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받을 이유와 자격을 따지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Getty Images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것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거나 본토에 남아있거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망을 넘어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다 해도 이해못할 일이 아닐 겁니다. 야훼 하나님이 계신데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언자들이 숱하게 경고했지만 듣지 않았던 그들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경고가 현실이 되고 나니 그들은 경고하신 대로 행한 하나님에게 원망과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었습니다. 경고 사실과 내용을 뒤로 밀어둔 채 하나님이 외세로부터 자기들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신이라고 비난하며 우상들과 다를 게 없다고 폄훼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중심적이라고 해도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요? 적반하장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아마도 하나님을 성토하곤 했겠지요. 하나님은 경고에 경고를 더했지만 달라지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고 더이상 인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을 벌했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달라진 것이 아니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레미야는 이를 하나님이 계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물은 것으로 이해했고 하나님은 사람과 새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이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계약에 따른 법적 책임을 오랫동안 이행하지 않았기에 지금 포로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지요. 그랬다면 달리 말하고 달리 행동했을 겁니다. 지금 포로지에 있는 자신들의 하나님이 옛날 이집트에서 조상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이스라엘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다시 돌아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바보냐 걔밖에 없냐 등등의 핀잔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요구가 없지 않습니다. 요구가 실현되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랑이란 사랑할 만할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는 사랑할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무겁고 힘겹기만 한데 그 안에 희망의 씨가 뿌려지고 기쁨의 싹이 자라납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버러지 같은 야곱으로 불리기도 했던(사 41,14)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너를 사랑하여 잠잠하고 노래하며 너를 기뻐하시고” 이스라엘 가운데 구원의 용사로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3,17). 이것이 사랑안에 담긴 희망이고 사랑이 일으키는 변화입니다.

포로지에서 한탄하고 원망하고 망각 속에 지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같이 짊어지셨습니다. 그들을 홀로 심판의 자리에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환란에 동참하시고(사 63,9), 성소가 없는 곳에서 그 자신이 그들의 성소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사 8,14; 겔 11,16).

성소는 화해의 자리였고 용서의 자리였습니다. 위로의 장소였고 기쁨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성소가 되어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즐거움들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위로자가 하나님 자신이시니 제국의 권력자들을 두려워 말라고 용기를 북돋우십니다. 그들은 풀같이 스러질 인생에 지나지 않으니 그들 때문에 떨지 말고 그들 앞에서 담대하라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니 아무리 강한 세상의 권력이라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고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안심시키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그들 아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니 그들로부터 해방시키실 이도 하나님 자신이라고 역설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괴로움에 원망과 한숨이 터져나오는 삶일지라도 그로부터 우리를 이끌어내고 새땅으로 들이실 이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가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지으신 그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고. 그 말씀에 위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곤란과 아픔을 함께 져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처럼 아무 준비 없이 이집트를 떠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힘을 얻은 두 손에 평화를 들고 두 발로 희망을 춤추며 광야를 지나가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뜻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계약을 파기했어도 하나님은 그 계약을 유지시킬 방안을 모색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세세히 알지 못했기에 자기 나름대로 길을 갔지만 그 길은 하나님의 계획을 빗나가게 하거나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반은 믿고 반은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아브라함의 불신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지키고 그의 약속을 마침내 이루셨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불신에 기적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찾아와 다독이며 그를 약속의 길에 세우셨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셨습니다. 어쩌면 단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궁극적 미래만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으로 그 미래를 사는 역사속의 미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시간 속의 미래를 위해 이삭을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미래를 지금 여기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전쟁과 독재와 독점과 파괴가 지배하는 곳에 하나님은 그의 미래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그 미래를 향해 가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는 그 미래가 오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그 미래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로 형상화한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우리가 굳게 붙잡고 그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위로와 새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 희망을 살고 이 미래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 희망을 보증하시려고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날인된 희망입니다.

사랑은 섬김의 자유입니다. 평등은 섬김의 열매입니다. 너를 기뻐하는 섬김에서 그 희망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그 희망을 상속받았습니다. 그 희망으로 우리의 일상이 기쁨이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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