가가 아닌 것은 그의 학자적인 면모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용복 박사를 A Visionary and scholar(꿈꾸는 학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Dream Boy라고 하는 그의 별명도 비저너리와 연결된다. Zoegraphy(생명전기)는 이러한 비저너리의 입장에서 필요한 언어였다. 그는 조에그라피를 그의 생명학(zoesophia)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것은 생명이 주체이고, 모든 것들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동서양의 모든 생명사상들도 이 테두리 안에서 연결될 수 있었다.

조에그라피는 보편적 이야기universal story이다. 모든 것들이 이 안에 들어올 수 있고 융합(convergence)될 수 있었다. 조에그라피는 인간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생명이 주체가 된다. 그는 조에그라피가 가져다 주는 비전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조에그라피 안의 모든 것을 생명으로 꿰뚫을 수 있었다. 생명이 모든 것의 중심이며, 주체이며, 미래이며, 조에그라피는 이것을 떠받쳐준다.

그런데 비저너리에게 특징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비현실적이며, 꿈을 쫓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김용복 박사만큼 어렵게 살았던 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본다. 악마와 천사. 삶과 죽음,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구분한다. 미국은 마왕(Leviathan)이 된다.

그런데 그는 비저너리일 뿐 아니라 학자였다. 그의 학자적인 면은 그가 데카르트와 칸트가 가지는 주객의 분리에 대한 비판에 있다. 사물(뭇생명)들이 객체가 되어 인식의 대상이 되고 조작의 대상이 된다. 그의 민중의 사회전기(socio-biography)는 민중을 객체화하는 것을 막고 주체화하자는 개념이었다. 조에그라피는 모든 생명을 주체화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였다.

A visionary scholar라는 명칭이 그의 학자적인 글들의 여러 모순들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생명이 자기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거나 나아간다 말한다. 생명은 죽음의 환경을 극복해 나간다. 그는 생명을 주체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그 생명은 무엇인가? 그는 생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생명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역사 안에서의 민중과 개인들의 결단이 없다.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단이 없다. 김용복의 논리 속에는 이러한 결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 그럼에도 자세히 보면, 이러한 결단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지는 않다. 김용복은 메시아적 정치냐 정치적 메시아니즘이냐에서 전자를 선택했고, 종의 길이냐 주인의 길이냐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융합을 이루므로 결단이 없이 자연스럽게 진화적으로 진행되어 나아가는 구조를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역사는 융합 혹은 convergence보다는 국면국면 마다 선택하고 결단하기 때문에 궤적이 정반대가 될 수 있고, 다르게 그려질 수도 있다.

결단, 단, 이러한 모든 것은 십자가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정치적인 결단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나, 역사도 이러한 두 개 중 하나를, 즉 Yes와 No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함으로 결정된다. Either Or가 필요할 때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Both And를 너무 많이 말해왔다. 이제 둘 중에 하나를 예스로 결단할 필요가 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생명의 신학이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정치신학이어야 한다.

민중신학자인 김용복의 메시아 정치는 십자가 정치이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결단의 정치이었다. 그러나 신학(theology)에서 생명학(sophia)으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역사와 정치로부터 생명으로 넘어가면서, 십자가의 결단의 부분이 약화되거나 소홀해 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이나 결단은 메시아 정치의 한 면이다. 그런데 그에게 메시아 정치의 의미를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메시아 정치를 모든 물질, 만물, 생명에까지 확대했다. 인간과 물질 사이에도 평등이 있고 “생명의 잔치”에 공동 참여가 가능해야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피조세계, 물질계의 파괴의 피해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오고, 더 심하게 온다.

기후변화는 온 인류를 죽음에 몰아넣지만, 그중에서 민중이 먼저 죽어간다. 민중은 잠수함에서 생명이 살 수 있을까를 먼저 보여주는 토끼와 같은 존재이다. 희박한 산소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존재가 토끼이며, 생명의 위협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고 당하는 존재가 민중입니다. 민중은 탄광에서의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이다. 토끼나 카나리아가 가장 먼저 죽음의 조건에 반응한다.

2022여름에 일어났던 파키스탄의 엄청난 홍수피해가 그 예인데, 국토의 3분의 1일 물에 잠겼고 1600명 이상이 죽었다. 기후변화로 북쪽 산악지대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그 위에 엄청난 비가 내려서 큰 홍수가 되었다. 오늘날의 생태위기나 기아나 가난은 부유한 나라와 부유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라들은 이들처럼 탄소를 많이 배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가난한 민중이 치른다.

민중과 자연세계는 동맹관계여야 한다. 민중이 자연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생태위기의 시대의 민중적 메시아정치의 핵심이다. 「생명학방법론서설」의 8장(“생명학과 민중”)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생명학과 민중신학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가 민중 주체론 대신에 생명 주체론으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 것은 그가 생명의 남용, 생명 파괴의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저항담론, 대안담론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생명이 객체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고 했다. 이것이 그의 핵심논지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생명 주체론은 오늘의 문명이 생명을 대상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대 담론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파했다.

이어서, 그는 “‘생명 주체론’은 생명체를 객체화하고 파편화(Fragmentation)하여 조작(Manipulation)하는 근대과학 기술체제(Technocracy)에 대한 대응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 산업문명의 우주관, 생명관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데, 그 이유는 생명과 사물을 객관화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학이 잘못된 우주관과 생명관을 대체해야 한다고 믿었고 생명학 정립을 위해 기쁘게 혼신을 다했다.

권진관(죽재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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