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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이 없다?”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오해 (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6.27 01:11
▲ Peter Paul Rubens, 「St. Peter the Apostle」 (1611) ⓒPublic Domain

박도식 신부는 신부의 사죄권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개신교는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이 없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2천 년 전통의 교회로서 바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류 구원의 사명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저는 인간적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가톨릭의 한 신부라는 점에서 저에게 부여된 사제로서의 신권은 곧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소급되고 있음을 신부로서 긍지와 자부를 갖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다른 개신교에서는 없는 성품성사가 있기에 가톨릭의 성직자들은 주어진 권한 안에서 신권을 이행합니다.”(1)

개신교는 그리스도와 연결이 끊어진 교회라는 표징을 박도식 신부는 ‘신권’의 하나인 ‘사죄권’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 ‘고해성사’가 없다는데서 찾는다. 개신교 교역자는 ‘신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사죄권이 없고’, ‘죄의 사함도 고작 하느님 앞에서의 개인적인 참회와 관계’되어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죄를 더 쉽게 지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다.(2) 사죄의 주관적 확신보다 사죄의 객관적 확증을 강조하는 이런 입장은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이것이 곧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의 유무에서 오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없다.

박도식 신부는 개신교가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형제’라고 표현하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로마의 사도좌에서 갈라져 나간 교회들’ 또는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표현한다.(3) 공의회 문헌은 이들 ‘갈라진 형제들’과 가톨릭교회 사이에는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특성의 차이만이 아니라, 특히 계시 진리의 해석에서 매우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계시 진리의 해석에서 오는 중대한 차이는 세례성사와 성품성사 등 성사와 관계된 것이다.

가톨릭은 갈라진 교회 공동체들이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완전한 일치를 가톨릭과 함께 이루지 못하고 또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 믿고 있지만, 그래도 가톨릭에서 갈라진 교회들이 ‘거룩한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이 만찬이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상징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개신교와 가톨릭의 일치를 위한 대화가 ‘주님의 만찬, 성사들, 예배, 교회의 직무에 대한 교리’ 등 신학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4)

가톨릭이 갈라진 형제들도 ‘세례 때에 믿음으로 의화 되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마땅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가톨릭교회의 자녀들은 그들을 당연히 주님 안의 한 형제로 인정’하면서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끌어 안는다’고 하지만, 가톨릭은 여전히 갈라진 형제들을 ‘완전하지 않고’, ‘결함이 있는’ 형제로 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가톨릭교회를 ‘구원의 보편적 수단’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갈라진 형제들이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될 때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 수단의 힘이 가톨릭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올’ 때이다.(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의 이러한 ‘큰형의식’, ‘장자의식’은 일치를 위한 신학적 대화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인간 존엄성의 올바른 존중, 평화증진, 복음의 사회적용, 학문과 예술의 진보, 기아와 재난, 문맹과 빈곤, 주택난이나 불공정한 부의 분배 등 현대의 곤경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한 상호협력이라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과제를 중심으로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6)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치를 위한 신학적 대화는 더 깊이 있게 진전되었으며, 독일 루터교회와 가톨릭이 ‘의인론’(의화론)을 중심으로 신학적 화해에 이른 것이 대표적인 표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떨어져 나갔느냐’, ‘쫓겨났느냐’가 아니다.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져 나갔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신비주의가 가장 격렬하게 억압을 받은 역사는 그리스도와의 직접적 관계성을 체험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사제의 중재자 혹은 대리인 역할, 교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교회분열에는 신학적인 이유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분열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정당하게 함께 연구함으로써 일치를 위한 대화의 기초를 놓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신교가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개혁 정신, 곧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서’라는 주장을 근거로 한다. 사제나 교회의 중재적 역할 없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굳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예수의 제자들과의 연관성과 사도적 계승을 근거로 개신교가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미주

(1) 박도식, 『하나인 교회: 천주교와 개신교』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4, 개정초판 11쇄), 32.
(2) Ibid., 36-37, 42 참조.
(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개정판, 2002), 381-382 참조.
(4) Ibid., 383 참조.
(5) Ibid., 367-368 참조.
(6) Ibid., 37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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