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담, 「부활」

이번 글에서는 민중신학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민중 메시아론에 관해 예수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수의 민중은 누구였는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예수의 민중이 적어도 소작농이거나 토지를 빼앗기고 자신의 장소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복음 6장에 적시된 가난한 자들, 주린 자들, 지금 우는 자들은 농민이거나 자립적인 농민의 자리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는 분명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이를 더욱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 가난이 마음의 가난으로, 주린 자들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각색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온유한 자들이 받을 상이 ‘땅’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왜 많은 보상 중에서 땅을 언급한 것일까? 이유는 명백하다. 그들에게 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왜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왜 주리고 쭈그려 앉아서 울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토지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었고 자기의 장소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부재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 대한 예수의 많은 비유들은 그러한 민중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민중에 대한 논쟁

안병무는 예수가 단지 그들의 편에 선 것만이 아니라 이들에게서만 구원(하나님 나라)이 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보고 있다. 가진 자들에게도 저들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구원의 길은 이들을 통해서만 열린다고 믿었다고 보고 있다.(1) 바로 민중들의 절규가 우리 가슴에 사무쳐서 자기 영역에 안주해 있는 우리의 상태를 깨뜨리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논리를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2)

서남동에 의하면 메시아는 고난받는 이웃으로 우리에게 접근한다고 말하며 고난받는 이웃의 아픔에 참여함으로써 새 시대의 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지금 고난받는 사람이 새 역사를 건설할 주역이 된다고 말한다.(3) 또한 안병무는 예수 사건은 민중 고난의 현장에서 일어난 민중 구원 사건으로 예수를 집단적으로 이해한다. 예수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민중의 집단적 죽음이다.(4) 이렇게 민중 구원론에서 민중은 구원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민중 메시아론에 대한 송기득과 임태수는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송기득은 안병무의 민중 메시아론을 적극 지지하며 민중은 그 자체로 메시아라고(5) 보고 있는 반면, 임태수는 민중 메시아론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민중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임태수의 입장에서는 민중신학도 기독교 2천 년의 전통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고 있으며 민중이 메시아가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것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6)

이러한 임태수의 입장은 안병무가 이미 서구 전통 기독교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을 극복해야 할 새로운 신학적 해석학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송기득의 입장은 아마도 임태수의 민중 메시아론에 대한 거부에 대한 대답으로 읽을 수 있다. 거기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으로써 해방을 이끌어가는 실체는 누구라도 메시아가 된다고 말하고 있으며 민중은 메시아의 집단성을 상징하고 참 메시아의 전형이 역사의 예수였다고 대답한다.(7)

농민도 민중인가, 민중 중에 농민인가

예수가 꿈꾼 사회는 가난한 자들과 굶주리는 자들이 없는 대안적인 경제 공동체였을 것이다. 예수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다. 새로운 세상을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그것은 바로 민중이 꿈꾸는 세상, 억압과 차별,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민중들의 세상일 것이다. ‘꿈꿀 권리’는 민중들이 누릴 배타적인 권리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역사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 이 세상을 구원해 줄 메시아는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도래하는가? 민중 메시아론에서는 안병무는 예수를 독존자로 보지 않고 ‘관계적 존재’로 보고 있다. 위로부터 그리스도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에 입각해 있다.(8) 그래서 민중 메시아론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수 사건뿐만 아니라 민중 사건들에게서 집단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성육신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사건 중 가장 말단에 위치한 사건이 농촌의 현장이다. 예수는 민중을 통해서만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온갖 생명들로 성육신하였다. 그리고 그 생명을 기르시고 입히시고 풍성하게 하신다. 그리고 일꾼을 부르셨는데 그들이 농민들이다. 안병무도 농촌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다. 농촌 공동체에는 농민이 있고 수많은 식물과 나무가 자라며 농민은 경작을 통해서 열매를 얻는다.

민중 사건에서 일어나는 민중의 자기 초월성은 관계적 존재들에게서 발생한다. 개인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사건 속에서 민중은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민중 메시아론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불트만에 의해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예수가 민중은 맞지만, 민중은 예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민중이 메시아이면 그 민중은 누가 구원하는가 하는 모순에 맞닥뜨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권진관은 이러한 불협화음의 발생 원인을 안병무의 예수와 민중에 대한 관점을 오해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안병무가 예수와 민중을 인격의 면에서 혹은 본질의 면에서 동일하게 본 것이 아니라 의미에서 동일시한 결과라고 말한다.(9)

안병무는 민중의 사건 속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체험했다. 그리고 서구 신학이 전해주는 구원의 주체자로서의 메시아를 거부하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는 줄기차게 서구 신학의 주체와 객체, 역사의 주체, 대상, 중심부, 주변부 등을 나누는 서구 중심의 체계를 비판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안병무의 성서 해석학은 탈식민주의 성서해석의 방법과 길을 같이 하고 있다.

