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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절을 승천절 잔치로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16)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3.07.06 23:35
▲ 승천절을 기념해 준비한 한국 음식을 즐기는 헤른후트 공동체 지체들. ⓒ홍명희

3월이 멀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춥고 음산한 날이었다. 그날은 집 앞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코니 할머니가 집에서 농사지은 소박한 꾸러미를 가지고 오시다가 어김없이 나를 반겼다. 가끔 손주 자랑도 하시고, 우리 집 안부도 물으시는 친절한 할머니다.

“그 코로나 전에 말이야…”라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때 승천절에 한국 사람들이 와서, 너무나 좋은 행사였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좋은 잔치와 음악회 또 할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무슨 배짱으로 그 자리에서 “그럼요. 또 해야죠”라고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할머니의 반짝이는, 소망이 담긴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정말이냐며, 사과를 사는 내게 하나 더 얹어 주셨다. 오래전 일을 기억하시고 그때 일을 감사하며,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다.

그때쯤이면 할머니도 다리 인공관절 수술을 끝내시고 참석할 수 있다며 기뻐하셨다. 단 한 사람이 기대하고 기다린다면, 분명 그때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제 남은 몇 개월 동안 어떻게 준비할지, 깊이 따져보고 생각해보고 말씀드린다고 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일 처리 방법이겠지만, 나는 이 감동이 불씨가 되어 꼭 다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사이 내가 처리할 일들은 너무나 많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4월이 되어서야 주변에 한국 음악가들이 있는지 알아보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2주였다. 포스터를 만들어야 해서 한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멋진 그림을 부탁해 보았지만, 일정이 짧다고 면박만 들었다.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멋져서, 하늘을 찍어보았다. 그 하늘은 포스터 배경이 되었다. 시청에 가니, 포스터를 온 주변 마을에 알려주신단다. 이 모든 것이 일주일 안에 진행된 것은 기적이었다. 주님은 무턱대고 일을 시작한 나를 탓하시기보다는, 승천하신 날의 주인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픈 내 마음을 더 좋게 보셨던 것 같다. 하나하나 도움의 손길을 통해 해결되게 하셨다.

멀리 프라하에서 한국 성악가가 오신다고 했다. 드레스덴에서도 여러 명의 음악가가 함께하기로 했다. 한국 음식이 문제였지만, 그것도 하나씩 해결이 되어가고 있었다. 프라하에서 김치를 만들어 오신 사모님과 김치전이 공수되었고, 하루 전에 나머지 만두와 잡채 등을 예수전도단 친구들과 만들기로 했다. 젊은이들은 아랫마을 성에 산다.

모두 다 자기 일처럼 나와서 만두를 빚었다. 크고 힘이 센 데이먼이 반죽을, 감자 빵을 맛있게 구워낸 멜리사, 시장보고 것부터 궂은일을 다한 인도에서 온 칸추일라도 모두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손이 빠른 모니카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가서, 우리는 두 시간 만에 만두 100개 이상을 빚었고, 잡채와 부침개를 해냈다.

▲ 성 뜨락에서 음식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홍명희

독일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을 국가적 공휴일로 잡고 있다. 대부분 독일 사람들은 5월에 있는 이 날을 잘 즐기는 편이다. 특히 5월 15일은 어머니의 날로 정해졌는데, 그 후에 있는 승천절을 (비공식적이지만) ‘남성의 날’로 정하고, 이날 만큼은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 한 병씩 들고 다니는 관습이 점차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다. 승천절은 승천절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날만큼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승천하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을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바라는 잔치, 그런 잔치를 하고 싶었다.

진젠도르프 성에는 예전에 마차들을 대기 위한 넉넉한 마당이 있어서 얼마든지 주차할 수 있다. 푸르른 잔디에 축제용 나무 의자와 간이 의자를 내다 놓았다. 근 4년 만에 열리는 승천절, 한국의 날에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정오 12시가 다가올수록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손님을 기다리면서, 밖에 준비된 상에 음식이 하나씩 놓이기 시작했다. 접시를 내다 놓는데, 먼저 오신 손님이 꽤 많이 쌓아 올려놓은 접시를 보시더니, “이렇게 많이 온다구?” 하며 의아해하셨다. 그렇다. 그건 믿음이었다. 100여 분의 음식을 준비했으니, 그만큼 오시리라고 믿었다.

성경에 잔치하려는 주인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했는데 모두 일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주인은 거리에서 아무라도 다 불러서 그 자리를 채웠다. 그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날은 누구나 와도 좋은 것이다. 아니나 달리, 몇 명의 남자들이 맥주를 들고 무슨 구경났는지 보러 왔다. 나는 함께 하셔도 좋다고 말하며 오늘의 일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의 날’을 즐기러 가버렸다. 잔치를 준비하고서 한 사람 한 사람,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 경험하면서. 오래된 친구인 엘스벳, 카타리나가 먼 도시에서 와 주었고, 작년에 한국에 같이 갔던 수산네는 김밥 40개를 말아와 주었다. 4년 만에 직접 구운 케이크를 들고 온 케르스틴도 정말 반가웠다.

