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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톨릭의 사제와 개신교의 목사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오해 (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6.20 01:20
▲ 가톨릭 성직자 안수식에서 사제들이 안수 대상자에게 손을 얹고 있다. ⓒWikipedia

개신교 신학자로서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의 오해’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주제(예를 들면 마리아 신심, 교황제도와 교황 무오설, 성찬례, 의화론, 독신제 등)들도 있고, 또 그에 대하여 어느 정도 할 말이 있지만,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오해’는 오히려 가톨릭 신학자가 가톨릭 내부의 경험을 근거로 말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시각과 평가, 혹은 그 반대 방향에서의 시각과 평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관계는 ‘오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지금도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분명한 ‘입장의 차이’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주제에 대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개신교가 다양한 교파전통을 지니고 있고, 각 교파마다의 가톨릭에 대한 이해 역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1) 이런 교파적 전통의 다양성과 차이는 신학자만이 아니라 이른바 ‘평신도’들의 의식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시각에서 주제에 접근할 것인지도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필자는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신학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오해들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자가 기초 자료로 사용한 책은 박도식 신부가 쓴 《하나인 교회: 천주교와 개신교》(2)이다. 이 책은 저자인 박도식 신부와 송영애라는 개신교 직장 여성과의 대화형식을 빌려, 개신교 신자가 가톨릭에 대해서 갖는 몰이해와 오해를 주제별로 해명하면서 포교론적 관심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읽으면 우리는 이 책에서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오해가 무엇인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가톨릭은 마리아 교회인가?’, ‘가톨릭은 우상을 숭배하는가?’, ‘소위 면죄부 사건’, ‘소위 종교개혁의 문제’, ‘독신제도’, ‘연옥교리’ 등 학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주제는 물론, ‘교황의 수위권’, ‘성경해석’, ‘미사성제와 성체 성사’, ‘교회관’ 등 신학적인 주제들이 등장하는데, 필자는 신학적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오해일 수 있는 제한된 몇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하려고 한다. 입장의 차이는 토론을 통해서 극복될 수 없겠지만, 오해는 대화를 통한 상호 이해와 배움으로 풀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교와 사제

가톨릭이 개신교 교역자를 사제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않는지 잘 모르겠다. 사제로 인정한다면 이런 의문은 정말 오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예배에 대한 이해(예배를 제사로 이해할 것인지 아닌지 하는 논란)와 주교직에 대한 이해(3)의 차이가 놓여있다고 보인다.

가톨릭 사제(4)들이 그 교역과 생활로 추구하는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그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자유로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온 삶으로 이를 드러내는 데’ 있고, 따라서 ‘사제는 기도와 경배에 전념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며, 다른 성사들을 집전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그 밖의 교역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거룩한 삶에서 사람들을 진보’시키는데 있다면(5), 개신교 교역자의 목적과 교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신교 교역자도 안수례를 받은 직제이며, ‘교직안수 행위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및 사도적 증언과 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또 진정한 교직안수자요 은사를 주시는 이는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개신교도 이해하기 때문이다.(6)

다른 점이 있다면 가톨릭 사제직이 ‘주교품’과 위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교직은 베드로와 교황의 수위권, 영속성, 교도권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온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는, 사도들의 후계자’이다.(7) 주교는 ‘하느님의 대리로서 양 떼를 다스리는 목자들이 되고, 교리의 스승, 거룩한 예배의 사제, 통치의 봉사자’이다.

‘신적 제도에 따라 사도들의 자리를 계승한’ 주교들은 ‘교회의 목자이므로, 주교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주교를 배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루가 10,16 참조)’.(8) 신부나 부제 같은 교역자들이 주교품과 위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신부나 부제는 ‘대사제직의 정점에는 이르지 못하고 권력의 행사에서 주교들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9)

성공회와 감리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는 주교직을 갖고 있지 않은 데, 사제직이 주교직과의 위계적 결합에 의해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개신교 교역자는 사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주교제도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있는 교회라고 해서 ‘사도적 신앙과 예배 및 사도적 선교의 연속성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교(감독)의 계승은 ‘복음의 전달 및 공동체 삶의 전달과 더불어 교회의 사도적 전통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10)

직제의 상호이해를 통한 교회일치를 모색한 ‘BEM 문서’는 ‘감독제도의 계승을 보전해 온 교회들은 감독제도의 계승을 유지해 오지 않은 교회들 안에 존재하고 있는 안수 받은 직제의 사도적 내용과 또한 이러한 교회들 안에도 감독의 사역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할 것을 제안하면서, 동시에 감독 제도를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사도적 신앙과 사명을 성실히 지속하고 있는 교회들은 ‘감독제도의 계승에 대한 징표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11)

가톨릭의 사제와 미사의 연결

가톨릭은 미사를 제사로 이해한다. 신부를 사제라고 하는 이유가 제사로서의 미사를 집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바쳐진 유일무이한 완전한 제사를 기념하는 종교 의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밖에 없었던 가장 완전한 제사, 이것으로 인해서 인류가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화해되면서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 십자가상의 제사, 이것을 재현해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를 받는 길이 곧 미사성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 제사의 주역들을 제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톨릭 신부들은 단순한 설교자만이 아니라 제단에서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입니다.’(12)

