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백성과 국가로써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전은 하나님의 고집이다. ⓒGetty Images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복잡함은 선택이나 행동이나 관계를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람이 꿈꾸는 세상은 언제나 소박합니다. 그래서 그 꿈의 성취를 세상은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서가 제시하는 꿈도 단순한 삶입니다. 마치 복잡함을 거부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세계가 지금 보다야 규모도 작고 훨씬 덜 복잡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세상은 그때에도 나름 여전히 복잡했고, 성서는 그 복잡한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꿉니다. 그 아름다운 꿈이 또한 꿈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은 그 꿈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자신이 그 나라 건설의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동력에 의거하여 복잡한 세상에서 꿈을 현실로 만들고 그 세상을 보다 단순하고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그 세상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오심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하나님은 사람이 이룬 것을 출발점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예레미야가 위의 말을 했을 때는 요시야 사후입니다. 요시야를 패퇴시킨 이집트의 느고가 이스라엘의 내정에 개입하여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운 때입니다. 느고가 이스라엘에 부과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여호야김은 백성에게 거두어 그에게 바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외세로 고통을 겪던 시절에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

외세 때문에 극도로 불안정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이 명령이 시대에 적합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대략 10여년 후에 상당수 이스라엘이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과 함께 1차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으니, 하나님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나중에 시드기야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바벨론에게 포위되었을 때 노예를 해방시킨 것도 그 명령이 위기 극복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정의와 공의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를 개념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규정하는데 열심을 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그것은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착취당하는 자를 억압자들의 손에서 건져내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지 말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라!

얼핏 보면 단순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몇몇 다른 본문들을 보면 이 명령들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10,1-2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미가서 2,1-2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아모스서 2,6b-7a
그들은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이 본문들은 버려야 행위들이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기도 함을 보여줍니다. 착취, 억압, 강탈, 폭력, 학대 등 권력자들의 온갖 불의한 행위들이 법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제도가 남용되는 현실입니다. 이를 악법들이 제정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의 명령들 역시 이와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고발보다는 오래된 명령들을 새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셈입니다. 이로써 그는 개인적 회개와 아울러 공동체적, 사회적, 국가적 개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신분과 계급의 철폐가 아니어도 적어도 그에 의한 착취가 멈취져야 하고 이방인을 포함한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중지되어야 하고 권력의 횡포에 의해 억울하게 죽는 자들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장치들입니다. 이것들이 비단 이스라엘에게만 필요한 것들입니까?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목격되고 있는 그와 같은 악행들을 막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이 명령들이 반드시 실행되도록 상과 벌이 제시됩니다. 이와 닮은 형식과 내용이 이사야 1장에서도 발견됩니다. 거기서는 선과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토라)으로 규정되고 그 내용은 여기의 명령들과 유사합니다.

정의와 공의는 약자를 존중하고 그의 인권을 세움으로써 억울함이 없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법과 명령 앞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마태복음서 24,1-14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은 1-3a절과 3b-14절 두 단락으로 나눠집니다. 3b-14절도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된 4-13절과 세계의 끝과 관련된 14절로 나눠집니다. 이러한 구분은 본래 15-28절까지 함께 읽어야 그 의미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14절까지만 읽고자 합니다.

14절은 종말을 위한 선교의 근거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지만, 그렇다고 다르게 읽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이 파괴되는 재난과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에 있을 재난 사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난에 이르는 이유가 예레미야서에서처럼 정의와 공의의 부재일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 곧  정의와 공의로 돌이키라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회개운동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탓입니다.

예수께서는 사탄에게 시험받으시고 얼마후 가버나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선포하기 시작하셨고(4,12-17), 마태는 이에 대해 천국 복음이란 말을 사용합니다(4,23). 세상이 끝에 이르기 전에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서 선포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고, 그때 끝이 올 것’입니다(14절). 온세상에서 선포되는 천국복음은 ‘천국이 가까왔다’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왔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처음에 회개가 요구했던 정의와 공의가 완성되는 때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정의와 공의 실천 명령은 불이행으로 재난을 결과했고 마태복음에서 회개 곧 정의와 공의 실천 요구는 회개하지 않는 세상에 재난을 결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과 거짓 그리스도의 유혹과 박해를 끝까지 견뎌내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의 복음이 실현되었음을 온 세상에서 선포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정의와 공의의 실현 의지를 굽히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그 뜻을 거부하고 거짓과 불의를 따르기 때문에 재난이 초래된다 해도 하나님은 결코 그 뜻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가 실천됨으로써 실현되는 평화의 세상을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과 나누려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평화, 우리의 미래입니다. 하나님의 그 뜻에 응답하며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어떤 위협이나 유혹 또는 거짓에 굴하지 않고 땅 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