대부분이 아는 얼굴이었지만, 신문에 올린 글을 보고, 이웃 도시에서 일부러 온 젊은이들도 있었다. 알고 보니, K-드라마에 빠져있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준비한 음식은 정말이지, 근사했다. 무엇보다 평소에 존경하는 비숍 목사님이 사모님과 나란히 함께 오셨고, 음식을 골고루 다 드신 것이 또한 감사했다. 다리 수술을 하고 집에 있어야 하는 이웃 할머니는 오시지 못했지만, 핀 꽃이 많으니, 음악가들을 위해 꽃다발을 6개나 만들어 주셨다.

정원에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실제로 내 접시에 담아온 음식들은 입으로 들어갈 새도 없었다. 음악가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수해 주거나, 뒤늦게 도착한 별공장 사장님 일행이 뭔가를 드셔야 했기에 나는 여전히 바빴기 때문이다. 주인의 눈에는 여러 가지가 보인다. 모든 사람이 다 음식을 받았는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주님의 눈에는 온 백성들이 한눈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하니,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에게 짧은 인사를 전했다. ⓒ홍명희

1721년에 이 집을 사고, 신혼 생활을 한 진젠도르프 백작은 300년 후에 자기 집 앞마당에서 이런 잔치가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즐거워졌다. 이방인들을 사랑한 그의 삶이 확장되고 열매를 맺어 우리에게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드디어 성 2층 홀에서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몇몇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셨지만, 음악회장이 꽉 차서, 의자들을 올려와야 할 형편이었다. 사람들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거침없는 독일과 한국 노래에 푹 빠져가고 있었다. 중간쯤에 짤막한 인사말을 했다. 우선, 뒤쪽에 앉아계신 코니 할머니 덕에 이런 행사를 다시 하게 됨에 정중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오늘은 남성들의 날이 아닌 승천절임을 선포하였다. 누군가 앞쪽에서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날만큼은 우리의 상상력을 드높이자고 했다. 어떻게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나,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어릴 때 심심하면, 다락방에 누워 뒹굴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옆집에 있던 큰 텔레비전이 너무도 부러웠던 나는 손에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주님께 한탄 어린 기도를 드렸었다. 지금 그게 현실이 되지 않았냐라며, 스마트 폰을 높이 쳐들었다. 관중들의 웃음이 기분 좋게 터졌다. 한술 더 떠서 어떻게 우체부 없이 편지를 받을까 했는데, 지금은 모두가 이메일과 카톡으로 편지를 받는다. 물론 기술의 혁명이지만, 우리 자신이 현재에 믿을 수 없다고 제한하지 말자는 의도를 모두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독일 노래에 이어서, 한국의 성가곡, 시편 23편이 울려 퍼지면서 음악회는 막이 내렸다. 꽃들이 음악가들에게 전달되고 뭔가,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야 할 때였다. 음악회 내내, 옆에 앉은 타일레 목사님께, 혹시 축도를 해 주시면 좋을 텐데요… 하고 말을 흐리기만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이 젊은이들은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들의 인생의 앞길에 축복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여러분들에게도. 그래서 타일레 목사님 나오셔서 우리를 위한 축도를 해 주시겠습니다.”

손님들을 보내고 나서, 잠시 음악 청년들과 앉아서 차를 마셨다. 그때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무사히 마쳐서 안심했다. 무엇보다도 축도가 있어서 좋았다는 손님들이 있었고 우리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에 감탄하신 분들도 있었다. 모든 도우미가 부엌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돌아갔다. 감사했다.

그래도 축제를 연 주인은 할 일이 또 있는 법이다. 쓰레기를 모두 차에 싣고 있는데, 가장 멀리서 온 친구들이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 안팎을 돌아보던 내게 마지막 친구들의 응원과 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곤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행사 때문에 살가운 대화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아쉬움이 컸다. 모두를 보내고, 숲속의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7년째 이 마을에 살면서, 나는 교회 밖의 평범한 사람들을 더 알아가기 원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300년 전통의 믿음의 공동체를 그저 남의 일인 양 여기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도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짧은 메시지와 축복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잔치가 끝나고서 며칠을 앓아누웠다. 옆집에 사는, 바른 소리 잘하는 드레숴 부인은 ‘그러게 왜 그렇게 큰일을 벌였냐’는 식으로 눈을 흘겼다. 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기고 싶다. 이 사람들에게는 헌신, 희생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자신을 헤치는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나 보다. 물론 다음엔 음식의 수는 좀 지혜롭게 줄여야겠지만, 평생 이곳에만 살면서, 생전 처음 맛보는 김치와 만두, 잡채와 부침개를 잘 드시는 어르신들만 보아도 행복한 것을 어찌 말리랴. 내년에 이 행사를 치르려면 또 많은 기적의 손길이 필요하겠지만,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주님은 승천절에 그렇게 기쁘게 받으시며, 축복하시길 원하실 거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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