트렌트 공의회가 ‘제사로서의 미사’를 교의로 선포한 이래, 가톨릭 신학은 미사의 제사적 성격을 증명하고 종교개혁자들에게 양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많은 이론을 전개했고, 그 중의 더러는 매우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으나, 바울로 6세의 회칙 ‘미스테리움 피데이’ 이후 가톨릭의 공식적인 표현은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마틴 루터가 ‘제사로서의 미사’를 비판한 것은 미사를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하여 반복되는 새로운 제사이며 거기서 자동적으로 불가항력적인 효과가 나온다’는 미숙한 관념이었으며, 이런 생각은 오늘날 가톨릭의 공식적인 가르침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미사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며,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면서 하느님께로 나아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1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가르침과 사도직과 예배에 있어서 세례 받은 평신도의 능동적인 역할에 대해 과거 몇 세기보다 더 많이 강조하기 시작했다.’(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직을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 ‘직무, 또는 교계 사제직’으로 나누면서, 이 두 사제직은 ‘정도만이 아니라 본질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

직무 사제는 참으로 그가 지닌 거룩한 힘으로 사제다운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며, 성찬의 희생 제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거행하고 온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 성사를 받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제직을 수행한다.’고 규정한다.(15)

이것은 일반 사제직과 성직 사제직에 대한 새로운 강조점을 부각시키면서, 가톨릭 교회가 약간의 화해를 시도한 것이지만, 여전히 사제직이란 말이 성직자의 성례전적인 권한과 사역을 뜻하며, 두 사제직을 지위의 차이라기보다는 직분의 차이로 받아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직으로서의 사제직과 일반 사제직 사이의 엄밀한 관계정립은 여전히 에큐메니칼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16)

그러나 성찬에 대한 기념적인 이해와 성례전적인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대한 양자의 복종 등을 중심으로 상호접근이 이루어 졌으며, 전통적으로 말씀 중심의 개신교 예배와 성사중심의 가톨릭 미사 사이에 상호접근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신교는 성만찬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면서 보다 빈번하게 실천하는 경향이 있고, 가톨릭 미사에서 말씀선포의 비중도 다시 평가되는 것이 그것이다. 개신교 교역자 가운데는 예배의 희생제사적 성격과 무관하게 자신의 직분을 중재자로서의 사제 또는 제사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을 사제로 이해하지는 않지만, 예배의 제사적 성격(하느님께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바치는 행위)을 수용함으로써 사제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BEM 문서도 이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매우 화해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안수 받은 직제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라고 불릴만한 이유는 그들이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중보의 기도를 통하여, 또한 목자가 되어 공동체를 인도함으로써, 성도의 고귀하며 예언자적인 제사장직을 강건하게 하고 또 강화하는 특별한 제사장의 봉사를 수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17)

미주

(1) 이른바 종교개혁 우파라고 불리는 루터교와 성공회는 가톨릭교회의 기본교리는 보존하면서, 교회법이나 조직을 개혁했다면, 종교개혁 좌파(츠빙글리, 재세례파)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성례 대부분을 거부했다. 비교적 중간입장에 있는 개혁파(칼빈주의자)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관습을 많이 손질했으나 옛 관례도 상당수 유지했다. 참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사전(I)」(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2), 444-445.
(2) 박도식, 『하나인 교회: 천주교와 개신교』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4, 개정초판 11쇄). 1980년에 초판 1쇄가 나오고, 1996년에 개정초판 1쇄가, 그 후 2004년에 개정초판 11쇄가 출간된 것은 이 책에 대한 관심도가 96년 이후 크게 높아진 것을 반영한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따르면, ‘주님 안에서 모든 신자는 거룩하고 왕다운 사제직을 수행’한다고 하면서도, ‘사제 직무는 주교품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세우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다스리시는 권위에 참여 한다’는 점에서 사제를 신자와 구별하고 있다. 그래서 ‘사제직은 그리스도교 입교성사들을 전제하지만 개별성사로 수여’되며, ‘이 성사로써 사제는 성령의 도유로 특별한 인호가 새겨지고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동화되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개정판, 2002), 576-577 참조.
(4) 사제란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도록 선택된 사람(벧전 2,4-10; 계시록 1,6; 5,10; 20,6 등 참조)으로서 넓은 의미에서 평신도들의 일반 사제직과 성직자들의 직무 사제직의 구별이 없다. 참조: 조규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에 관한 고찰”, 『가톨릭 신학과 사상』제50호(2004/겨울), 34.
(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개정판, 2002), 578 참조.
(6) 세계교회협의회, 『BEM(세례, 성만찬, 직제) 문서』, 이형기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66.
(7) Ibid., 104.
(8) Ibid., 107.
(9) Ibid., 121.
(10) Ibid., 64-65 참조
(11) Ibid., 70-71 참조.
(12) 박도식, 『하나인 교회: 천주교와 개신교』, 90. 
(13) 서강대학교신학연구소, 한국신학연구소, 「새로운 공동신앙고백서 - 하나인 믿음」(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79), 556-557 참조.
(14) David N. Power, “사제직”,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사전(I)」(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2), 612.
(1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개정판, 2002), 93.
(16) 종교개혁 이후, 에제키엘 예언서 34장의 ‘목자’라는 개념이 직무 사제직과 연결되면서 구별이 첨예화되었다. 참조: 조규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에 관한 고찰”,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50호(2004/겨울), 34.
(17) 세계교회협의회, 『BEM(세례, 성만찬, 직제) 문서』, 54.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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