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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중에 있기도 전에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예레미야 1:4-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6.12 00:50
▲ Michelangelo, 「Jeremiah」 (circa 1508-1512)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외부의 조건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평안이 이미 내 안에 주어졌음을 알고 선택함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멸망이나 절망이 아니라 구원이고 희망입니다. 믿으십니까? 내 안에 완전한 평안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이 말씀들을 신뢰한다면 저와 성도님들의 삶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아니, 달라져야만 합니다.

며칠 전 한 여성 유투버가 자신의 영상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삶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게 되었다.” 이런 유투버의 태도는 저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 이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살 수 있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영화나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조마조마하지 않고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것입니다. 결말을 미리 알고 보면 그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의 끝은 구원이고 영원한 생명이며, 희망입니다. 결과가 이렇게 정해져 있다면, 성도는 삶의 과정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떤 태도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에서 믿음의 반대말은 두려움과 염려라고 말입니다. 두려움과 염려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염려가 닥쳐와도 곧 두려움과 염려를 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알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삶의 결과는 세상 적인 가치로서의 잘 됨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목적이 결국 성취될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성도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삶의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평안하십시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께서 나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고 이루어가심을 믿으십시오! 이 약속의 말씀들을 신뢰하신다면 저와 성도님들의 삶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이런 삶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총회선교주일로 지킵니다. ‘선교’는 성도의 당연한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선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전해 제자로 삼고, 제자들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 이런 선교를 성도는 말과 행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자신이 직접 본이 되셔서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9:35-38,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어떤 선교를 해야 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온갖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고생에 지쳐 기운이 빠진 이들, 삶의 길을 잃은 이들,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긍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명을 감당할 이들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더 많은 일꾼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로 이 일꾼들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며, 온갖 질병과 아픔 가운데 있는 이들을 치유하는 역할이 성도에게 주어졌습니다.

선교라고 할 때는 보통 지금까지 들려드린 이런 개인적인 도움에 관해 생각하게 됩니다.(사실은 이런 본문들이 개인적인 일만을 말하지는 않음에도) 하지만 선교는 그렇게 작은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저와 성도님들이 더 확장된 선교의 의미를 깨닫고 행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4-5절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즉,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했고 거룩하게 구별해서 예언자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예레미야를 인도하십니다. 어떠한 목적 때문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시고 예언자로 세우셨을까요? 얼마나 중요한 일에 예레미야를 사용하시려고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계획하셨을까요?

10절을 읽겠습니다.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그것들을 뽑고, 허물고, 멸망시키고, 파괴한 다음 다시 세우고, 심기 위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시고 부르셨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사명이 너무 막중하기에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예레미야는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자신은 예언자가 되기에 어리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말을 잘 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런 일을 자신은 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7-9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할 수 없다는 염려, 자신이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염려는 넣어두라고 하십니다.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기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예레미야에게 맡기신 일, 예레미야를 통해 계획하신 일이 험난한 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앞에 두려운 일들이 닥치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18-19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를, 튼튼하게 방비된 성읍과 쇠기둥과 놋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나라의 모든 사람, 곧 유다의 왕들과 관리들에게 맞서고, 제사장들에게 맞서고, 이 땅의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보호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과 맞서고, 관리들과 맞서고, 제사장들과 맞서고, 심지어 백성들과도 맞서야 할 운명입니다. 이렇게 맞서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직접 그들이 너에게 덤벼들 것이라고도 하십니다.

유다의 왕, 관리, 제사장, 백성들이 어떤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세우시고 이들에게 파송하셨습니까?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으면 여러 가지 죄명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죄명 가운데 성도님들에게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들입니다.

예레미야 2:33-35, “너는 연애할 남자를 호리는 데 능숙하다. 경험 많은 창녀도 너에게 와서 한 수 더 배운다. 너의 치맛자락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죄 없는 피가 묻어 있다. 그들이 담을 뚫고 들어오다가 너에게 붙잡힌 것도 아닌데, 너는 그들을 죽이고서도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하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렇게 죄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의 죄 없는 피를 흘리게 하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는 이들임에도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들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예레미야 5:26-31 “나의 백성 가운데는 흉악한 사람들이 있어서, 마치 새 잡는 사냥꾼처럼, 허리를 굽히고 숨어 엎드리고, 수많은 곳에 덫을 놓아, 사람을 잡는다. 조롱에 새를 가득히 잡아넣듯이, 그들은 남을 속여서 빼앗은 재물로 자기들의 집을 가득 채워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세도를 부리고,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살에서 윤기가 돈다. 악한 짓은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고, 자기들의 잇속만 채운다. 고아의 억울한 사정을 올바르게 재판하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 주는 공정한 판결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러한 백성에게 내가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 이 나라에서는, 놀랍고도 끔찍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남을 속여 부를 쌓고, 자기들의 잇속만 챙기고, 고아의 억울한 사정,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고도 어떻게 내가 너희들을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이 모든 불의를 보고도 왕, 관리, 예언자, 제사장 등은 거짓을 말하며 백성들도 오히려 이런 거짓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이런 불의한 일을 바로잡는 것, 불의한 나라, 위정자, 백성을 바로 잡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선교의 한 측면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교의 의미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에 미쳐야 함을 알게 됩니다. 정의를 세우는 일은 당연히 많은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반드시 성도와 교회 공동체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얼마 전 교단에서는 시국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서울 시청 광장에서 시작해서 서울역까지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간 중에 가장 많은 목회자가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뜻을 알리는 시간이었다고 선배 목사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국기도회에서 한 노동자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발언하신 건설노동자분은 얼마 전 분신하여 돌아가신 건설노동자의 동료셨습니다. ‘분신하신 건설노동자 열사는 정당한 노조 활동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부르짖었을 뿐이었는데, 탄압으로 인해 분신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알리고 탄압하는 이들의 부당함을 알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런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조롱하고, 거짓 정보로 날조하며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과도한 노조 혐오와 탄압에 대해 ‘아니오’라고 외치고, 부당한 재판, 기울어진 추를 바로잡는 것은 오늘날 성도의 선교적 과제이고, 교회 공동체 그리고 교단이 가야 할 올바른 선교적 방향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신의 동족을 향해 불의함과 부당함에 대해 선포했을 때 왕, 관료, 제사장,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어떻게 했습니까? 예레미야를 협박하고, 괴롭혔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다수였기 때문이고, 그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핍박했고, 착취했고, 그들의 권력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며 기울어진 추를 이용해 법정에서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옳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들이 틀렸다. 너희들이 틀렸기에 심판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외로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를 마음에 새기고 선포했고, 그들에게 저항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백성들을 심판하지 않으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교는 개인의 구원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사회의 구원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초도제일교회는 지난 5년간 열심히 선교했습니다. 이웃, 교회, 지역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최선을 다해 나누었고 앞으로도 나눌 것입니다. 이런 선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축복하셨는지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선교 사명에 응답하는 우리 초도제일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원까지도 기도하며 행동함으로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의 친구와 연대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레미야를 태어나기도 전부터 택하시고 예언자로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이 땅의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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