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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점“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로마서 12:1-5)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7.03 00:22
▲ 교회는 다양성이 근본이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나의 마음 밖,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시선을 빼앗기면 우리는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내 생각, 내 행동이 실제로 일어난 결과와 늘 일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우리를 매우 괴롭게 하거나, 힘들게 합니다.

이렇게 괴롭고 또 힘든 이유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어서 잘 알고 있는 잠언 16:1의 말씀,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같은 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를 고백하면서도 결과를 하나님이 아닌 나 중심으로 이뤄지기를 원하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잠언 16:4a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다.”고 기록합니다. 어떤 것들이 아니라 ‘모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 16:5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거만한 모든 사람을 역겨워하시니, 그들은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마음이 거만한 모든 사람을 역겨워 하신다.’는 어떤 의미겠습니까? 그 쓰임에 맞지 않게 살려고 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거만하다는 것은 창조주의 본래 목적, 의도를 저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잘 살펴야 합니다. 부모의 의도대로도 아니고, 나의 의도대로도 아닌 하나님의 의도에 내 삶을 맡길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맥추절의 유래는 출애굽기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6:14-16 “너희는 한 해에 세 차례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너희가 그 때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희는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가 애써서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 또한 너희는 밭에서 애써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한 해의 끝무렵에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

농사와 관련된 맥추절과 수장절은 첫 수확과 마지막 수확 때 드려지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통해 이 땅의 주인,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다시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절기들은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과정, 성령강림의 사건과 연관되면서 유대인들과 오늘날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서 감사 절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이 농사를 짓지 않기에 우리는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일 년의 절반을 보내면서 성도님들은 어떤 감사의 고백을 하셨습니까? 이상중 목사는 개인적으로 새벽기도시간에 성도님들과 함께 읽고 있는 로마서, 로마서에 보이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들을 통해 전반기의 삶을 감사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도 감사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닮을 수 있도록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손길에 감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이 본문의 전체적인 의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 의도는 로마서 전체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 시작된 유대인들 안에서의 신앙적 분열은 성령강림사건(행2:1-13)과 예루살렘교회의 큰 박해(행2:1)로 인한 결과로 사도들이 흩어지게 되면서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이 일들로 인해 더 크게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던 이들을 크게 박해하였던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스스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니만큼, 나는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롬11:13)

바울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 대해 잘 알았고 또한, 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 율법을 따르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율법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 관해서도 잘 알았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과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었습니다. 할례 문제나, 식습관 문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전체를 통해 또 자신의 서신들을 통해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행함(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을 강조하면서 이방인들과의 차이를 극복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행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을 향한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방인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대는 본래의 가지들을 향하여 우쭐대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그대가 우쭐댈지라도,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롬11:18)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들이 한 교회를 이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들도 한 교회를 이루지 못하는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 교회를 이룬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라고 말하는 까닭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제물이 되어 화해와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우선 사도 바울 자신이 이 둘의 갈등과 화해를 위해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대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2:20-26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로 가서 청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 싶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로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께 그 말을 전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여주실 것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은 다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예수님도 바울도 그렇게 죽으라고 하는데, 그렇게 죽기가 싫어요. 죽으면 오히려 사는 것이고, 죽음으로 큰 열매를 맺을텐데 이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미워해야 하는데, 그렇게 집착하며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보내온 불평, 불만의 6개월의 시간과 삶의 과정이 그냥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다 이유가 있었구나.’ 단순히 교만하게 살아가지 말라는 것 이상으로, ‘그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죽었으면,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었던 기회였겠구나!’ 내가 내 묵숨을 더 사랑해서, 내 자아를 더 사랑해서 좋은 기회들을 날려버리고 말았구나.

그럼에도, 여전히 실패했던 그 과정들이 실패로 끝나지 않고, 그 과정을 양분으로 삼아 다시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다듬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에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할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찾아오시고, 두드리시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또한,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과 기도를 드렸습니까?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목표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말하는 지향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뿐 아니라 이 나라, 가정도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밀알이 되는 결단과 헌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네가 해라, 너도 해라,’가 아니라 묵묵히 밀알이 되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성령은 오늘도, 성도를 이름 그대로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과 은혜로 성도를 붙잡으시며 거룩한 존재로 또한 거룩한 백성으로 한 몸 이룬 공동체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 안에서 우리 각자 창조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순종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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