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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관계 청산과 신뢰 회복,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목소리한국전쟁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2)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 승인 2023.05.31 02:40
▲ 6.25전쟁으로 인해 깨어진 관계 회복을 위해 교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서로 간에 원수 관계로 전락한 현실을 극복하도록 용서를 이야기 해야 한다. ⓒGetty Images

남북 간에 원수관계를 청산하도록 하라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을 비극의 한 가운데로 이끈 주요 원인이었다. 북한지역에서 실시했던 토지개혁의 과정에서 재산과 토지를 강탈당하고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해야 했던 지주 또는 유산계급의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에 대한 탄압, 특히 북한의 무신론적인 정권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한 지역으로 탈출했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서조차 누렸던 삶의 조건을 대부분 상실해야 했고,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전혀 낯선 곳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했다. 38 ‘따라지’라고 지칭되던 그들은 남한사회에 정착하여 억척같이 살면서 어느 정도 삶의 조건과 지위를 획득했지만, 표류하는 삶 속에서 경험했을 그들의 상실감과 분노, 고난의 여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한의 정부수립을 위한 총선거 직전의 제주 4.3 사건과 그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 군대를 파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여순사건 등의 와중에서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죽어야 했다.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들 위주로 영락교회에서 조직되었던 서북청년단과 국가 공권력이었던 경찰과 군인이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에 파견되어 사건에 직접 연루되지 않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노인과 아녀자들까지 폭도 내지는 빨갱이로 몰아붙여서 무자비하게 학살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동조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 아래 보도연맹에 속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북한군이 진주했을 때 어쩔 수 없이 가담했거나 협력했던 부역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미군의 무차별 포사격과 초토화 작전의 비행기 폭격은 남북한의 수많은 주민을 위험에 빠뜨렸고, 죽음으로 이끌었다. 이때 죽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남은 가족들 역시 ‘연좌제’로 인해서 수십 년 동안 쥐 죽은 듯이 살며 고난의 짐을 감수해야 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남북한 전체의 상처는 아직도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 그동안 역사적 진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었고, 가해자들의 진정 어린 사죄와 상응한 책임이 없었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이 무시되거나 유보되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냉전 속에서 남북 정권들은 전쟁 가해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적으로 떠넘겼고, 상대를 원수나 괴뢰라 지칭하며 전쟁의 피해를 오롯이 자신에게만 한정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과연 이성적이고 신사적으로 진행되는 전쟁이 있었던가. 전쟁이라는 것은 언제나 몰이성적이고 잔인하며 돌이킬 수 없는 총체적인 폭력을 동반한다. 전쟁이라는 총체적인 폭력 속에서 한쪽만의 폭력과 한쪽만의 피해는 있을 수 없다. 모두가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인 것이 전쟁의 현실이다.

이처럼 남북한이 서로 원수 관계로 머물러 있는 한, 화해를 향해서 한 발자국도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1세대는 적대적 감정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전쟁 이후 태어난 2세대는 반공교육을 강요받아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에 선진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난 3세대는 적대감정과 왜곡된 역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들 3세대 젊은이들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객관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고, 또한 이들에게 평화통일은 새로운 기회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마태복음 5:38-48). 예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극악한 고난을 감수하심으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셨고, 이웃과의 화해로 나아가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아직 생존하는 전쟁 1세대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용서하는 일과 이산가족들의 상봉과 함께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일, 남북한 모든 세대가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화해를 이루는 일 등에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남북 간에 신뢰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라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는 국가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무기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무기라고 말하고, 자신의 무기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무기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군사훈련은 공격훈련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훈련은 방어훈련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자기를 위협하는 위험한 집단이라고 말하고, 자기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전혀 위험할 것 없는 선의의 집단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서 언제나 몰두한다고 말하고, 자기는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 언제나 노력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자기를 천사화하는 것이 적대적인 관계의 국가들이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삶의 행태이다. 그러나 상대방과 자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불신의 관계에 머물러 있는 한, 적대적인 관계의 국가들은 서로 신뢰하는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가 없다.

신뢰관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기 전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자신이 먼저 실행하고자 할 때 시작된다. 자신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기만 하면, 영원한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황금률’로 지칭되는 이 말씀을 오해할 때가 종종 있다.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데, 남이 우리를 대접하지 않을 때, 우리가 먼저 남을 대접하면, 남도 언젠가는 우리를 대접할 것이라는 오해가 그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바로 그 방식과 그 내용으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남에게 돌려받을 대접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시 민주정권의 햇볕정책은 정경분리(政經分離)와 선공후득(先供後得)의 기조 속에서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은 휴전선 접경지대에 있던 북한군 병영과 중화기 무기들을 북진하도록 함으로써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시켰고, 국가의 안전을 증대하는데 기여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수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은 남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남한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협력하며 보수와 진보 상관없이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효과적으로 실행했다. 2001년 9.11 테러에 직면한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국제관계가 불편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남북관계만은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핵개방 3000’을 구상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을 주장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시 보수정권은 북한이 비핵화를 비롯한 신뢰할만한 조건을 먼저 이행할 때, 북한의 경제적인 필요나 정치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준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경색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과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사격 사건과 목함지뢰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남북관계는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남북관계의 소중한 연결고리로 작동하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운영을 남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중지했던 것은 남북관계의 돌이키기 어려운 패착(敗着)이었다. 2022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북정책으로 ‘담대한 구상’을 내놓았는데, 이것 역시 이전의 보수정권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맥락에 있다. 

보수정권의 주장처럼 신뢰할만한 행위를 북한이 먼저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신뢰의 주도권을 북한에게 떠넘기는 것이 되고, 북한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실행해야 할 책임을 방기(放棄)하는 것이 된다. 지금 남한은 세계에서 경제력 10위의 국가이고, 군사력은 6위의 국가이다. 우리와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은 세계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강대국이다. 동맹관계 속의 한국과 미국이 유사시 군사력과 경제력과 정치력을 결합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두려워서 북한은 핵무장을 강행했는데, 북한을 향해서 당장 비핵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오만이고 위협이며 폭력이다.

우리 남한이든 동맹관계의 미국이든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한반도의 평화 환경을 구축하는 가운데 서로 신뢰를 키우면서 단계적인 비핵화를 논의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신뢰를 증진하는 것이 이미 입증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운영을 재개할 것을 제안해야 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된 질서, 신뢰관계의 구축을 위해서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이 각각 수교할 것을 중재해야 한다. 그리고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4자 회담(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나 6자 회담(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또는 실제적인 양자 회담(남한과 북한)을 개최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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