민중 메시아론에 있어서 오클로스는 앞선 많은 논의 가운데 소작농과 그의 가족들, 즉 땅의 사람들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라는 성서의 말은 민중의 고난에 대한 말이다. 민중이 세상 가운데 떨어져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다시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을 통해 민중을 먹이는 것, 그것이 민중 메시아론의 핵심이다.

그것은 생명의 네트워크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생명의 환경(milieu)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주체가 농민이다. 씨앗이 열매를 맺어 만인을 먹이듯이 민중이 민중사건 속에서 자기 초월성을 통해 만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이 아직도 유효한가에 대한 논의들도 일찍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민중신학이 이제 실효성을 잃어버려서 폐기해야 한다거나 혹은 당시의 급박한 사회 상황 속에서 급조된 상황 신학으로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논의는 잘못되었다. 특히나 민중 메시아론과 같은 신학적 주제는 오늘날 세계의 민중들과 만나 새롭게 재조명되고 세계의 민중사건들 속에서 다시 해석돼야 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신학적 담론이다.

깨달은 농민, 민중으로 각성한 농민

오늘날 세계를 구원할 역사의 새로운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세계의 가난하고 굶주린 민중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메시아적 존재는 누구인가? 그는 단일자로서 어떤 개인이나 존재일 수 없다.

필자는 민중 메시아론에서 농민의 위치를 논의함에 있어서 농촌과 농업, 그리고 농민의 주도적 식량 생산의 역할에 주목한다. 세계를 먹이는 존재는 농민이다. 그런데 그 농민과 농촌, 농업의 현장은 고난의 현장으로 바뀌었고 농민들은 빈곤과 배고픔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 식량의 대부분은 남반구 소농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다. 대규모의 단작으로 생산되는 대부분의 곡물은 거대 자본에 의해서 가축의 사료용이나 가공용으로써 거대 곡물회사와 유통회사의 이윤을 보장해 줄 뿐 세계를 먹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아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를 먹이는 것은 그들의 삶이 불안정하고 빈곤 가운데 허덕이는 고통당하고 있는 남반구 소농들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농민만이 민중이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민중 메시아론에서 농민의 위치를 파악함에 있어서 농민이라는 역사적 새로운 주체가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갈 메시아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중이면 모두가 진정한 민중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안병무는 이 지점에서 예수의 부활을 민중의 일어남으로 이해하면서 각성된 민중, 즉 민중이 역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기의식화로 설명한다.(10) 또한, 각성되지 않은 돈으로 오염된 민중의 행태를 비판한다.(11)

산체스(David Arthur Sanchez)는 이를 민중의 모방적 양가성과 혼종성이라는 탈식민주의적 해석학으로 풀이한다.(12) 이러한 측면에서 권진관은 예수의 사건에 ‘가담’하지 않는 민중은 사건의 의미를 모를 뿐만 아니라 해방을 위한 구체적인 복음의 전략과 전술을 통한 프락시스의 깊이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13) 프락시스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안병무와 권진관의 해석은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안병무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성서가 제시할 수 없다고 본 반면, 권진관은 프락시스의 깊이 있는 경험 없이 민중신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를 비판한다.(14)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필자는 권진관의 의견에 동의한다. 민중신학은 프락시스적 관점에서 언제나 선교적 접근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 민중 전략의 핵심에 농민과 농촌, 농업이 위치해 있으며 민중 메시아론의 핵심에도 무너져가는 세계 농업과 해체되고 있는 농촌 공동체,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농민의 삶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민중이 민중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 민중이 민중을 먹이고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역사의 새로운 주체는 씨앗(민중)으로 뿌려진 그들이다. 그러나 농민과 농촌은 이미 해체되고 오염되었다. 농업은 거대 다국적 농기업의 횡포에 병들고 이윤만을 쫓아간다. 이러한 욕망과 오염으로부터 민중을 분리해내는 작업이 민중신학의 선교적 과제이고 민중 사건의 현장을 담담히 지키고 있는 농민들에게 메시아적 역할이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농민의 집단적 민중 정체성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재학 목사(석천교회, 연세대 박사과정)  jagafoc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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